[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이 보고 싶다.

 

 

 

W.새벽의덕후

 

 

 

 

[국민] (feat. 김 비서님)

 

 

 

 

* 추위로부터 지민이를 보호하는 방법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몸이 무겁다고 너무 집 안에만 있었더니 오히려 갑갑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주 멀리는 나가기 힘들어도 동네를 조금 거닐어보자고 정국의 손을 잡고 나왔다. 날이 많이 추워진 탓에 옷을 많이 껴입긴 했는데 아무래도 산달이 가까워져 있다 보니까 두꺼운 옷이 영 불편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나와서 좋기는 되게 좋았다. 정국이는 내 손을 가득 쥐고 호호 불어주고 있었다.

 

 

“오와, 형 손 진짜 작네요.”

“정국아. 그 말 나 처음 봤을 때부터 매번 했어. 질리지도 않아?”

“형. 제가 어떻게 질릴 수가 있어요. 형의 어떤 면도 전 질리지 않아요.”

 

 

정국이의 눈빛이 꽤 단호했다. 그 단호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너무 잘생겨서 그 얼굴을 보고 웃어버렸다. 정국이 역시 따라 웃으며 쥐고 있던 내 양손에 입을 맞췄다. 정국이는 입술로 내 손을 괴롭혔고 나는 짧은 손가락을 열심히 뻗어가며 정국이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우리만의 작은 길거리 애정행각이었고 머지않아 정국이가 나를 끌어안으며 상황은 정리되었다. 배가 많이 나온 탓에 정국이가 나를 끌어안으면 정국이의 엉덩이가 뒤로 약간 빠져나왔다. 힘겹게 나를 끌어안고 있는 정국이가 귀여워서 그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형. 신호예요?”

“아니야. 정국아.”

 

 

정국이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을 짓더니 내 얼굴을 붙잡고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그 느낌이 좋아서 소리 내서 웃었다. 한참을 쪽쪽 거리던 정국이는 입술을 떼고 나를 바라보면서 예쁘게 웃었다. 정말, 존재만으로 충분한 느낌이었다. 정국이는 다시 내 어깨를 감싸 안고 길을 마저 걸었다. 걷다 보니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나와 정국이는 말없이 눈을 마주쳤고 그대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 이런 거 먹으면 안 좋은데.”

“왜? 나 편의점 음식 되게 좋아하는데.”

“네? 형 그랬어요?”

“응. 근데 여기까지 오는 게 너무 힘들어서.”

 

 

편의점 안을 쭉 둘러보면서 이야기했다. 대학 다닐 때나 일 다닐 때 편의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공간이었다. 익숙한 음식들을 괜히 매만져보았다. 지금은 리키가 있어서 자주 먹을 수 없는 매운 음식들도 보였고 인스턴트 음식들도 잔뜩 보였다. 정국이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인스턴트 음식을 매만지는 내 손을 붙잡았다. 고개를 저으면서 단호하게 ‘안 돼’라고 이야기했다. 그 단호함에 약간 울상을 지었고 정국이는 그런 내 표정을 모른 체하며 따뜻한 음료수를 집어 들었다. 물론 둘 다 이것만 사러 온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정국이가 인스턴트 음식들을 보고 마음을 접은 듯했다. 


나중에서야 분명하게 알게 된 거긴 하지만 임신 중에 사 왔던 수많은 음식들은 정국이가 깐깐하게 알아보고, 둘러보고, 조사해서 사 온 것들이었다. 그런 정국이가 나에게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을 먹일 리가 없었다. 어쩐지 신기루를 본 것만 같아서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이 음료수도 아마 손을 데우기 위한 용도일 것이다. 이미 집에 유기농이나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음료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핫초코를 타 먹기 위한 코코아 가루도 카카오 원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

 

 

“우리 형, 아이 착하다. 얼른 가요.”

 

 

순전히 핫팩 용도로 쓰이기 위한 음료수 계산을 마친 정국이가 나를 살살 달래면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내 손에 따뜻한 음료수를 쥐여주고 그 위로 자기 손을 덮었다. 손 위에 덮인 정국이의 손이 예뻤다. 정국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정국이의 손은 남자답게 잘생겼다. 꼭 정국이의 얼굴처럼 예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손이 작은 게 좀 콤플렉스라 리키는 수많은 곳을 제 아빠를 닮아야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손만큼은 꼭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손을 감싸고 있던 정국이가 내 얼굴 쪽으로 자기 얼굴을 쑥 들이밀더니 예쁘게 웃었다. 정국이는 편의점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을 못 먹는 바람에 내가 기분이 상해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국이를 보지도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잠깐 속이 상하긴 했지만 그거야 정국이의 예쁜 손만 보고 풀릴 정도의 속상함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건 순전히 정국이의 손을 감상하기 위험이었다. 뭐, 어쨌든 정국이의 예쁘게 애교부리는 얼굴을 봤으니 나에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편의점 일은 그냥 일기를 써야 겨우 기억이 날 정도의 사건으로 남았다. 나에게만 그랬다.

 



*  

“정국아, 이게 뭐야?”

“자판기요!”

“왜 자판기가 우리 집에 있는 거야?”

“형 편의점 가고 싶어도 나가기 힘들잖아요. 밖에 너무 춥고. 리키도, 형도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요.”

 

 

왜 네가 편의점에 가서 사올 생각은 안 하는 거니? 라고 너무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판기 옆에서 자판기 화보라도 찍는 것처럼 서 있는 정국이를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 사는 집에 자판기가 대체 무슨 말이야.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초인종이 눌렸다. 이 시간에 누군가, 싶었는데 인터폰 화면에는 정국이가 보였다. 얘가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왜 왔나 싶었다. 게다가 자기 집인데 굳이 초인종을 누르는 의도가 꽤 궁금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정국이 뒤로 들어온 상자에 때문에 묻혀버렸다. 


아주 커다랗고 무거운 상자가 들어왔다. 말이 상자지 아주 거대한, 어떤 포장이 된 네모난 ‘어떤 것’이 집으로 들어왔다. 뭐냐고 묻는 내 질문에 정국이는 예쁘게 웃더니 포장을 빠르게 풀어냈다. 그런 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자판기였다. 지하철 같은 데서 보던, 이것저것 다 들어있던 그런 자판기. 나는 저걸 사람이 사는 집 안에서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정국이가 하는 말 몇 개를 듣고 나서야 이 자판기가 며칠 전 편의점에서 내가 미련 맞게 굴던 걸 보고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거 이렇게 집에 있어도 되는 거야?”

“네? 아, 이거 주문제작으로 넣은 거라서 괜찮아요.”

“주문제작까지 했어?”

“네! 원하는 거 넣고 뽑아 먹으면 돼요! 완전 우리 거예요!”

“그럴 거면 차라리 박스 채 사놓고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정국이는 잠시 몸을 돌려 자판기를 가만히 쳐다봤다. 자판기에는 미리 채워 놓은 건지 음료수며 과자며 하다못해 레몬까지 들어 있었다. 레몬을 보면서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레몬을 냉장고가 아니라 저기서 빼서 먹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미련 맞게 굴었던 건 음료수가 아니라 인스턴트 음식들이었는데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관인 것은 저 편의점 자판기 안에 있는 음식들이 죄다 편의점 게 아니라 늘 집에 오던 ‘직접 공수’한 천연 음료수와, 믿음직한 거래로 구입한 수제 쿠키와, 해외 직구한 과일들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이걸 왜 이렇게 거창하게 준비한 거야. 이미 집에도 넘치게 있는 것들이 또다시 구입되어 저 안에 들어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뭔갈 열심히 궁리하던 정국이의 입에서 나온 소리 역시 어이없긴 매한가지였다.

 

 

“재밌잖아요!”

 

 

그래, 그런 거구나. 재미있으려고 집에 자판기를 놓는구나. 연애할 때는 잘 몰랐는데 붙어사니까 점점 정국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쓰는 스케일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제발 꼭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쓰면 좋겠는데 정국이는 그냥 아낌이 없었다. 물론 정국이 입장에선 나와 리키에게 쓰는 거니까 꼭 필요한 곳에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임신부가 밖에 나가기 힘들다고 집에 자판기를 들여놓는 건. 나는 복잡한 머리로 천천히 자판기를 둘러봤다. 세상에, 이게 뭐야. 자판기 옆면에는 마치 광고처럼 정국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사진을 보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거 같아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꼭 말해요! 내가 여기 채워 줄게요.”

“정국아.”

“네, 형!”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지.”

 

 

저렇게 해맑은 얼굴에 대고 더 이상 무슨 말이 안 나왔다. 그래서 그냥 체념하기로 하고 다시 자판기 옆면에 붙은 정국이 사진을 가만히 쳐다봤다. 좀, 잘 나왔네. 진짜 화보 같기도 하고. 어디서 나 모르게 화보 찍고 다니나.

 

 

“이건 어떻게 찍었어?”

“아, 사무실에서요. 김 비서님이 찍어주셨어요.”

“김 비서님이?”

“네. 한 세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뭐 나름 사진을 잘 찍으시더라구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김 비서님이 정말 고생이 많으신 것 같다.

 

 

 


* 출산 임박!

 

 

“정국아, 정국아.”

“형, 형 괜찮아요? 어떡해. 형.”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진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가끔 진통 쉬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있는 줄도 모르게 지나갔다. 내 옆에서 정국이는 한껏 슬픈 눈을 하고 내 손을 붙잡아줬다. 전에 몇 번 가진통 때문에 병원을 들락날락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정국이가 우는 걸 달래느라 조금 고생을 했다. 심지어 가진통이 처음 왔을 때는 정국이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제주도 출장을 간 상태였다. 정국이랑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아파오는 배 때문에 ‘아’하는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길로 정국이는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왔다. 전용기 안에서 내내 울었다고 김 비서님이 나중에 슬쩍 알려 주셨다. 하물며 가진통 때도 그랬는데 오늘은 가진통도 아니고 진짜 진통이었다. 정국이는 나보다 더 실신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함께 고통스러워했다. 진짜, 너무 아팠다. 고통스럽다는 말이 뭔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김 비서님, 김 비서님!”

“네. 저 여기 있습니다.”

“빨리, 빨리 헬기 부르세요! 전용기라도!”

“정국아.”

“본부장님.”

“헬기 띄우라구요! 우리 지민이가 이렇게 아픈데! 뭐 하는 겁니까!”

 

 

정국이는 김 비서님의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정국이의 요란에 배가 아니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진통에 두통까지 얹혀서 쌍으로 고통스러웠다. 제발 정국이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픈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침대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고통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는 와중에도 힘이 넘치는 정국이에 의해 온몸이 갈대마냥 흔들리는 김 비서님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아주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 와중에 무언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김 비서님이 눈을 한 번 깜박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대로 김 비서님이 정국이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여기가 병원입니다! 정신 좀 차리세요!”

“…아, 그랬나요?”

“아니 애초에 병원에 올 때도 그렇게 전용기를 부르라고 난리 난리를 치셨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게다가 여기 출산을 앞둔 산모가 지민 씨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김 비서님의 차분하고도 똑소리 나는 매질과 말에 정국이는 약간 침착함을 되찾았다. 정신을 잃어도 내가 잃어야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옆에서 정국이가 더 정신을 놓았다. 이 병원에 올 때도 헬기며 전용기를 부르라고 난리 난리를 치는 걸 김 비서님이 한 대 쥐어박고 차에 태워서 온 거였다. 어쩐지 김 비서님께 맞으면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방금의 그 눈빛도 서로 정국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한 암묵적인 동의 같은 거였다. 아까 한 번 통하는 걸 봤으니 두 번도 통하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아주 잘 통했다. 김 비서님께 혼난 정국이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아까보다 조금 편하게 아플 수 있었다. 조금 편해진 나는 김 비서님을 쳐다봤고 다시 눈짓을 했다. 늘 죄송하지만 또 늘 감사한 분이셨다.

 

 

 

* 리키를 처음 만난 날

 

 

리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놀라기는 했다. 아주 엄청난 산고 끝에 리키를 품에 안았는데 음, 생각보다 썩 예쁘지 않았다. 사실 출산으로 힘든 와중에도 리키의 앞날에 대해서 약간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분명 임신 기간 동안 정국이의 얼굴을 봐 가면서 정국이를 닮으라고 아주 열심히 태교를 했는데 그 태교가 무색하게 막 태어난 리키는 조금 못생긴 편에 속했다. 애가 엄청 건강하게 나와서 몸무게도 4. 1킬로나 되었고 아주, 아주 건장했다. 그래서 좀 더 못생겨 보였다. 


물론 리키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붓기가 쫙 빠지면서 엄청 잘생겨지기는 했지만 출산 직후 나와 리키를 보러 산부인과를 찾은 지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정국이를 따라다니느라 가장 먼저 우리 리키를 본 김 비서님은 리키의 출생 직후 아주 못생겼던 흑역사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였다. 신생아실 유리를 통해서 정국이가 처음 리키를 만난 날이었다. 정국이는 리키를 향한 사랑에 눈이 멀어 있었다. 엄마인 나도 리키를 약간, 못생겼다고 인정했지만 정국이는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기, 김 비서님.”

“네.”

“빨리, 빨리 세계 최고의 사진사를 불러오세요.”

“네?”

“지금 우리 리키가! 세상에 나와서! 저렇게 잘생긴 모습을 뽐내는데! 이건 당장 화보 사진으로 써야 합니다.”

“…본부장님.”

“네. 김 비서님”

“안 잘생겼는데요. 못생겼어요. 지금 딱 못생겼어요. 쭈글쭈글.”

 

 


그 날 정국이는 엄청 삐졌다. 본인은 화가 난 거라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좀 많이 마음이 상한 거였다. 김 비서님이 너무 직설적인 탓도 있지만 김 비서님 이후로 병원과 조리원을 찾은 지인들 역시 리키를 보고 ‘어, 아, 아기가 참 건강하네.’ 하는 말만 했었다. 그 지인들도 뒤에 가서 ‘아이고 애가 부모를 하나도 안 닮았어. 어떡해.’ 하는 말을 했다가 정국이한테 걸려서 한동안 조리원이고 뭐고 출입 금지를 당했었다. 병실에 있는 나한테 와서 ‘형, 사람들이 자꾸 우리 리키 못생겼대요. 진짜 너무 잘생겼는데.’ 하면서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밤에 내 옆에서 자다가 ‘쭈글쭈글 아니야, 쭈글쭈글….’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보기도 했다. 정국이에게도 리키에게도 약간의 상처가 되었던 딱 일주일이 지나고 리키는 정말 예뻐졌다. 눈도 땡글, 코도 오뚝한 게 정국이를 정말 많이 닮아있었다.

 

 

“어머, 애가 정말 예쁘네.”

“그러게 딸이래도 믿겠다.”

“어머, 아빠를 쏙 닮았네.”

“그러게 처음엔 두꺼비 같았는데.”

 

“나가세요.”

 

 

겨우 산후조리원 출입 금지가 풀렸던 사람들은 행여 리키의 출생 직후 흑역사를 입 밖으로 내버리는 즉시 강제 퇴실 조치를 당했다. ‘처음엔’ 이라던가 ‘태어나자마자’ 하는 단어들은 거의 금지어 수준이었다. 행여나 그 말을 입에 내뱉는 순간 리키를 보고 싱글벙글하던 정국이는 얼굴을 굳혔고 그 말을 뱉은 사람을 문밖으로 조용히 내보냈다. 분명 출생 직후 일주일간의 리키는 존재했지만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정국이는 막무가내였다. 사람들을 강제로 보내고 나면 리키를 붙들고 ‘리키야, 아빠는 리키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나 직설적이었던 탓에 한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김 비서님은 왠지 아이돌을 찍는 거로는 모자라 우주를 찍을 것 같은 엄청난 대포 카메라를 들고 조리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날 온종일 ‘리키 아버지 전정국의 하루’ 컨셉의 파파라치 컷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리키 탄생 22일 기념으로 -대체 아기 탄생의 투투데이는 왜 챙겼는지 모를 일이다- 엄청난 퀄리티의 화보집으로 재탄생되어 왔다. 사진 촬영 및 편집은 전부 김 비서님이 도맡아 했다고 들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김 비서님이 그렇게 애쓴 데에는 리키를 처음 봤던 날, 입을 잘못 놀려서 완전히 토라진 정국이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국이는 한동안 사무실에서도 김 비서님을 아는 체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도 섞지 않으려고 했고 김 비서님과 정국이 사이에 따로 통역관을 두어야 할 정도라고 했다. 어쨌든 김 비서님의 눈물겨운 사회생활 덕에 정국이와 김 비서님의 사이는 많이 좋아질 수 있었다.

 

 

“형.”

“응?”

“저 인터넷을 좀 해볼까 해요.”

“무슨 인터넷?”

“요새 이런 걸 홈마라고 한다던가요.”

“응? 홈마?”

“전, 리키의 홈마가 되겠어요. 이런 아름다운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아내지 않는 건 직무유기입니다.”

 

 

물론, 김 비서님이 사진을 너무 잘 찍어버린 탓에 정국이가 헛된 꿈을 꾸게 되었다. 정국이는 전리키의 탑시드 홈마 자리를 노렸지만 나의 강력한 제지로 겨우 그 꿈은 포기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우주를 찍을 것 같은 카메라는 계속 소유했고 언제나 리키를 담아내기는 했다. 아, 리키의 홈마는 두 명이었다. 하나는 리키 아빠, 다른 한 명은 리키 아빠의 안타까운 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