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이 보고 싶다.

 

 

W.새벽의덕후

 

 

 

[뷔민]

 

 

 

*추위로부터 지민이를 보호하는 방법

 

 

오랜만에 김태형이랑 밖에 나왔다. 그동안 얘랑 뭘 하지도 못했다. 얘는 직장을 다니느라 바빴고 나는 그런 김태형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김태형은 나중에 금옥이 태어나면 반드시 칼퇴근을 하고 말겠다며 일을 몰아서 하고 있었다. 바보 같았다. 그런다고 금옥이 태어나고 나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닐 텐데. 어쨌든 그런 김태형이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했다. 그 기념으로 같이 외식을 했고 먹고 나서는 서로 만족스럽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집 근처 공원을 돌았다. 날씨가 좀 추워져서 더 걷기는 힘들 것 같았고 공원을 돈 지 얼마 안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러다 전처럼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

 

 

“지민아, 이거 입어.”

“야, 너도 추워.”

“아냐! 나는 안 추워. 이거 너 입어.”

 

 

김태형이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나한테 둘러줬다. 아무튼 등신. 몸 위로 덮여진 옷은 김태형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따뜻했다. 자기 코도 벌거면서 나한테 기어고 옷을 둘러주는 게 좀 귀엽긴 했다. 그래도 춥긴 한지 코를 찔찔거리면서 흘렸고 내 옆에 바짝 붙어와 섰다. 뭐 오늘은 좀 사랑스러워 보이길래 그런 김태형의 허리를 감고 걸었다. 김태형이 내 머리통에 입을 맞췄다. 오랜만에 정상적이고 좋네.

 

 

“어, 지민아 너 춥지. 이거 너 해.”

“됐어. 뭐 그것까지 줘.”

 

 

김태형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기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도 나한테 둘러줬다. 얘는 진짜 이러다 살가죽까지 벗겨주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살가죽 빼고 모조리 벗어준 것 같았다.

 

 

“지민아 이 모자 너 써.”

“야, 이걸 왜 줘.”

 

“지민아 이 가디건도 너 입어”

“김태형. 너 안에 반팔,”

 

“지민아 이 양말,”

“닥치고 집에 가자.”

 

 

결국 나는 모자를 두 개나 쓰고 패딩 위에 가디건을 걸친 채로 걷고 있었다. 아, 제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에 김태형을 붙잡고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저 등신이 지금 날씨에 반팔만 입은 채로 여유 있는 척 걷고 있었다. 애 살이 벌써 벌겋게 붉어져 있었다. 이러다 이 길에서 얼어 죽을 것 같아서 걸음을 서둘렀다. 내가 내 몸에 있는 가디건이라도 입히려고 하면 펄쩍 뛰면서 자기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추위를 안 탄다고 얘기했다. 뭐래, 등신이. 나랑 겨울에 스키장 갔을 때 온몸에 핫백 붙이고 있던 거 내가 다 기억하는데. 그중에서 단 하나도 안 떼어줘서 내가 스키로 때린 것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놓고 이 겨울에 반팔만 입고 멀쩡한 척이라니. 김태형의 얇은 반팔을 손에 쥐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외출하러 가는 길이었으면. 아, 상상만으로도 암담했다.

 

 

“야, 빨리 들어가서 뜨거운 물로 씻어.”

“짐나 나 괜찮,”

“뜨거운 물 나오는 샤워기로 맞고 싶냐?”

 

 

옷을 쥐여준 채 김태형을 화장실에 밀어 넣고 부엌으로 향했다. 저러다 진짜 감기라도 걸리지. 애가 등신같이 미련하기만 했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나서 집에 있는 유자청을 꺼내 들었다. 컵에 유자청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잘 섞어주다가, 뭐야. 이거 무슨 요리 프로그램도 아니고 뭐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아무튼 유자차를 타고 나서 숟가락으로 유자를 건져 올렸다. 쟤는 유자차는 먹는데 그 안에 유자가 들어있으면 싫어했다. 김태형이 싫어하는 그 유자를 퍼 올려 우걱우걱 씹었다. 맛만 좋구만. 뭐라더라 따뜻한 노란 지렁이를 씹는 것 같다고 했나. 유자를 씹는 질감이 입 안에서 노란 지렁이를 터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아, 잠시만. 나 이거 왜 생각했지. 잘 씹던 유자를 싱크대에 뱉어버렸다. 그러고 있으니 김태형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문으로 모락모락 연기가 나오는 걸 보니 뜨거운 물로 씻긴 한 것 같았다.

 

 

“마셔.”

“이게 뭐야?”

“유자차. 일단 먹어.”

“왜?”

 

 

컵을 건네받으며 대답하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요상했다. 저럴 줄 알았어. 그새 감기에 걸렸다. 평소에도 추운 걸 제일 싫어해서 남들보다 가장 먼저 전기장판을 꺼내놓고 남들보다 가장 늦게 전기장판을 넣어 놓으면서 그렇게 홀랑 벗고 다닌다 했다. 벌써 코가 맹한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멀뚱하게 서서 유자차를 홀짝거리기만 있길래 그런 김태형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고개만 몇 번 저었다. 그리고 거실로 가서 약통을 뒤졌다.

 

 

“찜나, 왜? 어디 아파? 약 먹어도 돼?”

“나 말고 너.”

“나? 나 괜찮은데.”

“아니야. 자, 이거 먹어.”

 

 

김태형은 유자차를 홀짝대면서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내가 주저앉아서 약통을 뒤지니까 자기도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유난을 떨었다. 그런 김태형한테 종합감기약을 쥐여줬다. 꿍얼거리면서도 시키니까 약을 뜯기는 뜯었다. 그리고 그걸,

 

 

“야, 야! 아오 이 천치야. 그걸 유자차랑 같이 처먹냐. 유자차 개 뜨겁거든?”

“지, 지민아. 뜨, 뚜거어.”

“당연하지. 아유 이 등신.”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자차와 함께 약을 홀랑 삼켰다. 진짜 내가 미칠 것 같았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저 등신, 저 천치. 쟤를 어쩌면 좋아. 김태형은 유난을 떨더니 후다닥 달려가서 찬물을 마셨다. 그래도 나름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김태형을 보면서 몸을 일으켰고 입을 멍청하게 벌리며 ‘뚜그워’하는 김태형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으로 입 안을 부채질하던 김태형을 침대에 눕혀버렸다. 연신 뜨거워하던 김태형은 촉촉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 일단 푹 자. 너 진짜 아까 내 말 안 듣고 옷 다 벗어줘서 감기 걸리면 죽여 버린다.”

“지밍아아….”

“이 봐. 너 지금 코 막힌 소리 나거든? 자고 일어났는데 아프다고 칭얼대기만 해. 진짜 목 졸라버릴 거야.”

“알겠어.”

 

 

김태형은 잠투정 부리는 어린애마냥 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줬고 전기장판을 켜둔 후 방문을 닫고 나왔다. 쟤가 감기 걸리면 쟤만 고생인 게 아니다. 만일 그 감기를 내가 옮기라도 한다면 지난번처럼 숭늉 같은 죽을 먹거나 물이 흐르는 물수건을 두르게 될 거였다. 지난날이 생각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되풀이되면 안 된다.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면서 소파 위에 앉아 티비를 켰다. 머지않아 나도 소파 위에서 잠들었다.

 

 

-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 잠에서 깼다. 분명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어느 틈에 침대 위에 있었다. 뭐야, 김태형이 옮겨 놓은 거야? 근데 내가 깨지도 못하고 잠자고 있었다고? 오만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이 어두워서 침대 옆 협탁에 있는 스탠드를 켰다. 그리고 아주 조금 밝아진 방 안을 보다가 그동안 금옥이 때문에 열심히 참았던 욕을 뱉었다.

 

 

“으어, 시발!”

 

 

김태형이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찾았는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로 있었다. 방에 괴한이라도 들이닥친 줄 알고 정말 놀랐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김태형은 내가 놀라자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오려고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아놓고 다시 뒷걸음질을 치더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야, 너 왜 그러고 있어.”

 

 

내 질문에 김태형은 그저 눈만 끔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저러고 있는 거야. 쟤가 왜 저러나 싶어서 침대 아래로 발을 내리고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김태형이 갑자기 미친 듯이 온몸을 떨면서 고개를 젓고 양팔을 흔들었다. 뭐야, 왜 저래. 매일 미친놈, 미친놈 했더니 정말 미친 거야?

 

 

“야, 왜 그래. 뭐, 오지 말라고?”

 

 

끄덕끄덕.

 

 

“야, 말로 해. 말 안 할 거야?”

 

 

끄덕끄덕.

 

 

“너 진짜 그렇게 계속 말 안 할 거야?”

 

 

끄덕끄덕.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절레절레.

 

 

“야 너 진짜 속 터지게 할래?”

 

 

또 절레절레.

 

김태형은 계속 저런 식으로 나와 대화를 하려고 들었다. 아오, 속 터져 진짜. 쟤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약 먹고 곱게 잠들었다가 깼으면 병이 나아야 하는데 무슨 다른 병을 얻은 것 같았다. 내가 째려보고 있으니 김태형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벽에 쫙 붙어서 슬금슬금 걷더니 밖으로 빠져나갔다. 뭐야, 쟤 진짜 왜 저러지, 싶었다. 얼굴에 손수건까지 두르고 있으니 영락없이 수상한 놈이었다. 곧이어 김태형이 방문 앞에 서더니 뭔갈 들었다. 에이포 용지에 뭐라고 써 놓았다. 방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길래 김태형한테 불을 켜라고 했다. 갑자기 환해진 방 안에 눈을 잠깐 찌푸렸다가 김태형의 손에 들린 종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정말 미안해 지민아 내가 감기에 걸렸어 내가 혹시 말을 하면 너한테 감기가 옮을 수도 있으니까 말을 하지 않을 거야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줘]

 

 

“감기 걸렸다고?”

 

 

끄덕끄덕.

 

 

“내가 죽여버린댔지.”

 

 

절레절레.

 

 

“넌 진짜 미련 맞은 거야, 뭐야. 왜 사람 말을 안 들어서 약까지 먹였는데 감기에 걸려. 너 추위 잘 타는 거 너나 나나 잘 아는데 그렇게 다 벗어주더니. 하, 내가 너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근데 왜 그래서 감기에 걸리고 난리야.”

 

 

김태형은 눈만 보였지만 그 눈만으로도 얼마나 시무룩해 있는지가 보였다. 침대 위에서 한숨을 내 쉬다가 김태형한테 침대로 올라가라 했지만 죽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또 다른 에이포 용지에 [나는 소파에서 잘게]라고 하는 김태형을 째려보다가 담요며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이부자리를 정리해주고 좀 더 잔소리를 한 후에 김태형을 재웠다. 열을 재려고 해도 이미터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난리난리를 쳐서 네 멋대로 하라고 소리친 다음에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물론, 머지않아 밤에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밤을 새워 김태형을 간호하기는 했다. 미련 맞은 놈 같으니. 내가 아프면 내가 고생하고 김태형이 아프면 내가 고생한다. 얘도 나도 그래서 아프면 안 된다. 내가 힘들어. 그러니까 태형아, 얼른 나아. 건강해져야 패지.

 

 

 

*출산 임박

 

 

금옥아, 금옥아. 제발 엄마 좀 살려줘. 나는 집히는 아무거나 움켜쥐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진짜 너무 아팠다. 진통이 이미 시작되어서 병원에 미리 가 있어야 했는데 출산을 위해 입원하고 나면 더 잘 못 먹는다는 얘기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 참을 만한 고통이라고 생각해서 진통이 살짝 멎는 틈을 잘 이용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지금 이 사달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죽을 것 같았다. 아까 병원으로 안 가고 부엌으로 간 내 자신이 정말 미웠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열심히 끙끙대고 있는데 문득 내 귀에 다른 앓는 소리가 들렸다.

 

 

“으헉. 여, 여보야아.”

“아씨이, 뭐야.”

 

 

그제야 나는 내가 열심히 움켜쥐고 있던 게 김태형의 멱살이라는 걸 깨달았다. 김태형의 목덜미를 쥐고 아주 열심히 앓고 있었다. 멍청한 김태형은 내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자기 멱살을 쥔 내 손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저게 아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내가 우니까 따라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제야 멱살을 쥔 손을 풀고 근처에 있던 이불을 쥐었다. 컥컥거리며 숨을 고르던 김태형이 내 배에 손을 얹었다. 얘의 울음소리 사이사이에 ‘금옥아’ 하는 소리도 들렸다.

 

 

“옥아, 금옥아. 엄마 아파. 흐어엉. 금옥이도 아파아.”

“야…. 시끄러워.”

“으허엉, 금옥아아. 지민아아.”

“개, 아니. 야. 태형아…. 병원, 병원 가자.”

“흐어, 어? 어어.”

 

 

김태형은 아라써어, 라고 대답하더니 눈에 눈물을 그득그득 매달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하면서 진정되라는 호흡을 하기도 했는데 영 시원치 않았다. 좀 숨을 쉬고 진정되나 싶으면 느닷없이 배가 쥐어뜯기는 것처럼 아팠다. 계속 그렇게 아파하다가 또다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으어어, 차키이, 차키가 없어어.”

“야…. 차키 식탁 위에….”

“흐어어엉, 없어어. 수건도 없어어.”

“수건은 필요가…. 없어….”

“으어엉엉, 가방, 가방 어디가찌.”

“김태…. 가방 찾으러 왜…. 화장실에 가….”

 

 

환장할 노릇이었다. 쟤는 원래도 짐을 제대로 챙기지를 못한다. 짐을 챙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뭐가 어디 있는지를 잘 못 찾는다. 분명 자기가 놓아둔 것도 모른다. 그런 놈한테 내가 대체 뭘 부탁한 건가 싶어졌다. 게다가 저 정신머리로 무슨 운전을 하겠다고 차키를 찾는지. 나는 몸을 움직여 핸드폰을 찾았다. 금옥이 갖고 욕을 최대한 자제 했는데. 이런 썅, 내가 하고 말지 싶었다. 울면서 의미 없이 집을 휘젓는 김태형의 꼴을 마뜩잖게 지켜보다가 콜택시를 불렀다. 곧 도착한다는 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었고 아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몇 번이고 주저앉을 것 같았는데 또 그때면 어디선가 김태형이 나타나 내 몸을 부축했다. 나는 김태형을 휠체어 삼아 집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짐을 챙겼다. 침대 바로 옆에 떨어져 있던 가방을 들고 김태형을 옆에 끼고 여기저기 다녔다. 집기 힘든 건 김태형을 시켰다.

 

 

“흐어어엉, 짐나, 지밍아.”

“닥쳐, 태형아.”

 

 

결국 내가 챙긴 짐과 역시나 내가 챙기고 있는 김태형을 양옆에 끼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래, 울어라. 마음껏 울어라 이 개자식아.

 

 

 

* 금옥이 처음 만난 날

 

 

“짐나, 빨리. 빨리이”

“알았어.”

 

 

김태형이 신났다. 물론 얘는 늘 신나 있었지만 오늘 조금 더 특별하게 신났다. 금옥이를 처음 보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애 낳을 때 김태형이 분만실까지 따라 들어오긴 했다. 출산 장면 다 지켜보고 탯줄까지 자르겠다고 당당하게 들어 왔는데 엉엉 우느라 탯줄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 손가락을 자르려고 했었다. 결국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김태형을 붙잡고 아바타처럼 조종해서 탯줄을 잘랐고 분만실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래서 얘는 금옥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나는 혼미한 정신에 금옥이를 품에 안았다. 물론 막 태어나서 엄청 예쁜 건 아니었는데 올망졸망한 얼굴로 우는 게 쫓겨난 지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김태형이 드디어 금옥이의 실물을 마주하는 날이었다. 자꾸 내 병원복을 잡아끌었다. 들뜬 모습과 긴장된 모습이 전부 보여서 꽤 귀여웠다.

 

 

“여기야? 여기?”

“태형아. 화살표가 정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잖아.”

“아아, 그렇구나.”

 

 

이쯤 되니 그동안 집은 어떻게 찾아왔으며 회사는 어떻게 갔으며 출장이며 여행이며 하는 것들은 어떻게 다녀왔는지 김태형의 일상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버젓이 신생아실이라고 써진 글자 아래로 화살표가 오른쪽을 가리키는데 그걸 보면서 왼쪽으로 발을 옮기는 건 어떤 사고방식일까. 나는 내 팔짱을 끼고 있는 김태형을 가만히 보다가 김태형을 따라 걸었다. 그 멀지 않은 길을 가는 내내 김태형은 여기저기 우왕좌왕해댔다. 어휴, 앞으로 갓난쟁이와 김태형을 키울 내 앞날이 암담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신생아실 유리문 앞에 있었다. 와, 애들 진짜 많네.

 

 

“저기 금옥이다.”

“어? 어디?”

“저기 있잖아. 우와, 우리 금옥이 우주 같아.”

“뭔 소리야.”

“저기, 금옥이 저기 혼자서 빛나잖아.”

 

 

대체 어딜 말하는 건지 나는 김태형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저 아이가 금옥이라고? 왠지 잘 모르겠어서 얼굴만 몇 번 긁적였다. 신생아실 안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잠시 다른 업무를 정리하느라 나랑 김태형만 유리문 안을 보고 있는데 김태형이 자꾸 금옥이, 금옥이 이랬다. 침대 옆에 있는 가방을 찾으러 침대에 있다가 화장실로 가는 애가 하는 말에 영 신빙성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걸어가더니 김태형이 말한 그 아기한테로 다가갔다. 김태형은 금옥이다, 금옥이 하면서 신이 났지만 나는 그런 김태형이 신기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금옥이를 안아 들고 유리문 앞에 섰다. 김태형은 활짝 웃었다. 창문에 손을 대고 ‘금옥아아, 아부지야 아부지.’ 하고 있었다. 창문에 댄 손마저 조심스러웠고 가끔 톡톡, 의미 없이 창문을 살살 두드렸다. 그런 김태형을 가만히 보다가 나 역시 금옥이를 쳐다봤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금옥이는 참 잘생겼다. 이 신생아실에서 제일 잘생긴 듯.

 

 

“오오, 방금 봤어? 금옥이가 인사해줬어.”

“코 긁은 거거든.”

“방금 태어난 애기가 코를 긁었어? 헐, 금옥이 천재다. 그치, 지민아. 우리 금옥이 천재인가 봐. 네가 천재를 낳았어!”

 

 

멍청한 소리를 저렇게 해맑게 하면서 김태형은 나를 끌어안았다. 면회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나는 김태형이랑 병실로 돌아가야 했다. 손을 잡고 같이 병실로 가는 길에 김태형은 조잘대면서 금옥이 대천재설, 금옥이 대천사설, 금옥이 아부지 알아본 썰 등을 열심히 풀었다. 나는 그런 김태형의 말은 대충 흘려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뭐, 애가 좀 바보 같아도 그래도 김태형이라면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았다. 저렇게 사랑 가득한 아부지면 뭐, 자격 충분하지 뭐.

 

 

“그럼 지민아 우리 금옥이 이름 천재로 할래? 김천재?”

“야.”

“아, 그건 좀 그런가. 그럼 천사 어때. 김천사!”

“김태형.”

 

 

금옥아. 아빠가 사랑은 가득한데 사랑이 넘쳐서 다른 게 조금 모자랄 수 있어. 우리가 이해하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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