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 보고 싶다.

 

 

* 특별편! <How I met your mother/father!>

 

 

W.새벽의덕후

 

 

 

[국민]

 

 

세상에, 진짜 멋있네. 눈앞에서 펼쳐지는 분내 폴폴 나는 미소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버스가 덜컹거렸고 손에 쥐고 있던 pmp가 떨어졌다. 아 진짜. 이놈의 손. 남들 다 자랄 때 얘는 왜 이렇게 덜 자라서 사람 힘들게 하는 거야. 물론 얘만 안 자란 건 아니지만. 인상을 찌푸려버렸다. 버스 안에서 열심히 몰입한 채로 아이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흐름이 끊기자 짜증이 확 올랐다. pmp를 거칠게 집어 들고 대충 먼지를 닦아냈다. 다행히 어디가 깨지지는 않았다. pmp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멀쩡한 것을 확인한 후에 흥이 끊겨서 가방에 던지듯이 넣어 버렸다. 다행인지 어느덧 버스는 내가 가야하는 정류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바라본 동네에서 약간 부자 냄새가 났다. 돈 있는 집이라더니, 진짠가 보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서울에도 이런 집이 있구나 싶어서 작게 ‘우와’하는 소리를 내 버렸다. 입을 헤, 벌리고 멍청하게 집을 둘러보고 있을 때 집 안에 있던 사람이 따라오라고 했다. 그 소리에 벌려놨던 입을 재빨리 닫아 물고 뒤를 따랐다. 집 안에 계단이 있는 건 드라마에서 말고 처음 보는 거였다. 내가 직접 그런 계단을 오를 줄이야. 자꾸 밀려오는 어떤 흥분감에 코로 강하게 숨을 내뿜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아는 지인이 고3 과외를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과외는 부담스럽다고 거절했었다. 그런데 상대가 성적은 안 올려도 되니까 그냥 공부할 마음만 먹게 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해 오길래 승낙을 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꽤 높은 보수가 설득력을 높여주긴 했다. 이런 집이라서 나 같은 초짜한테도 그 정도 보수를 준다고 했구나. 집을 다시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안에 아무도 없어요?”

“씻으러 들어가셨거든요. 금방 나오실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셨다, 나오실 거다. 어쩐지 19살에게는 맞지 않는 높임 표현들이었다. 그러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쩐지 그 높임 표현들을 나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와, 방 크기 좀 봐. 내 자취방 다섯 개는 붙여 놓은 것 같아. 문을 열고 맞이하게 된 신세계에 굉장히 당황했다. 진짜 넓고 좋은 방이었다. 방 안에 문이 또 있고, 뭐 그랬다. 이렇게 큰 방도 처음이라 신기함에 목을 쭉 빼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 왠지 주인 없는 방에서 혼자 이러는 게 민망해졌다. 괜히 뒷목을 긁적인 후에 책상 앞에 앉았다. 금방 오겠지. 책상 위에 준비해 놓은 사과가 보이길래 대뜸 집어 물었다. 오, 맛있는데. 부잣집 사과는 맛도 다른가. 그렇게 사과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큼, 어 안녕하세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나오는 남자애를 보자마자 입에 물고 있던 사과 조각이 성급하게 넘어갔다. 컥컥거리며 가슴을 치다가 일단 인사가 먼저인 것 같아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젖은 머리의 소년도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를 해왔다. 와, 쟤 진짜 잘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생긴 얼굴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취미는 아이돌이나 연예인 영상 보는 거였다. 그냥 뭐, 잘생긴 게 좋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과외 올 때 잘생긴 애면 좋겠다, 하고 잠깐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까진 생각하진 않았는데. 눈앞에 나타난 소년은 진짜 엄청 잘생겼다. 학생은 머리를 거칠게 털어내더니 수건을 아무 곳에나 던져놨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학생이 가까워질수록 바디 워시 향이 시원하게 났다.

 

 

“괜찮으세요?”

“어? 아, 네. 괜찮아요.”

 

 

여전히 조금씩 목을 가다듬는 날 보더니 학생이 책상에 올려져 있던 물을 건네주었다. 오, 세상에 손도 잘생겼다. 씻고 나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붉은 손끝을 쳐다보면서 물컵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실물 사이즈로 본 건 처음이라 안 그래도 입안이 바짝 마르면서 긴장이 되었기에 건네받은 물을 열심히 마셨다. 마시면서 눈알만 굴려 학생을 쳐다봤는데 어느 틈에 의자에 앉은 학생이 책상 위로 한쪽 팔을 올려두고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노골적이라 그대로 물을 뿜어버렸다.

 

 

“어, 컥. 어떡해.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괜찮으세요?”

“네. 저는 괜찮은데. 어떡해. 씻고 나왔는데.”

 

 

당황한 채로 의자에서 일어나 근처에 보이는 휴지를 뽑아서 학생한테 튄 물을 닦아주었다. 아, 처음부터 이게 뭐야. 학생은 정말 상관이 없는지 계속 콜록거리는 내 등을 쓸어 주었다. 그 손길에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큼, 하고 몇 번 목을 가다듬었는데 어쩐지 민망했다. 원래 이렇게 어색한 건가. 오늘은 처음 만나는 거라 일단 통성명하고 좀 친해져 볼까 했는데 다 그른 것 같았다. 민망함에 아무 것도 없는 애꿎은 책상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 전정국이에요.”

“아, 맞아. 어 나는 박지민이라고 해요.”

“…쌤 진짜 예쁘게 생겼네요.”

“고마, 예? 네?”

“귀엽기도 하고.”

 

 

처음엔 그냥 짓궂은 청소년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은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 몇 마디를 나눴다. 곧 수능일 고3에게 왜 주요 과목인 국어 과외를 나 같은 초짜에게 맡기나 했지만 돈이 궁한 자취생인 나에게는 굉장히 이득이었다. 특히 보수도 보수지만 매주 볼 학생의 얼굴이 저렇게 잘생겼다는 것도 또다른 이득이었다. 물론 이것저것 이득 투성이인 과외였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했다. 


바로 그 다음 주 수업에서부터 아는 지인이 성적은 필요 없으니 왜 공부할 마음가짐만 갖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얘는 진짜 공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기 지문 읽어보자. 여기서 복선은 어떤 걸까?”

“아, 쌤 목선 진짜 예뻐요.”

“정국아.”

“턱선도.”

“정국.”

“만져봐도 돼요?”

 

 

수업의 패턴은 내내 이런 식이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정국이는 저런 식으로 다른 소리를 해댔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내 턱을 만져보기도 했다. 이거 뭐 ‘손대지 마시오’ 라고 팻말이라도 붙여놔야 하나, 그런 고민까지 될 정도였다. 자꾸 수업의 흐름을 끊어내는 정국이 때문에 화가 나다가도 옆을 돌아보면 예쁘게 꽃받침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울컥 차오르던 화가 저 밑까지 쭉 내려갔다. 진짜 정국이도 문제였지만 나도 문제였다. 늘 나 혼자 화가 났다가 정국이의 얼굴을 보고 화가 가라앉는 수업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정국이가 수업에 집중은 잘 안 해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는 거다. 문제를 풀라고 시키면 꽤 잘 맞히곤 했다. 여름이 올 즈음 시작했는데 어느새 수능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동안 수업을 해오면서 나는 수능장에 들어갈 정국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하고, 그저 수능 시험을 전부 치르고 나오기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날도 그런 마음으로 수능을 앞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이 손으로 건넸다, 라고 하는 거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쌤은 손이 정말 작네요.”

“그 얘기라면 이미 서른 번은 넘게 한 거 같아.”

“그거밖에 안 했어요? 난 또 삼백 번은 한 줄 알았네.”

"정국아. 수업,"

“잡아 봐도 돼요?”

“이미 잡고 있잖아.”

 

 


어 그랬구나.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작은 손을 계속 조물거렸다. 손안에 들어온 말랑한 손을 보고 있으면 뭔가 내 가슴도 말랑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정말. 이 쌤은 사람의 어떤 뭐라고 하지, 이상한 공격성 같은 걸 자극 시킨다. 뭔가 충동질하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나처럼 들끓는 십 대 고딩에게 이런 선생님은 너무 자극적이다. 물론 그래서 좋다. 아, 나 왜 고딩이지. 


쌤은 다시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고 나는 책상에 양팔을 올리고 양손에 턱을 올렸다. 쌤은 진짜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나. 내가 이렇게 보고 있으면 자기의 그 두꺼운 입술의 입꼬리가 쭉 당겨 올라가고 광대가 터질 것처럼 얼굴 가득 웃는 거. 자기도 나 되게 좋아하면서, 매번 아닌 척은. 가만히 쌤의 웃는 얼굴을 감상했다. 웃고 있으면 쌤의 앞니 하나가 아랫입술을 꾹 누르는데 그게 진짜 예술이었다. 아, 진짜 입술 부비고 싶다. 막 저 치열을 혀로 막 훑고 싶,

 

 

“정국아. 혀 집어넣어.”

“에? 어, 뭐야.”

“대체 수업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쌤 생각이요.”

 


솔직히 나 같은 열혈 고딩이 반년 넘게 이 쌤을 지켜준 건 엄청난 의지가 있어서였다. 몇 번이고 입을 맞추고 싶고 통통한 손을 씹어보거나 가는 목선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는데 이 작은 쌤이 놀랄까 봐 정말 많이도 참았다. 근데 아무래도 지금 이 순간 날 가만히 마주 보고 있는 이 쌤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만간 수능도 볼 거고 그러면 이제 성인인데. 가만히 쌤을 보고 있자 이 쌤은 또 그랬듯이 해맑게 웃어 버렸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음이 자꾸 마음에 불을 지폈다. 끈덕지게 쌤을 보니 그제야 이상했는지 볼을 긁적였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쌤을 따라 일어섰다.

 

 

“왜, 정국아?”

“쌤. 쌤도 저 좋아하죠.”

“어? 그게 무슨.”

“저도 쌤 좋아하는데.”

 

 

그 말을 하고선 곧장 앞에 선 이 작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들어 올렸고 내 침대 위로 눕혔다. 뭐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몸은 가벼웠다. 이렇게 작고 가벼우면 내가 매일 들고 업고 다니고 싶어지는데.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선생님은 커진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내 침대에 누워서 저렇게 예쁘게 뜬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과외 선생님이라니. 텍스트로 풀어낸 설정만으로도 아찔할 지경이었다.

 

 

“저기, 정국아.”

“왜요?”

“아니. 그 나는 너의 과외 선생님이고….”

“네. 그리고요?”

“넌 학생…인데.”

“그러니까 이렇게 자극적인 거죠.”

 

 


아, 그런 거구나. 내 위에서 멋들어지게 웃는 정국이의 얼굴에 결국 수긍해 버렸다. 그래, 어 뭐 저런 얼굴이 하는 말이 다 진리겠지 뭐. 정국이는 그대로 내 목덜미를 물었다. 아니, 근데 나 진짜 이래도 괜찮은 거야? 아주 진부한 대사긴 하지만, 정말 나는 선생이고 얘는 학생인데? 그 영화에선 동갑이기라도 했지. 얘는 나보다….

 

 

“무슨 생각 해요?”

“아니, 아무것도.”

“다른 생각 말고 나한테 집중해요.”

 

 

그래 뭐 살다 보면 교복 입은 애랑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결국 그 날 나는 수능을 코앞에 둔 제자와 격정적인 관계를 치러버렸고 그 길로 과외를 그만뒀다. 정국이가 싫다거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꾸 내가 내 손으로 벗겨낸 교복이 생각났고 물론 잘생겼지만 어린 티가 많이 있는 정국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뭐랄까. 그냥 정국이 보다는 어른인, 성인 남성으로서 어떤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꼈다고나 할까. 그 후로 핸드폰에 정국이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번호도 바꿨고 자취방도 옮겼다. 철저히 나 혼자 피했다. 미안하기도,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냥 괜히 어린 애를 꼬여낸 기분이랄까. 아무튼 나도 그때는 참 많이 복잡했다.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앞으로 평생 보면 안 될 것 같고. 자꾸 꽃받침을 한 채 나를 쳐다보던 그 눈을 상상하며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딱 한 번, 정국이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에.

 

 

“쌤.”

“어? 정국아. 어, 오랜만이야.”

“군대 간다면서요.”

“응? 어, 어떻게 알았어?”

“왜, 연락이 안 된 거예요?”

“정국아. 그 날은.”

“쌤은 장난 같았어요? 전부?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

“그렇다기보다는. 정국아. 너는 아직 어린 십 대지만 나는 아니잖아.”

“그게 왜요. 뭐가 문제인데요.”

“양심의 가책이라고 해 두자, 우리. 미안해. 나 가볼게.”

 

 

그 날은 아주 잠깐 대화를 했다. 내가 도망쳤다. 정국이의 말대로 도망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본 얼굴은 많이 반가웠다. 여전히 잘생겼지만 그 눈에 눈물이 그렁한 건 자꾸 마음이 쓰였다. 정국이로부터 뒤돌아서 아무 곳으로나 걷던 중에 건물 유리창으로 정국이가 보였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정국이한테 갈 자신이 없었다. 그때는 나도 고작 21살밖에 안 된, 어린 애였다. 그 후로는 정국이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군대에는 잘 갔고, 제대도 잘했고, 졸업까지 했다. 졸업 후에는 대기업 계열사에 운 좋게 취직도 했다. 일은 재미있었고 그렇게 정국이는 잊혀지는 것 같았다. 가끔 그 잘생긴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또 꽃받침을 한 그 생그러운 미소가 생각이 났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봤던 울먹이는 얼굴에 괜히 마음이 시큰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취직한 곳에서 주어진 일을 꽤 잘해냈고 내 얘기가 좋게 돌더니 끝내 본사 입성을 하게 되었다. 직원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나는 당당하게 나의 새로운 커리어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사를 하러 들어간 팀장실에서 정국이를 만나버렸다.

 

 


“정국아.”

“오랜만이에요. 쌤.”

“너 어떻게 여기.”

“애 좀 썼어요. 도망친 선생님 잡아 오려고.”

“응?”

 

 

도대체 정국이가, 나보다 어린 정국이가 어떻게 본사 홍보팀 팀장 자리에 앉아있는지 이해할 겨를도 없이 정국이의 말이 귓가에 댕, 하고 울렸다. 나를 잡아 오다니? 그럼 내가 이 본사에 있는 게 정국이의, 그 소위 말하는 낙하산 같은 건가. 갑자기 밀려오는 이상한 기분에 정국이를 쳐다봤다. 정국이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멈추지 않고 내 쪽으로 다가온 정국이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비상등이 삐용 하고 울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아, 무작정 데려온 건 아니에요. 선생님 능력도 충분히 고려했어요.”

“정국아. 나는.”

“그때는 양심에 찔려서였다고 그랬죠. 지금은요?”

“어? 지금?”

“지금 나랑 하면, 지금도 양심에 찔릴 것 같아요?”

 

 

얼굴이 맞부딪히기 직전의 상태인, 그만큼 가까이 닿아있는 정국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얘는, 뭐 이렇게. 무슨 말도 못하게 잘생겼냐. 이상한 긴장감에 혀로 입술을 쓸었고 그런 내 입술 위를 정국이가 손가락으로 쓸어냈다. 정국이의 손이 닿자마자 발끝까지 짜릿해져 오는 느낌에 몸을 움찔해버렸고 그걸 본 정국이가 입꼬리를 더 올리며 웃었다. 다시 한 번 나에게 ‘응? 그래요?’ 하고 물어왔다. 저런 얼굴로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어.

 

 

“…아닐 것 같아.”

 

 

뭐 그래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정국이는 아주 질 좋은 팀장실 내부의 소파로 날 넘어트렸고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지난번에는 교복 입은 정국이였는데, 지금은 수트를 빼입은 정국이였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굉장히 아찔했다. 그래, 그때 정국이가 말했던 것처럼 이래서 자극적이다. 그나저나 홍보팀 팀장이 이 정도로 잘 생겼으면 회사 홍보가 절로 되게 생겼네. 좋은 게 좋은 거고 잘생긴 건 최고야. 이렇게나 짜릿해. 세상 사람들 잘생기고 어린 연하가 이렇게 이롭답니다. 다들 연하하세요.

 

 


+

“어머, 전 팀장님이요?”

“네. 아, 안 그러시나 봐요.”

“아니 능글맞기는요. 완전 쌀쌀맞으신데.”

“맞아. 딱히 팀원들한테도 관심이 없으세요.”

 

 

나는 본사로 들어간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사내연애를 시작했고 여태까지 비밀스럽게 연애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인 사이인 것은 숨길 수 있었지만 아는 사이라는 건 숨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예전에 정국이의 과외 선생님이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팀원들이 고등학교 때의 정국이를 궁금해하길래 나도 신이 나서 얘기해 줬는데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국이가 쌀쌀맞다니. 나는 오히려 그 말이 더 믿을 수 없었다.

 

 

“근데 뭐 요즘엔 좀 좋아지긴 하셨어요.”

“맞아. 잘 웃으시고 인사도 잘 해주시고.”

“아, 말이 나와서 하는데. 전 팀장님 웃을 때 진짜 멋있지 않아요?”

“네? 아, 네. 멋…있으시죠.”

“고등학생일 때도 정국, 아니 팀장님 진짜 잘생기셨거든요. 지금도 엄청 잘생기셨지만.”

“지민 씨는 그래요? 나는 기획팀 김 팀장님이 좀 더 취향이던데.”

“어어, 나도.”

“무슨 소리세요. 정국이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이목구비가 그렇게 조화로운 사람을 내가 정국이 이후로 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사내 연애는 진작에 들켰었고, 나는 홍보팀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 전 팀장 얼굴 홍보 담당으로 불렸다고 했다.

 

 


+정국이의 비밀

 

“형, 형. 저 사람. 알아요?”

“누구? 아, 우리 과 박지민?”

“소개해줘요.”

“야, 정신 차려. 넌 고삼이고 쟤는 대학생이거든?”

“아 무슨 상관이에요. 형, 내 시계 갖고 싶다고 했죠. 줄게요.”

 

 

내 말에 형이 눈을 번뜩였다. 내 시선은 여전히 저 박지민이라는 사람에게로 꽂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존재하다니. 딱히 귀여움을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도 풍기는 분위기가 진짜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사촌 형에게 밥 한 번 얻어 먹자고 형의 대학에 놀러 온 거였는데 비싼 시계를 뜯기게 생겼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냥 저 사람을 꼭 만나고 싶었다.

 

 

“야, 그러면 소개는 좀 그러니까. 어, 그래 과외. 과외 선생님으로 하자.”

“내가 무슨 과외가 필요해요.”

“알아. 아는데. 야 그럼 내가 쟤한테 여어, 고삐리 소개받을래? 올해 수능 보는 애야, 라고 하면 쟤가 와! 좋아요! 이러겠냐.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아,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지. 너도 뭐, 과외 한다고 더 나쁠 건 없잖아.”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영어만 아니면 다른 공부는 썩 잘했다. 이상해, 왜 영어는 이렇게 싫지. 아무튼 형은 과외를 연결시켜주겠다고 하고 내 손목에서 시계를 뜯어갔다. 허전해진 손목을 매만지며 나는 다시 그 박지민이라는 사람이 있던 곳을 쳐다봤다. 친구들 사이에서 웃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와아, 진짜 예뻤다. 이런 게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구나. 절로 깨달음을 얻었다. 형은 이만 밥 먹으러 가자고 했고 아쉬움 가득한 걸음을 돌렸다. 박지민 선생님 조만간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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