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 보고 싶다.

 

 

W.새벽의덕후

 

 

 

[슈짐]

 

 

 

* 추위로부터 지민이를 보호하는 방법

 

 

“형,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응. 이건 양보할 수 없어.”

“아이 진짜. 그래도 이거는.”

“안 돼.”

 

 

형의 단호함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외출하기로 한 거면서 무슨 알래스카라도 가는 것처럼 형은 나를 꽁꽁 싸매 놓았다. 형이나 나나 대체로 집에만 있었고 집에서 서로를 계속 보니까 굳이 밖에 나가질 않았다. 만일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형이 나를 집에 고이 모셔두고 밖에 나갔다 왔다. 그런데 그렇게만 지내다 보니 나나 형이나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결국 둘 다 이대론 안 되겠다며 간단한 외출을 하기로 했다. 


내가 너무 만삭이라 어디 멀리는 못 가고 그냥 근처 드라이브나 가기로 했다. 근데 드라이브면 어차피 차로 이동할 거고, 차에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줄 거면서 형은 나를 엄청나게 꽁꽁 싸맸다. 털모자는 물론이었고 장갑까지 끼게 했다. 기모가 짱짱한 임부복과 그 위에는 가디건 거기다 그 위에 또 패딩을 입혀놓고 담요까지 둘러 주었다. 한겨울이긴 했지만 어디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차로 갈 거면서 왜 이렇게 입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형은 너무 완고했고 나는 그런 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와아. 형 나오니까 진짜 좋죠.”

“그러게. 좋다.”

 

 

분명 가까운 근처로 드라이브를 가려고 했는데 둘이 손가락으로 꽁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길을 잘못 빠져버렸고 결국 조금 멀리 떨어진 바다에 도착했다. 잘못 빠졌을 땐 둘 다 당황했지만 이내 도착지가 바다라는 걸 알고 만족했다. 하필 잘못 들어선 길도 바닷가라며 이건 바다에 갈 운명이었다고 또 둘이 짝짝거리며 신이 났다. 형도 나도 갑작스러운 겨울 바다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형은 대체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담요를 더 꺼내와 나한테 둘러주었다. 여러모로 몸이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바람과 바닷바람을 쐬니까 기분이 좋았다.

 

 

“형도 좀 덮어요.”

“아냐, 난 괜찮아. 너랑 삐약이 덮어.”

“그러다 감기 걸릴라.”

“형은 감기 같은 거 안 걸려.”

 

 

형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멋있게 웃었고 나도 그런 형을 보면서 따라서 웃었다. 



그렇게,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엄청 멋있게 웃었던 형은 다음 날 감기에 걸렸다.

 

 


“형, 진짜 이럴 거예요?”

“어쩔 수 없어 지민아. 미안해.”

“아니, 그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이건 난데없는 감금이었다. 물론 감금은 내가 아니라 형이 당한 거였다. 당했다는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하다. 형은 자기 자신을 가둬버렸다. 절대 내가 옮으면 안 된다며 방에 틀어박혔다. 그러다 내가 뭐라도 하려고 하면 쏜살같이 나와서 나랑 말도 섞지 않은 채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자기가 해버렸다. 결국 나는 형한테 죽 하나 못 쒀주고 말았다.

 

 

“나 아팠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 놓고, 형은 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자 하려고 해요?”

“지민아, 그거는.”

“형은 날 위한다고 하겠지만 그거 하나도 아니거든요.”

“꼬꼬야. 그래도 너랑 삐약이가 아프면 안 되잖아.”

“알아요. 아는데 형 그렇게틀어 박혀서 혼자 앓게 두면 나는 뭐 맘 편히 있어요? 그런다고 내가 안 아파요?”

“지민아.”

 

 

결국 방문에 대고 형한테 화를 내버렸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또 문을 여는 것도 아니었다. 안방으로 통하는 베란다 문도 잠가버렸다. 안방이 무슨 격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형이 왜 그러는지는 너무 잘 알겠는데 그래도 엄청 속상했다. 너무 속상한 마음에 형을 혼내기라도 해달라고 형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그놈이 너 속상하게 하면 더 아파도 돼. 냅둬라. 그나저나 아가, 너는 어디 아픈 데 없니? 삐약이는 괜찮고?’ 하는, 되레 안부 전화를 받아버렸다. 어쨌든 이건 너무 속상했다. 나는 문 앞에서 형이 잠든 틈에 만들어 놓은 죽을 들고 있었다.

 

 

“아, 진짜. 형이 내가 만든 죽이라도 먹어줬으면 좋겠다.”

“지민아, 형 아까 죽 먹었어.”

“그거 벌써 다섯시간 전이거든요. 삐약아, 이거 봐. 아빠가 이렇게 말을 안 듣는다?”

“야아, 그렇다고 삐약이한테 이르면 어떡해.”

“어? 뭐라고? 그치, 삐약이두 아빠가 엄마가 만든 죽 먹었으면 좋겠지. 그치이, 아빠가 이 죽을 드셔야 행복할 것 같지?”

“아이고, 박지민.”

 

 

그제야 문이 겨우 열렸다. 물론 진짜 작은 틈이었지만 그래도 그 틈으로 형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작은 틈으로 보이는 형의 모습이 어쩐지 진짜 많이 아픈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찡했다. 눈에 눈물이 금방 차올랐고 입술도 비죽거렸다. 형 아픈데 거기다 대고 울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꾸 속이 상했다. 형이 다 상한 목소리로 ‘지민아’ 하고 불러줬다.

 

 

“진짜 너무해.”

“지민아. 형이 미안해. 울지 마. 응?”

“미안하면 형 이거 먹어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울지 마. 내가 달래줄 수도 없잖아.”

“그러면 문 열어두고 먹어요. 먹는 거 보게.”

“알았어. 그러면 너도 나 이거 다 먹으면 삐약이한테 오해 풀어줘.”

“무슨 오해요.”

“아빠 말 안 듣는다고 한 거.”

 

 

이 와중에 그 걱정을 하는 게 귀엽기도 해서 눈물을 흘리다가 웃어버렸다. 우리는 문 앞에 마주 앉았다. 형은 행여 내가 찬 바닥에 앉을까 방에서 방석을 꺼내 왔다. 그걸 주는 것도 엄청 유난스럽게 줘서 뭐라고 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내가 만든 죽을 받아 들길래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서로 마주 앉았고 겨우 형에게 내가 만든 죽을 먹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형을 보면서 뿌듯하게 웃었다. 그리고 많이 부른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삐약아, 아빠는 말을 대체로 잘 안 듣는데 너만 있으면 말을 잘 들어. 벌써부터 딸바보인가 봐. 네 얘기만 하면 맨날 진다? 이거는 비밀이야.

 


 

 

* 출산 임박

 

 

아무래도 오늘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진통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정일이 가까이 다가오고부터는 꾸준히 배에 통증이 있었다. 예정일이 꽤 남은 시점이어서 나도 놀라고 형도 놀라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다급하고 초조했던 우리와는 달리 병원에서는 분만일 이전에는 가진통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건조한 말만 해줬었다. 그 건조함에 우리도 진정을 했고 형이 인터넷이며 여기저기를 찾아본 덕에 간헐적인 진통에는 꽤 잘 대비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예정일이 이틀 남았기도 했고 일단은 그동안의 통증과 완전히 달랐다. 내 몸이었고 내가 삐약이를 품고 있던 배라 직감적으로 느꼈다. 배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데 방으로 형이 들어왔다.

 

 

“지민아, 지민아. 왜 그래. 괜찮아?”

“형, 저 너무 아파요.”

“병원, 병원 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어어, 알았어. 가자. 지금 가자.”

 

 

따뜻한 물을 가져오던 형이 물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를 천천히 일으켰다. 진통이 전보다 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죽을 정도는 아니어서 나도 형에 기대서 몸을 움직였다. 형의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형, 근데 아무것도 안 챙겨 가요?”

“어? 아니야. 가방 챙겼어.”

“네? 언제요?”

“아, 좀 됐어. 너 요새 자주 아프길래. 진짜 진통 오면 바로 가야겠다 싶어서.”

 

 

다시 보니 정말 형은 어느 틈에 들었는지 웬 백팩 하나를 등에 메고 있었다. 꽤 빵빵했고 몇 시간 만에 챙긴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형은 언제나 세심했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을 보니 새삼 또다시 감동스러웠다. 저 가방 안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그런 형을 보고 있으니 매우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고 진통도 조금 참을만 해졌다. 


형과 조심히 집을 나섰고 차에 올라탔다. 차 조수석에는 언제 깔아놨는지 모를 털방석이 있었다. 그 위에 앉자 형은 배가 거슬리지 않게 안전벨트까지 채워주고 담요까지 덮어준 다음에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고 나서도 형은 바빴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튼 다음 메고 있던 가방 앞주머니를 뒤지더니 핫팩을 꺼내 들었다. 은색 쇠붙이를 똑딱거려서 금세 뜨겁게 만들고는 나한테 쥐여주었다.

 

 

“미안해. 차를 미리 못 데워놔서. 일단 이거라도 하고 있어.”

“아니에요. 충분히 따뜻해요.”

 

 

내가 형을 보면서 웃어주자 형도 그제야 따라 웃었다.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형도 꽤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형은 차 안의 내비게이션을 켰다. 그런데 따로 검색할 새도 없이 뭘 바로 눌러서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의 경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뭐가 지나간 건가 싶어서 형을 가만히 쳐다봤다. 형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조정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내 시선이 뭘 의미하는지 눈치를 챘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전에 미리 입력해 놨어. 너 아프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하니까.”

 

 

형은 머쓱하게 웃었지만 나는 진짜, 엄청 많이 감동했다. 진통이 시작되고부터 산부인과로 향하는 지금까지 마치 애를 열 번은 낳으러 갔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왠지 형이라면 가방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내비게이션에 산부인과를 입력해 놓으면서 모든 순서와 상황을 연습해봤을 것 같았다. 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핸들 위에 얹어놓은 뻣뻣하게 긴장된 형의 손을 잡았다. 핫팩을 쥐어서 뜨거워진 내 손과 달리 형의 손은 엄청 차가웠다. 형이 놀라서 손을 떼려고 했지만 내가 그 손을 꽉 잡았다.

 

 

“차가워, 차갑다. 지민아.”

“그러니까 잡죠.”

“안 돼. 내 손 말고 핫팩 잡아.”

“긴장돼요?”

“어? 아니, 뭐. 조금?”

 

 

나는 그런 형의 손을 매만지면서 살짝 웃었다. 형도 어색하게 웃었지만 얼굴의 긴장감은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삐약이 아부지의 긴장을 풀어드릴까, 생각을 했다가 갑자기 심해져 오는 진통에 배를 움켜쥐었다. 형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는 힘이 세게 들어갔다. 절로 이를 꽉 물었고 몸을 웅크렸다. 안전벨트가 걸려서 몸을 숙이는 건 쉽지 않았다.

 

 

“지민아, 괜찮아? 어? 괜찮아?”

“네, 형. 저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통이 꽤 길었다. 내 긴장을 형이 느낄 것 같아서 잡고 있던 형의 손을 놓고 담요를 쥐었다. 담요를 쥔 손 위로 형의 손이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차가 부드럽게 움직였고 나는 여전히 담요와 안전벨트를 번갈아 쥐면서 진통과 싸움을 했다. 한참 격렬하게 아프다가 고통이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겨우 숨을 조금씩 내쉬면서 진정을 하는데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아파서 못 듣고 있었는데 진정이 되자 귀에 들려온 소리였다.

 

 

“삐약아, 엄마 아파. 조금만, 조금만 살살. 응? 엄마도 아직 아가란 말이야. 엄마도 약한 사람이야. 너무 아프게 하면 안 돼. 알았지? 삐약아 엄마랑 아빠 너무 보고 싶어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아프지 않게. 응? 엄마도, 삐약이도 아프면 안 돼. 삐약이 해줄 수 있지?”

 

 

산부인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형은 내내 저렇게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가끔 신호에 걸릴 때마다 눈물을 훔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건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 삐약이를 처음 만난 날

 

 

“와아.”

“형, 우리 삐약이 진짜 예쁘죠.”

“응. 너무 예쁘다.”

 

 

형은 유리문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나 역시 자꾸 봐도 또 보고 싶은 삐약이를 계속 눈에 담았다. 유리문 너머로 꼼지락거리는 손도, 발도 너무 예뻤다. 작지만 아직은 약한 삐약이가 자꾸 눈에 담겼다. 그러다 윤기 형이 문득 내 어깨를 감싸 안았고 내 머리에 입을 맞춰주었다. 형이 오기 전에 힘겹게 머리를 감은 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진짜 고생 많았어. 지민아.”

“에에, 삐약이 보다가 왜 갑자기 그래요.”

“정말 고마워.”

“형은 정말,”

“정말 뭐?”

“언제나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에요.”

 

 

형과 마주 보면서 웃었다. 순간 입을 맞출 뻔했지만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떠올렸다. 간호사님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우리는 머쓱하게 웃었고 다시 삐약이를 바라봤다. 잠깐의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병실로 돌아갔다. 형은 나를 병실에 들여보내 놓고 잠시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그랬고 침대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나서야 형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근데 형의 낌새가 좀 이상했다. 자꾸 훌쩍거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저 형이, 설마.

 

 

“형.”

“응?”

“…울었어요?”

“…아닌데.”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안 울었, 흠. 안 울었어. 나.”

 

 

말은 저렇게 해놓고 형은 어색한 손짓으로 눈가를 비볐다. 지금도 우네. 내가 자꾸 우냐고 물으니까 더 서러워졌는지 형은 아예 대놓고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매번 형이 하던 말버릇을 내가 해버렸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형에게 다가갔고 형을 끌어안았다. 윤기 형이 나한테 기댔고 조금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런 형을 잠자코 안은 채로 토닥여주었다.

 

 

“뭐가 그렇게 슬펐어요?”

“…슬픈 거 아니야.”

“근데 왜 그렇게 울어요?”

“그냥….”

“뭔데요. 말해 봐요.”

“예뻐서….”

“네?”

“너도, 삐약이도 다 너무 예뻐서.”

 

 

나와 삐약이가 예뻐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는 삐약이 아부지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임신 전이나 임신 중이나 매번 우는 쪽은 나였고 그걸 이렇게 다정하게 안아줘서 달래주는 쪽은 형이었다. 그런데 삐약이가 태어나고 형에겐 어떤 감수성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원래 감수성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 전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그런 감성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형이 오랜만에 귀엽기도 했다. 내 품에 형이 안겨서 우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나는 계속 형의 말버릇이었던 ‘아이고’를 해가면서 형을 달래주었다. 형은 중간에 한 번 ‘어흑, 정말 엄청 예뻐.’ 하는 큰 울음을 끝으로 눈물을 그쳤다. 슬슬 울음이 멎는 것 같아서 나도 다독이는 걸 좀 천천히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형이 몸을 돌려서 재빠르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형?”

 

 

나는 갑자기 품에서 빠져나간 형 때문에 팔을 어정쩡하게 들고 있었다. 어디론가 내달린 형은 머지않아 다시 병실로 들어오기는 했다.

 

 

“나 왔어.”

“네, 알아요.”

“무슨 일 있었어?”

“어…. 아니, 아니어야 할 것 같네요.”

 

 

형은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 태연하게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벌건 눈을 해놓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게 너무 웃겼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늘 나를 어린 애로 봤던 형이라 그런 내 품에서 울었다는 사실이 엄청 창피할 거였다. 형은 아무렇지 않은 미소로 나를 침대로 데려갔고 다정하게 이불도 덮어줬다. 그런데 그 다정함을 보면서 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웃어?”

“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나는 아예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버렸고 혼자서 작게 웃어버렸다. 평소엔 하얗다 못해 창백한 형의 귀와 목이 시뻘게져 있었다. 태연한 행동과 다르게 얼굴 가득 티가 나는 민망함이 너무 귀여웠고 웃겼다. 혼자 이불을 덮어쓰고 차마 소리는 못 낸 채로 웃고 있는데 갑자기 이불이 들춰졌다. 이번엔 얼굴도 빨개진 형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날 쳐다보진 못하고 애먼 곳을 보면서 침대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긁고 있었다.

 

 

“모른 척 좀 해주지.”

“미안해요. 근데 티가 너무 나서.”

“아, 어떡해.”

“왜요?”

“망했어. 이제.”

 

 

형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다가 아예 얼굴을 내가 베고 있던 베개 위로 묻어버렸다. 베개에 파묻힌 채 ‘으아아, 망했어.’ 하는 소리를 내는 형이 귀여워서 그런 형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입을 맞췄다. 계속 베개에 대고 이상한 소리를 내던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고 형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이왕 할 거면 거기 말고 여기다 해줘.”

“아이, 뭐예요.”

“그럼 내가 한다?”

 

 

삐약이가 세상 빛을 보고 나자 윤기 형에게 귀여운 애교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