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 보고 싶다.

 

 

* 특별편! <How I met your mother/father!>

 

 

W.새벽의덕후

 

 

 

[뷔민]

 

 

그건, 그러니까 말 그대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엔 공연 같은 거에 관심이 없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액션 영화를 여러 번 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를 열심히 때려주고 싶다. 친한 형이 그날 그 공연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와서 앉았다. 형이 몇 번이고 ‘예술이야, 진짜.’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아, 그냥 집에 누워서 축구나 보고 싶은데. 정말 그 생각뿐이었다. 형은 공연 기획자였는데 그만큼 여러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공연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공연을 보러오기 전부터 이 공연에 대해서 엄청 설명을 해줬었다. 만날 때마다 이 공연 얘기를 해댔지만 그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축구를 생각하거나 야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연에 대해 전무한 지식으로 객석에 앉아있었다. 내가 공연도 봐 줬으니 이따가 술이나 사라고 해야지. 그냥 정말 그런 유치한 생각밖에 없었는데.

 


 

“와아.”

 

 

홀렸다고 해야 하나, 반했다고 해야 하나. 사실 공연에 대한 방대한 지식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눈으로 봤고 몸으로 느꼈다. 저 큰 무대 위를 저렇게 작은 사람이 가득 채워냈다. 그런데 그게 놀랍다기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졌다. 당연한 아우라였고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 무대 위 무용수에게 넋을 놓은 게 아니라 영혼을 빼앗긴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독무는 잠깐이었지만 그 뒤로도 무대 위를 부드럽게 휘젓는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야, 김태형 정신 차려.”

“형, 저거 뭐예요?”

“얼씨. 야 이런 거 싫다며. 귀찮게 왜 데려오냐며.”

“진짜 최고다. 형 무용수 이름도 알 수 있어요?”

“누구, 박지민?”

“에? 뭔 이름이 그렇게 바로 나와요?”

“너 걔 독무할 때부터 제정신 아닌 거 내가 봤거든.”

 

 

형은 이 공연 관계자와도 잘 알고 지낸다고 했다.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날 보더니 박지민을 잠시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런 형에게 어디를 다녀올 테니 혹시 지민 씨가 가려고 하면 시간을 끌어달라고 한 후에 공연장 근처로 뛰어갔다. 다행히 근처에 꽃집이 있었고 꽃다발을 사 들었다. 그냥, 무대 위에 서 있던 그 무용수에게 꽃 선물을 꼭 하고 싶었다. 꽃을 사 들고 돌아오니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형은 대기실에서 얼굴을 보게 해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문 앞에 서 있었을 뿐인데 공연을 봤을 때만큼이나 심장이 덜덜 떨렸다. 형이 대기실 문을 두드렸고 곧이어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앞으로 그 박지민이라는 무용수가 다가왔다. 그 사람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이다. 그냥 모르겠다. 세상에 그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땀에 젖어있는 머리칼도 아름다웠고 웃고 있지 않은 얼굴도 아름다웠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고, 고, 공연. 저, 정말 잘 봤습니다.”

“아, 네.”

 

 

그 사람은 내가 내민 꽃다발을 받지 않았다. 아, 너무 멍청하게 말했나. 괜한 뻘쭘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이제 어떡하지.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박지민 씨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다른 손으로는 휴지로 얼굴을 닦고 있었다. 땀이 나서 저러나, 난 땀 난 모습도 좋은데. 지민 씨의 손에 내가 산 꽃다발이 들려진 게 좋아서 지민 씨를 보면서 웃어버렸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나는 공연을 매일 찾았고 매일 반했고 매일 꽃을 선물했다.

 

 

“아, 꽃은 안 사 오셔도 되는데.”

“그게 꽃만 보면 지민 씨 생각이 나서요.”

“아…. 감사해요.”

 

 

물론 지민 씨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된 꽃 선물을 하던 어느 날, 아무래도 더 정성을 표현해야겠다 싶어서 장미꽃 100송이를 사가기로 마음먹었다. 유치하게 99송이를 내밀며 ‘한 송이는 당신이에요.’ 하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백 송이의 꽃보다 당신이 더 아름답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야지. 대기실로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이런 내 진심을 알아봐 주시겠지. 그게 오늘은 아닐까. 백 송이의 꽃을 품에 가득 안고 대기실 앞에 섰다. 지민 씨는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매일 공연을 하는 데 힘들만도 하지. 대기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재채기 소리와 코 푸는 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처음 대기실을 찾았을 때부터 대기실에선 저런 소리가 나왔다. 저렇게 아픈데도 늘 무대에 서는 모습이 더 멋있었다. 역시 프로는 뭔가 달라도 달라. 다시 대기실을 두드렸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이어,

 

 

“…지, 지민 씨.”

“지민아!”

“어, 이, 일단 119 불러 빨리.”

“저, 저기요. 잘생, 아 아니. 아무튼 잠시만요. 잠시 저랑 나가요.”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지민 씨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당황했고 그 틈에 나는 다른 스텝 손에 이끌려 아예 공연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멍청하게 서 있으니 공연장 밖으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곧이어 지민 씨를 태운 구급차가 사라졌다. 너무도 빨리 지나간, 급박한 상황에 놀라 벙쪄있다가 눈물을 터트렸다. 지민 씨가 저만큼 아픈 줄은 전혀 몰랐다. 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줬던 지민 씨였기에. 저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면서. 어디가 많이 아픈 건가. 무리를 한 건가. 나는 괜찮은데. 지민 씨 아파도 나는, 그 옆을 지킬 수 있는데. 자꾸 서러워지는 기분에 꽃을 든 채로 엉엉 울고 있으니까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스텝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저기요.”

“허어엉, 지민 씨.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오. 으허엉. 아픈데도 무대에 서고오. 어어엉.”

“저기요. 저기. 그게 아니라,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으허어어, 뭔데요오. 허윽.”

“지민이 꽃 알레르기 있어요.”

“허어엉, 아픈 게 맞았어어. 어허어어엉.”

“뭐야. 아니, 저기요. 그게 아니라. 지민이가 꽃이 있으면 아프다고요. 꽃.”

 

 

천천히 귀에 들어오는 말이 제대로 인식되었고 울음도 서서히 멎었다. 몇 번이고 귀에 들린 말을 되짚어보던 나는 들고 있던 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지민 씨를 죽인 거야, 내가. 그 자리에서 바닥에 떨어진 장미꽃을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이 미련한 김태형.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모르고 매일같이 꽃을 사다 날랐어. 등신 김태형. 지민 씨는 그런데도 매일 내 꽃을 받아줬어. 그런데 나는 매일 지민 씨에게 살상 무기를 건네줬어. 나는 쓰레기야. 미친 듯이 꽃을 짓밟고 있는 나를 스텝이 뒤에서 붙잡아 말렸지만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김태형 진짜 머저리. 지민 씨가 저렇게 된 건 다 네 탓이야 이 멍청아.

 

 

 

**

“오늘도 오겠지?”

“그렇겠지.”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물론 내 팬 중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다는 건 약간 뿌듯하긴 했다. 나한테 반했다고, 팬이라고 매일같이 공연을 보러 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예술인으로서 굉장히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약간 두려웠다. 그 사람이 늘 해맑게 웃으면서 건네주는 것이 두려워서. 같은 동료와 짐작했던 대로 역시나 오늘도 그 사람이 왔다 갔다. 늘 문을 똑똑, 하고 두 번 두드렸고 문을 열면 거지같은 꽃가루를 풀풀 풍기며 꽃 같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차마 저 얼굴에 대고 상욕을 할 수 없어서 늘 감사하다 인사하며 꽃을 받았다. 물론 저 사람은 오래 있지 않았고 내가 꽃을 받으면 금세 문 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면 나는 꽃을 문밖에 두고 문을 꽉 닫았다.

 

 

“저 새끼가 오늘도 날 죽이러 왔어.”

“야, 그냥 말을 해.”

“저렇게 해맑은데 어떻게 말을 해요.”

“저 정도면 암살잔데, 잘생긴 암살자.”

 

 

같이 공연한 동료들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스텝들도 덩달아 ‘맞네요, 잘생긴 암살자’라고 하면서 같이 웃었다.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나는 온전히 웃진 못하고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다시 재채기를 했다. 잘 피한다고 피했는데 꽃을 쥐어서 그런가 자꾸 재채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곧 영혼을 토할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먼저 간다던 동료가 꽃은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말해줬고 나는 재채기를 하면서 손짓으로만 대꾸를 했다. 그렇게 내가 영혼을 토하게 되든, 그 암살자의 영혼을 빼앗게 되든 둘 중 하나가 영혼을 빼앗겨야 끝날 것 같은 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_

“왜 자꾸 받아주는 거야?”

“귀엽잖아요.”

 

 

잘생긴 그 남자를 보내고 대기실로 들어와 앉았다. 물론 미안하지만 여전히 꽃은 문밖에 두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그런 남자가 나를 보고 해사하게 웃는데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꽃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러고 나서는 매번 진짜 죽을 뻔했다. 일부러 휴지로 코를 감싸고 미친 듯이 재채기를 해 봤지만 눈치가 좀 없는지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같이 꽃을 사 들고 왔다.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게 가만히 서 있던 그 모습이 또 너무 잘생겨서 게다가 활짝 웃으면서 문 앞에 서 있는 게 또 예뻐서 결국 체념해 버렸다. 그냥 내가 공연이 끝나고 알레르기약을 먹는 게 속이 편했다.

 

 

“얼굴 때문이지?”

“무슨 소리예요.”

“맞네. 아, 몰랐는데 지민이 외모 엄청 보네.”

 

 

나를 놀리는 선배를 흘겨보았다. 어느새 저 사람은 공연 팀 사이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매일같이 꽃을 사 들고 나를 찾아오는 터에 공연 팀이 붙인 잘생긴 암살자라는 별명은 다른 공연 팀에게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 아주 많이 잘생겼고, 잘생긴 얼굴로 웃으면서 박지민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 열혈 팬인지 안티팬인지가 있다면서 엄청 낄낄거렸다. 전에 한 번은 다른 공연 팀이 나를 보고는 ‘오늘도 살아 계시네요.’ 하는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장난이 쉴 틈 없이 이어졌지만 그 사람을 칭하는 별명이 어쩐지 너무 잘 어울려서 나도 같이 웃기는 했다. 뭐, 꽃만 보면 내 생각이 난다는데 어떻게 해. 꽃을 닮은 내 탓이지 뭐.

 

 

말이 그렇다는 거였는데, 그 잘생긴 암살자가 정말 나를 죽일 줄은 몰랐다.

 

 


“괜찮아?”

“네, 이제 조금.”

“야 너 진짜 큰일 날 뻔했더라.”

“그 사람은 괜찮아요?”

“누구? 아, 암살자? 야 그날 너 가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대.”

 

 

눈앞에 엄청난 양의 장미꽃을 본 것이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무리 알레르기약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저만큼의 꽃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진짜 죽을 뻔한 거였는데, 어쩐 일인지 눈을 뜨자마자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꽃, 못 받아 줬는데. 물론 받아줄 수 없는 꽃이었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게다가 울기까지 했다니까. 내 옆에서 선배는 그날 공연 스텝이 본 암살자의 모습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장미꽃이 무려 백 송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바닥에 버리더니 미친놈처럼 밟아댔고 자기가 지민 씨를 죽인 거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선배는 혼자서 연기까지 해가며 이야기를 전해줬는데 선배의 모습은 웃겼지만 전해주는 내용을 들으며 왠지 마음이 시큰했다. 그 사람만큼 나에게 순수한 애정을 보여줬던 사람은 없었는데. 행여 이 일이 미안해서 다신 나를 찾지 않을까 걱정도 좀 되었다. 사람이 눈치는 좀 없어도 나빠 보이진 않았는데 많이 놀랐을 것 같았다.

 

 

그 후로 꼬박 일주일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장난처럼 암살 실패하고 한국을 뜬 거 아니냐고 킬킬거렸지만 나는 대충 웃어만 주고 대꾸는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던 잘생긴 웃음과 꽃가루가 사라지니 뭔가 많이 빠진 것처럼 허전했다. 귀찮았던 재채기가 그리울 지경이라 억지로 해보기도 했다. 역시나 오늘 대기실 앞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엄청 아쉬웠지만 ‘아쉽냐?’ ‘잘생긴 킬러가 이래서 무섭습니다.’ 하는 장난 섞인 말들을 뒤로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뭐야, 재채기도 안 하고 콧물도 안 나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거야. 괜한 아쉬움에 땅만 보고 걷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뭐가 튀어나왔다. 아 씨, 깜짝이야.

 

 

“지민 씨.”

“어?”

 

 

속으로는 약간 욕을 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는 더 이상 욕을 할 수 없었다. 계속 보고 싶었던 그 잘생긴 웃음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뜸 나타난 그 사람은 깜짝 등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내 앞에 그저 멀뚱하게 서 있었다. 손을 뒤로 돌려서 뭘 숨기고 있었는데 우물쭈물하는 그 모양새가 퍽 귀엽기도 했다. 큰 눈 안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아, 이 사람 진짜 바본가. 또 꽃이었다. 어, 그런데 밖이라 그런가 왜 재채기가 안 나지. 콧물도 안 나는데.

 

 

“저 꽃 알레르,”

“좋아해요.”

 

 

느닷없이 들려온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그대로 앞에 선 사람을 쳐다봤다. 한 손을 쭉 뻗어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웃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왔다. 멋있었다. 바람이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가는 것도 참 멋있었다. 결국 가슴 가득 차오르는 어떤 기분 때문에 나는 활짝 웃어버렸다. 그래, 이 사람이면 괜찮을 것 같아.

 

 

“저도, 좋아요.”

“…네? 예? 예에?”

“네?”

“어, 어어…. 어, 그게. 어, 아닌데.”

 

 

자기가 좋다고 고백을 해서 나도 대답을 해주었을 뿐인데 앞에 선 사람의 반응이 이상했다. 몇 걸음씩 뒤로 걷더니 곧 몸을 빠르게 돌렸고 도망을 가려고 했다. 느닷없이 등을 돌려 내달리는 사람을 빠르게 따라가서 뒷덜미를 잡아챘다. 뭐야, 이 새끼.

 

 

“저기요. 왜 도망,”

“저,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돼서요….”

“무슨 준비요?”

“고, 고, 지민 씨 고, 고백을 바, 받아들일.”

“아니 고백은 먼저 하셨, 아?”

 

 

도망치는 암살자의 뒷덜미를 잡지 않은 손으로 나는 내 얼굴을 가렸다. 미친, 잠깐만. 이 사람이 아까 나한테 한 얘기를 곱씹었다. 내가 얘한테 저 꽃 알레르기 있다고 말을 하려던 때였고, 얘는 그런 내 얘기를 채 다 듣기도 전에 좋아해요, 라고. 어, 잠시만. 좋아해요, 좋아, 조하, 조화…. (이거) 조화예요. 어, 그래. 그거구나. 미친. 미친 박지민 미쳤다. 와, 아…. 미쳤어. 아 진짜 개쪽팔림. 아, 잠시만. 이거 무슨 기분? 


진짜 엄청 쪽팔렸고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차마 이 암살자를 놓칠 수는 없어서 뒷덜미는 열심히 붙잡고 있었다. 얼굴에 열이 훅 올랐다. 진짜 미치겠다. 나한테 붙잡혀서 버둥거리던 암살자도 좀 얌전해져 있었다. 아 몰라 어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뭐.

 

 

“그냥 고백한 걸로 해요. 저 싫은 것도 아니잖아요.”

“네? 어, 이게 좀 갑작스러워서, 어 저는.”

“그래서 저 싫어요?”

“아뇨….”

“아, 그럼 지금부터 사귀는 거로 해요.”

“네.”

 

 

뒷덜미를 잡아서 암살자를 돌려세웠고 암살자의 손에 여전히 들려있는 조화를 뺏어 들었다. 암살자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붉히고만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래도, 뭐 잘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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