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이 보고 싶다.

 

 

W.새벽의덕후

 

 

[뷔민]

 

 

 

* 하루를 정리하는 방법

 

 

“자기야, 태태마사지 들어 가용.”

 

 

나는 크림을 들고 오는 김태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내가 김태형 얼굴을 조작할 수만 있다면 저런 표정은 프로그래밍에서 삭제시키고 싶었다. 대체 저런 얼굴을 왜 저렇게 쓰지? 김태형의 저 똥꼬발랄 하다못해 방정맞은 얼굴을 오래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돌렸다. 침대에 누운 내 옆에 앉아서 김태형은 제 팔을 슥, 하고 걷어 올렸다. 저, 태형아. 너 지금 반팔 입고 있어. 꼭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뒀다. 김태형이 한심하기 짝이 없긴 했지만, 그리고 굉장히 등신 같긴 했지만 그만큼 나밖에 모르긴 했다. 김태형은 내가 임신한 그날부터 매일같이 튼살 크림을 발라주고 있었다.

 

 

“와아, 근데 배 진짜 많이 나왔네.”

“어. 왜 보기 싫어?”

“아니, 아니. 지금 이 안에 금옥이 있는 거야?”

“…그럼 뭐가 있겠니.”

 

 

이제 와서 배 안에 금옥이가 있는 거냐며 눈을 반짝이는 김태형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김태형은 내 배에 크림을 살살 발라주면서 여전히 우와아, 하는 소리를 냈다. 배뿐만 아니라 팔이나 종아리, 허벅지에도 김태형은 크림을 정성껏 발라줬다. 전에 한 번은 왜 그렇게 열심히 바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김태형은 ‘우리 지민이 진짜 멋있는 무용하던 사람인데. 다시 돌아가더라도 어느 한구석 빠지지 말아야지. 물론 지금도 되게 예뻐.’ 하는 매우 정상적인 발언을 해서 약간 코끝이 찡해진 적이 있었다. 김태형은 크림을 바르면서 내 몸도 여기저기 주물러줬다. 얘가 또 몸 쓰는 건 꽤 잘해서 아주 만족스럽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그럼 지금 금옥이 내 말도 다 듣고 그러는 거야?”

“어. 그러니까 말 조심해.”

“나보단 우리 여보가….”

“어, 그러니까. 네가 말을 조심해야 내가 말을 조심하지.”

“아! 그렇구나.”

 

 

아, 진짜 저 등신. 나는 살짝 고개를 저으면서 김태형을 바라본 뒤에 눈을 감았다. 뭐라 하지, 김태형의 이 마사지하는 손길은 꼭 요새 사람들이 즐겨 듣는다는 ASMR인가 그거 같았다. 몸으로 느끼는 ASMR이랄까. 노곤노곤해지는 몸의 느낌에 잠이 들 것 같았다. 김태형의 멍청한 말에 대충 대꾸해주면서 그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어으, 좋다. 약간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그때 배에서 퉁, 하는 느낌이 났다. 금옥이 이 밤중에 신났네. 나한테는 익숙한 느낌이라 김태형의 손길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는데 김태형의 손길이 멎었다. 뭐야, 왜 이래. 깊게 감겨 있던 눈을 뜨고 김태형을 바라보니 김태형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김태형.”

“지민아…. 나, 나 방금. 금옥이, 금옥이랑….”

 

 

아, 얘는 처음이지. 김태형은 내 배를 마사지하다가 본인에게는 처음인 태동을 느꼈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청하게 내 배를 내려다보면서 내 배 위에 올려 뒀던 손을 살짝 떼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그렇게 있던 김태형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 뭐 나도 금옥이가 처음 움직였을 때 진짜 놀라긴 했으니까. 쟤처럼 눈물 많은 애가 안 울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김태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 울어라. 멋대로 해.

 

 

“허어, 지민아. 이, 이게 그거야? 대통?”

“멍청아. 대통이 뭐야. 태동. 말 똑바로 하라고 했지.”

“아아, 태동. 지금 그러면 금옥이가 이 안에서 발로 막 이렇게 한 거야?”

“…어. 그렇게 한 거야.”

 

 

대체 왜 굳이 울면서 제 발을 들어 흔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 어떡해. 하면서 훌쩍이는 게 좀 짠했다. 왜 저렇게 울고 난리야. 그럴 수도 있지. 김태형은 다시 손을 내 배 위로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다시 살살 쓰다듬는 느낌이 좋아서 나는 아까처럼 스르륵,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손도 커서 닿는 면적이 넓어 그런가 배 위로 빈틈없이 돌아다니는 손길이 썩 마음에 들었다. 다시 무의식에 세계로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나, 나도 금옥이랑 교감할래.”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배에 이상한,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제정신과 꿈나라 사이에서 갈 길을 방황하다가 꾸역꾸역 눈을 떴다. 겨우 고개를 들어 내 배를 바라봤을 때 손이 아닌 어떤 것이 내 배 위에 있었다. 대체 저게 뭐지. 손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졸음이 쏟아져 오는 눈꺼풀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천천히 뇌로 입력되는 내 배 위에 있는 그것은 김태형의 발이었다. 이런 샹.

 

 

“야, 이 등신 새끼야!”

“어, 어. 잠시만. 잠시만 여보야. 나 곧 교감.”

“금옥이가 이티냐 이 새끼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금옥이와 교감을.”

“닥쳐 미친놈아! 그렇다고 어디다 발을 올려!”

 

 

김태형의 발을 들어서 던져버리고 내 발을 김태형의 배에 가져다 댔다. 어디 당해 봐 이 새끼야. 물론 김태형은 이렇게 나를 차진 않았지만 인생이 다 이런 거다. 김태형은 나한테 얻어맞으면서도 계속 금옥이, 금옥이 하며 내 배를 만졌다. 아, 진짜 이 등신 진짜 어쩌면 좋지.

 

 

 

+지민이가 잠든 후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건 운명 같은 거였다. 분명 나는 아주 찰나의 순간 느꼈다. 금옥이도 나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부자지간이라 느낄 수 있는 그런 거라고. 나는 지민이의 얼굴 위로 손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벌써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걸 보니 영락없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거였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에 천천히 지민이의 옷을 들어 올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지. 어느새 드러난 지민이의 배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슬쩍 발을 올렸다. 행여 내 발에 힘이 실릴까 봐 양팔로 다리를 꽉 부여잡고 발바닥만 살짝 대고 있었다. 아, 혹시 금옥이가 잠들었으면 어떡하지. 이러다 지민이 깨면 진짜 큰일인데. 가만히 그러고 있었는데 순간 지민이가 몸을 뒤척였다. 가만히 천장을 보고 있던 게 힘들었는지 몸을 옆으로 틀었다. 진짜 지민이한테 멱살 잡히는 줄 알고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다행히 지민이는 다시 깊게 잠들었다. 작게 숨을 내쉰 후에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고 다시 살살 발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지민이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려서 발을 대기는 아까보다 더 편했다. 아, 정말 잠들었나. 금옥아. 아빠를 향해 발 한 번만 차 줘.

 

 

“어.”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소리를 얼른 틀어막았다. 한 손으론 여전히 다리를 붙잡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았다. 손에서는 지민이에게 늘 발라주던 튼살 크림 냄새가 났다. 방금, 금옥이가. 나 금옥이랑 발을 마주했어! 벅차오르는 기분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조용히 자고 있는 지민이가 너무 무서워서 입만 꾹 물고 있었다. 어떻게 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다시 발끝에 뭐가 툭, 하고 닿았다. 얼굴에 가득하게 웃음이 피어났다. 아, 어떡해. 우리 금옥이 예뻐서 어떡해. 나는 발을 내리고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금옥이 이제 그만. 이제 자야해. 둥그렇게 예쁜 지민이의 배가 금옥이 머리통 같아서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지민이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져서 얼른 옷을 내려주고 이불을 덮어줬다. 이불을 덮어놔도 여전히 부른 티가 나는 배를 가만히 쳐다봤다. 금옥아, 이건 아빠랑 금옥이만의 비밀이야.

 

 

 

* 처음 심장 소리 들은 날 (임신 8주 차)

 

 

나의 멍청함으로 수첩에 ‘김금옥’이라고 적은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다시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는데 오늘도 기어코 김태형은 내 옆에 쫓아와 있었다. 물론 오늘은 김태형이 올만 했다. 어제 김태형한테 ‘내일 가면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을걸?’ 하고 얘기했더니 그 길로 월차를 써냈다. 저러다 잘리지 싶은데 용케 일을 잘 다니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금옥아, 금옥아.’ 침이 마르게 불러댔을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옆에서 손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짜식, 긴장이라도 했나 본데.

 

 

“긴장돼?”

“아니.”

“맞네.”

“절대 금옥이 심장 소리 듣는다고 긴장 같은 거 한 거 아니야.”

 

 

맞구만. 입술을 자꾸 뜯어 무는 김태형을 한번 슬쩍 보고 웃었다. 뭐, 나도 긴장은 되긴 하는데 오히려 옆에서 나보다 더 뻣뻣하게 굳은 애를 보니까 되레 긴장이 풀렸다. 오랜만에 저렇게까지 긴장하는 걸 보니까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쟤는 웬만하면 긴장을 잘 안 했다.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가는 날에도 똥꼬발랄했고 그 앞에서 똥개마냥 애교도 잘 부려서 당장 날짜까지 잡아 버렸다. 그만큼 별로 겁도 없고 세상만사 지 편한 대로 사는 앤데 저렇게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박지민 님’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보다 먼저 김태형이 벌떡 일어섰다.

 

 

“네. 들어갑니다.”

 

 

아주 오랜만에 멀쩡한 소리를 내뱉는 김태형이 귀여웠다. 로봇 같은 뻣뻣한 뒷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김태형의 뒤를 따라갔다. 의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나는 침대에 누웠고 옷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잔뜩 긴장한 김태형을 보더니 선생님이 ‘아빠도 여기 앉으세요.’ 라고 하면서 의자를 내어 주셨다. 의자에 앉는 김태형을 보고 다시 웃어버렸다. 진짜 목석인 줄. 의자에 앉고서도 뭐가 그렇게 초조한지 손톱을 물고 아무 곳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음, 일단 오늘은 태아를 보여드리고, 또 심장 소리도 들려 드릴게요.”

“네.”

 

 

선생님이 뭘 열심히 만지더니 내 배 위에 기기를 가져다 댔다. 내 발끝에도 화면이 있었고 옆에 놓인 기계에도 화면이 나타났다. 나는 발끝을 쳐다봤고 김태형은 내 옆에 놓인 기계를 바라봤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가만히 화면을 쳐다봤다. 아, 진짜 내 배 속에 생명이 있긴 하구나. 아직 배도 불룩 나온 게 아니라 그저 화면만 가만히 바라봤다. 김태형도 나도 조용했다. 의사 선생님이 우릴 보면서 웃더니 심장 소리를 들려주겠다 했다.

 

 

“자, 잠시만요.”

“네?”

“조금만, 심호흡 좀.”

 

 

김태형은 대뜸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더니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그런 김태형을 보면서 살짝 웃으셨다. 그러더니 곧이어 진료실 안에 ‘두둥두둥두둥’하는 빠른 소리가 울렸다. 순간적으로 나도 헙, 하는 소리를 내버렸다. 진짜 빠르다. 의사 선생님이 태아는 성인보다 심장이 두 배 정도 빨리 뛴다고 말을 해주셔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이 조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웠다. 내 눈에도 눈물이 좀 차오르고 있었다.

 

 

“어흑,”

“아, 아버님?”

“야.”

“허윽.”

 

 

그래 울 줄은 알았다. 그 정도야 나도 짐작하고 있었다. 근데 김태형은 조금 심하게 울었다. 여전히 두둥거리는 금옥이의 심장 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고 그 위에 김태형의 울음소리가 얹어졌다. 아니 이게 무슨 비트주세요, 냐고. 내 눈가에 고여 오던 눈물은 쏙 들어 가버렸다. 김태형의 울음소리는 더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허윽, 선생님. 어흐윽. 이게, 이게 우리 금옥, 허엉. 금옥이 심장, 심장 소린가요?”

“네? 그, 금옥. 예, 뭐.”

 

 

김태형은 아예 콧물도 질질 흘렸다. 뭔가 침도 흘리는 것 같아서 나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점점 더 쪽팔려지기 시작했다. 서럽게도 우는 김태형을 향해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휴지도 건네주었다. 김태형은 계속 ‘금옥이, 우리 금옥이’ 하면서 울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봤다. 담당 의사 선생님 이름 ‘금옥희’ 였어. 김태형 입에서 ‘금옥이’ 소리가 나올 때마다 의사 선생님 움찔거리는 거 나 다 느꼈어. 어색하게 안경 고쳐 쓰시고 시선 방황하는 거 나 다 봤어. 아, 신이시여. 제발 태형이 금옥이 소리 그만하게 해주세요. 김태형은 아예 휴지를 코에 처박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허어어, 금옥. 우리 금옥이, 금옥이이.”

 

 

태형아, 닥터 금옥희 님께서 되게 당황하시니까 제발 그만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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