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임신물이 보고 싶다.

 

 

W.새벽의덕후

 

 

[슈짐]

 

 

 

* 처음 심장 소리 들은 날 (임신 8주 차)

 

 

내가 임신을 한 걸 6주 만에 알아챈 게 미안했는지 형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함께 다시 병원을 찾았다. 때마침 의사 선생님께서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해 주셨고 형과 함께 그 자리에서 심장 소리를 들었다. 나는 아주 조금 울었고 형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봐줬다. 우리는 손을 잡고 병원을 나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형은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진료실에서 본 형의 표정을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형은 대체로 무표정하거나 나를 보고 웃어주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표정은 약간 달랐다. 사람 표정이 복잡하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다. 형은 나를 집에 데려다 두고 혼자 어딜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얌전히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왔어.”

“어디 갔다 왔어요?”

“어, 이거.”

 

 

현관문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형에게 묻자 쇼핑백 하나를 눈앞에 흔들었다. 뭔가 싶었는데 형은 내 몸을 돌려 세웠고 다시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앉자 형도 그 옆에 앉았고 쇼핑백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병원에서 초음파 했을 때와 비슷하게 생긴 막대기가 있었고 그거랑 무슨 작은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또 크림 같은 것도 있었는데 형은 그것들을 천천히 내 앞에 늘어놓았다. 나는 그저 그 물건들을 한 번, 형을 한 번 쳐다볼 뿐이었다.

 

 

“뭔데요?”

“어, 그게.”

 

 

평소답지 않게 형이 조금 우물쭈물했다. 괜히 코를 닦아내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그런 형은 되게 오랜만이라 형을 보면서 웃음이 터졌다. 형은 웃는 날 보더니 다시 한 번 머리를 긁적였다. 몇 번을 더 말을 우물거리더니 뭔가 결심을 한 모양인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거, 집에서도 삐약이 심장 소리 들을 수 있는 거래.”

“네? 그런 게 있어요?”

“응. 심음 측정기라고. 어, 이거 나 해봐도 돼?”

 

 

형이 애꿎은 기계만 만지작거리면서 나한테 물었다. 뭔가 게임기 해봐도 되냐고 묻는 아들 같아서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웃고만 있자 형이 초조했는지 혀로 입술을 훑었다. 아니 이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저렇게 어색해하는지 이해는 안 됐지만 오랜만에 보는 형의 모습이 좋아서 약간 장난을 치고 싶었다. 겨우 웃음을 삼켜가며 말을 꺼내려 했지만 쉽지 않아서 포기했다. 그냥 웃는 채로 형을 놀리기로 했다.

 

 

“왜요? 아까 들었잖아요.”

“아니이. 우리 삐약이 심장 소리가아.”

“네에, 삐약이 심장 소리가요?”

“어, 그게. 삐약이 심장 소리가 너무 예뻐서. 반했나 봐. 자꾸 듣고 싶어.”

 

 

형이 기계 위로 손을 꼼지락대며 꿍얼거리는 말들을 들으면서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냥 웃어버렸다. 아, 우리 윤기 형 언제부터 저렇게 귀여웠지. 한참 웃다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 형을 바라봤다. 여전히 예쁜 입꼬리가 축 처진 채 ‘진짜 너무 예뻤단 말이야.’를 웅얼거리는 형이 엄청 귀여웠다. 아 내가 민윤기를 귀여워하게 될 날이 오다니. 형의 귀여움에 내 장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요. 형.”

 

 

그렇게 말하고나서 소파에 조금 편하게 기댔고 옷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렇게 하면 되나. 병원에서 검사할 때랑 비슷할 것 같아서 비슷하게 자세를 잡아봤다. 그런데 내 대답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신이 나서 기계를 잡던 형의 움직임이 멈췄다. 왜 그런가 싶어서 여전히 옷자락을 쥔 채로 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거는 반칙이지.”

“네? 뭐가요?”

“아무튼 박지민.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데 뭐 있다니까.”

 

 

형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자세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오는 민망함에 옷을 밑으로 끌어내렸다. 형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는데 형이 기계를 다시 내려놓고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에 나는 형을 가만히 보진 못하고 애먼 방향만 보고 있었다. 형은 내 옆에 앉더니 배 위에 올려둔 내 손을 붙잡았다. 눈이 빠르게 깜박여졌고 이번엔 내 쪽에서 침이 말랐다. 혀로 몇 번 입술을 축인 뒤에 형을 바라봤고 여전히 어색하게 웃었다. 형은 나를 가만히 보면서 내가 열심히 끌어내린 옷을 천천히 들춰 올렸다.

 

 

“형, 형?”

“왜?”

“아니, 그러니까. 이거는.”

“뭐야. 얼굴 왜 빨개지는데?”

“아니이. 그게 아니구.”

 

 

형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하자 형이 웃었다. 웃으면서 형의 머리가 맨살이 드러난 내 배에 닿아서 간질거렸다. 혼자서 큭큭거리며 웃던 형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형은 한 손으로 잡고 있던 내 손을 두 손으로 잡더니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안에 삐약이도 있는데, 안 잡아먹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구. 그냐앙.”

“아이고, 아직도 이렇게 애기면서. 배에 삐약이도 있다고 하고.”

 

 

형은 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면서 미간을 약간 찡긋했다. 나는 형이 헝클어트린 머리를 대충 정리하면서 형을 쳐다봤다. 형은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가 내 배에 뽀뽀를 해줬다.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그 느낌이 너무 간지러워서 나도 모르게 으힛,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일어나서 아까 그 기계와 크림을 가지고 왔다.

 

 

“근데 8주면 잘 안 들릴 수도 있대. 10주 정도 넘으면 잘 들리는데.”

“그렇구나. 그래도 오늘 병원에서 잘 듣고 왔으니까 지금도 잘 들리겠죠!”

 

 

약간 헤매긴 했지만 다행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형과 나는 주기적으로 기계를 애용했다. 형은 종종 기계를 갖고 있는 다른 기계와 연결시키기도 했는데 기계를 잘 다룰 줄 모르는 나는 그냥 멍하니 형이 하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삐약이 심장 소리는 들을 때마다 신기했고, 신비했다.

 

 

*  

“지민아, 나 나갔다 올게.”

“네에에 다녀오세요오.”

“나가지 말까?”

“어뜨케 그래요오. 잘 가따 와요오.”

 

 

그런 날이 몇 주가 흘러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형이 외출을 했다. 주말이라 나는 집에 있을 수 있는데 평일에도 집에만 있던 형이 하필 오늘 외출을 했다. 형이랑 더 있고 싶은 마음에 괜히 현관 옆 신발장에 기대 서서 몸만 이리저리 꼬고 있었다. 신발을 신던 형이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입에 입술을 맞춰 주었다. 그러고도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서 이번엔 내가 먼저 형을 붙잡고 입술을 맞댔다. 오늘따라 너무 아쉬웠다.

 

 

“금방 다녀올게. 진짜야.”

“알게써요오.”

“아, 핸드폰에 뭐 넣어 놨어. 나 가고 나면 음악 어플 들어가 봐.”

“에? 뭔데요?”

“직접 확인해.”

 

 

형은 다시 한 번 입을 맞춰 주고는 밖을 나섰다. 여전히 서로 아쉬운 손짓을 하다가 결국 문이 닫혔다.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가 형의 말이 생각나서 방으로 향했다. 음악 어플, 음악 어플, 아 여깄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니 ‘이건 선물’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있었다. 이런 건 언제 준비한 거야. 뭔가 떨리는 마음에 손에 땀이 나왔고 잠시 손을 쥐었다 편 다음에 파일을 눌렀다.

 

 

“어?”

 

 

낯설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빠른 심장 소리였다. 이거, 형이랑 계속 듣던 건데. 삐약이의 심장 소리가 계속 들리더니 곧이어 그 소리에 맞춰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나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두고 입을 틀어막았다. 이걸 언제 만들었지. 삐약이의 심장 소리 위로 들리는 따뜻한 멜로디가 형의 목소리인 것 같아서 괜히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아, 진짜. 이 형은 왜 이렇게 다정한 거야. 어느새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래가 꽤 흐르고 나자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 우리 둔한 박지민이가 알아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나온 삐약이 심장 소리는 처음 들었던 8주 차부터 한 달 동안 매일 녹음해 놓은 거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삐약이 잘 키워줘서 고마워. 우리 아가, 아빠가 많이 사랑해. 우리 애기, 형이 많이 사랑해.

 

 

아무튼 이 형은 진짜, 알 수가 없다. 귀에 계속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 서럽게 울었다. 으이씨, 나 혼자 남겨두고.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음악을 이대로 끄기엔 아까워서 다시 파일을 재생시켰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일어나 나가기도 전에 방 안으로 형이 들어왔다. 일이 있어서 나간다는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어와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눈물 가득하던 눈에서 울음이 멈췄다. 가만히 형을 보고 있자 형이 웃으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으이구, 이렇게 울고 있을 줄 알았다.”

“뭐예요. 왜 벌써 왔어요?”

“볼 일 다 봐서.”

“무슨 볼일을 봤는데요.”

“이거.”

 

 

형은 나를 쓰다듬으면서 웃고 있더니 내 앞에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꽃을 보니 한 번 더 서러워진 나는 결국 꽃을 붙들고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더 서럽게 울자 형이 놀랐는지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뭔가, 감동이기도 하고 이런 걸 준비한 게 고맙기도 하고 형의 사랑이 너무 벅차기도 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형이 나를 끌어안아 줬고 등을 살살 토닥여줬다.

 

 

“형이 미안. 이렇게 울 줄 몰랐는데.”

 

 

그 다정함에 더 서러워서 형을 끌어안고 울었다. 여전히 옆에서는 삐약이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따뜻한 멜로디도 섞여 나왔다. 곧이어 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갑자기 그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형의 몸에서 떨어져서 형을 바라봤다.

 

 

“왜 꺼요?”

“아니, 그. 내 목소리 부끄러워서.”

“난 형 목소리가 제일 좋은데.”

 

 

크고 따뜻한 품 안에서 형을 가만히 바라봤고 형은 그런 내 머리통에, 이마에, 코에, 눈에 차례대로 입을 맞춰줬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눈을 살짝 감고 있다가 떴고 곧이어 형이 깊게 입을 맞춰줬다. 이젠 핸드폰에서 삐약이의 심장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내 가슴께에서 심장 소리가 세게 들렸다. 이 형은 심장 소리에 뭐 있나 봐.

 

 

 

+아빠가 첫 태동 느끼던 날

 

 

배에서 뭔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어. 이게 그건가 태동. 사실 이제 임신 6개월이 다 되어가서 태동이 궁금하던 터였다. 이런 저런 얘기들은 많았지만 다들 하는 말이 직접 느껴봐야 아는 거라고 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뭔가 어디 부딪히는 것 같고 암튼 신기했다. 가만히 배에 손을 대고 있으니 또 퉁,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어, 삐약아. 괜히 반가운 느낌에 배를 잡고 웃었다. 지금 작업실에서 열심히 작업 중일 형에게 가볼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국 작업실 문 앞에 섰다. 문을 약간 두드렸는데 방문이 빠르게 열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에? 형 작업 중 아니었어요?”

“어 맞아. 왜?”

“근데 왜 이렇게 빨리 나와요? 헤드폰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가만히 서서 둥그런 배를 쓰다듬으며 형을 쳐다보자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랑 삐약이를 두고 어떻게 귀를 막고 있냐며 웃었다. 아이 정말. 괜히 일하는 형 부른 거 아닐까 약간 걱정은 됐지만 어서 이 느낌을 형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앞에 가만히 서 있던 형의 손을 잡아서 내 배 위로 올렸다. 그냥은 잘 안 느껴지려나. 나야 배 안에 삐약이를 품고 있으니 태동을 느끼기 쉬워도 형은 아니니까 왠지 옷 위로는 잘 못 느낄 것 같아서 형 손을 다시 잡고 옷 속으로 넣었다. 형이 ‘어어, 지민아’ 하면서 당황했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형의 손과 내 배를 바라봤다. 삐약아, 이건 아빠 손이야. 형의 손으로 내 배를 쓰다듬자 곧이어 또다시 퉁,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

“느꼈어요? 느껴졌어요?”

 

 

내가 재촉하면서 묻자 형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번엔 다른 손도 넣어서 내 배에 가져다 댔다. 형은 아예 몸까지 낮춰서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고 가만히 있으니 또다시 배에서 태동이 느껴져 왔다. 형은 내 배를 가만히 보면서 웃었다. 본인은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려는 것 같았는데 이미 광대가 위로 쭉 올라가 있었다. 형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나를 올려다봤다. 웃음을 참고는 있는데 의미는 없었다. 형이 입술을 몇 번 더 꾸물거리더니 다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나, 삐약이랑 하이파이브했어.”

 

 

그렇게 웃으면서 손을 떼지 못하는 형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한창 삐약이가 활발할 시간인지 배 안이 열심히 움직였고 그때마다 형은 오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좋아했다. 나는 그런 형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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