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짐총] 나는야 내일의 조선 우상꾼

 



W.래더



*이 글은 고전이나 어떤 고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디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재밌길 바라고 썼는데 재미없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큰 생각 없이 썼습니다. 부디 읽어주시는 분들도 아무 생각 않고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기로 마음 먹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7장. 가즈아!




“가겠습니다.”

“안 된다.”

“갈 거라고.”

“안 된다지 않았느냐!”

“아 그럼 어쩌라고! 벌써 시일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 진연에 서면 보내주겠다, 하더니 자기들도 떠맡기 힘든 청나라 황자를 우리한테 맡겨두고 도대체 얼마나 지났느냔 말야! 우리가 쟤 보모야?”

 

 

참다못한 윤기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자마자 하얀 목덜미로 칼이 들어왔다. 칼부터 뽑는 걸 보아 전무사일 거라고 짐작하며 고개를 틀었으나 칼을 쥔 사람은 청나라의 우락부락한 또 다른 무사였다.

 

 

“감히. 대청제국의 황자께 무어라 한 것이냐.”

 

 

낮게 깔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쟤’라고 칭한 사람이 무려 대청제국의 황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옘병. 저 놈들은 꼭 지들더러 ‘대청제국’이라고 불렀다. 윤기의 얼굴은 더욱 더 피로해져갔다. 이러다 정말 막둥이를 등에 업고 야반도주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즉시 반역자로 몰아 네놈들의 사지를 찢을 터이니. 그리되면 저승에서도 놀이판을 벌이진 못할 것 아니냐.”

 

 

제 속을 꿰뚫은 듯한 말에도 윤기는 여전히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자리에 있던 고위 관료들이 되레 당황했다. 목에 칼을 대고서도 뭐 저런 표정을 짓는 놈이 있단 말인가.

 

 

“이미 밖에서 임금님 욕하고 다닌다고 우리 사당패들을 반역자로 몰고 있지 않으십니까. 고관대작 나으리.”

“저, 저놈이! 정녕 반역자로 사지가 찢겨야 정신 차리겠느냐!”

 

 

조선 관료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목덜미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졌고 윤기의 목가에 칼이 더 바짝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반역자가 뭔뎅?”

 

 

그때 어디선가 발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방 안으로 넘어왔다. 당황스러움에 다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방 한쪽 창가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태형을 발견했다.

 

 

“화, 황자마마.”

“아니 어찌. 어이고, 전무사를….”

 

 

황자의 키가 쑥쑥 자라나고 있다고는 하나 높이 쌓아올린 건물의 창문까지 닿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지나친 성장을 했다기엔 황자는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었다. 그에 청 사신이 진상을 확인하러 창가로 몸을 가져갔다. 태형은 전무사의 어깨에 올라 앉아 있었다.

 

 

“그래서 반역자가 뭔데? 좋은 거야? 그럼 나도 그거 할래!”

“황자마마. 말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해맑은 황자의 말에 조선 관료는 바닥에 엎드렸고 청 사신은 이마를 짚을 뿐이었다. 황자의 등장에 무사들까지도 몸을 숙이는 터에 윤기의 목덜미에서도 칼이 빠져나갔다. 목에서 날이 잘 선 검이 사라지자마자 윤기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태형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궐 밖으로 나가고 싶지?”

“엉?”

“여기 너무 오래 있었잖아. 궐 밖에 나가면 재주넘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매일매일 잔치가 벌어지고 길거리엔 맛있는 것도 진짜 많이 팔아.”

“진짜?”

“당연하지.”

“네, 네 이놈 말을 멈추지 못하겠느냐!”

“아 시끄러워. 너! 조용히 해.”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어 소리 지르던 조선 관리를 향해 태형이 인상을 찌푸렸다. 곧게 잘 뻗은 손가락으로 그 관리를 꼭 찍고는 그 손을 제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곤 다시 윤기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잘 기른 호랑이 새끼 같아서 잠자코 태형을 보다 옅게 미소 지었다. 이어 쐐기를 박을 말을 꺼냈다.

 

 

“그리고 밖에 나가면 너도 공연하게 해줄게.”

“정말?”

“나 못 믿냐? 판에 세워준다고. 네가 그렇게 잘 따르는 지민이도 한참 걸린 거야. 너는 특별히 밖에 나가자마자 첫판에 세워줄게.”

“좋아! 나 좋아! 나 나갈 거야!”

“황자마마!”

“어어, 너네도 따라올 거야? 그럼 나를 따르거라!”

 

 

전무사의 어깨 위에서 몸을 팔락팔락 흔들던 태형은 다리로 방향을 조정해 민사당패가 묵는 처소로 향했다. 사신단과 조선 관료들이 부리나케 그들을 쫓아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창가에 서서 바라보던 윤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자신도 방을 나섰다.

 

 

“진작 쟤더러 말하라 할 걸.”

 

 

 

**

 

탁 트인 전망과 구수한 흙냄새, 왁자지껄한 소리까지. 몸을 휘감는 반가움에 민사당패 단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이게 얼마만이냐. 아이고 나는 궐 지박령 되는 줄 알었다.”

“숨이 트인다, 트여. 조금 더 있었으면 진짜 숨 막혀서 저승 갔겠어.”

 

 

저자에 펼쳐진 장을 구경하며 모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팔을 쫙 뻗어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했다. 지민도 오랜만에 나온 밖에 신이 나서 몸을 방방 뛰었다. 그 뒤통수가 깜찍해 윤기는 몇 번이나 동그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리! 저리 가거라. 아니, 아니다 저기!”

“황자. 어찌 출처도 모르는 길거리 음식을 드시려 하십니까.”

“시끄럽다아! 나는 저 떡을 먹을 것이다! 빨리 저리 가라고오오!”

 

 

제일 신이 난 것은 태형이었다. 정국의 등에 업힌 채로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다. 청나라에도 숱하게 장이 열리고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나 궐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던 황자는 이런 자유로운 시장을 본 적이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에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장 가판에 놓아둔 떡 바구니를 본 태형은 정국에게 업힌 채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청 사신에 의해 제지당했다.

 

 

“더러운 조선 놈들이 저 떡을 무엇으로 만들었을 줄 알고 이리 떼를 쓰십니까. 청국으로 돌아가면 떡은 얼마든지 대령.”

“아 저거 먹을 거라고! 저거 안 주면 안 가!”

 

 

정국의 등 위에서 두 팔과 다리를 퍼덕이던 태형은 곧이어 바닥으로 내려섰다. 물론 황자가 걸음하는 곳마다 비단을 깔아둔 탓에 흙바닥에 드러눕는 일은 없었다. 부드러운 비단 보료에 드러눕자마자 황자는 본격적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 저거 하나만 달라고! 내 놓아라! 나에게 떡을 내 놓아라!”

 

 

청국에서야 황실의 보살핌 아래 어화둥둥 우리 황자 애기 황자 취급을 받았지만 실상 그는 장정 중의 장정이었다. 키도 컸고 성장하며 어깨도 듬직하게 벌어졌다. 전무사의 등에 업혀 다니기엔 지나치게 컸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업혀 다녔다. 전무사도 원체 익숙하게 그를 등에 업었다.

 

아무튼 그렇게 크디 큰 태형이 조선의 길바닥에서 온몸을 구르며 떼를 쓰는 꼴을 보고 있으니 청 사신들은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조선에서, 이 속국을 다스릴 황자가 떡 하나 때문에 바닥을 구르고 있다니. 황제가 봤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져도 골백번을 쓰러졌을 거였다.

 

 

“빨리! 안 주고! 무엇하느냐!”

 

 

한 번이라도 저 뜻을 굽혀야겠다고 생각한 사신단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황자를 쳐다봤다.

 

 

“황자는 그럼 여기서 사십시오. 저희는 청국으로 가겠습니다.”

“엉?”

“여기가 그리 좋으면 여기서 사십시오. 저 떡도 먹고 장도 보면서 그렇게 사십시오. 저희는 청국 궐에 들어가 맛있는 잔칫상도 들이고 진연도 열고 그럴 것입니다.”

 

 

그 단호한 말이 제법 먹힌 것 같았다. 바닥에 누워있던 태형이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에 사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대로 잘 구슬린다면 이 길을 쭉 걸어 청국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인 거 같구나! 얼른 가거라. 나는 여기서 살 것이다!”

“그러, 예? 네?”

“잘 가거라! 나는 여기서 놀이패도 하면서 지민이랑 살 거야!”

 

 

황자는 성큼성큼 걸어 신발을 구경하던 지민에게 다가가 작은 어깨에 손을 두르고 기고만장, 위풍당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그 손은 머지않아 남준과 석진에 의해 치워지긴 했다.

 

장을 구경하다 갑자기 봉변을 당한 지민은 당황했다. 왜 또 전데요….

 

 

“왜 안 가느냐? 가서 아바마마께 내 얘기 전해주고! 가자 지민아!”

“아니, 저기 황자님.”

“너는 내 사수가 아니냐! 태형이라 부르라니까! 내가 막내다!”

 

 

내가 그걸 어떻게 하냐구요. 지민은 울상을 지었고 이번에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태형이 제 사수를 잡아채 저자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무사가 가장 빠르게 그 뒤를 쫓았고, 지민을 빼앗긴 형아들이 동시에 달렸다.

 

 

“거 괜한 말은 왜 하셔서!”

“…이러면 될 줄 알았는데. 분명 저자에서 보았단 말입니다! 떼를 쓰는 아이에게 어미와 아비가 꼭 이러던데!”

“황자가 그와 같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신단 대표를 흘기며 나머지 관료들이 달렸다. 궐 내부에서만 생활하던 이들이니 뜀박질에 익숙지 않아 몇 걸음 내달리다 멈추어 숨을 고르고, 달리다 멈추고 숨을 고르길 반복했다. 난장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