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짐총] 나는야 내일의 조선 우상꾼

 



W.래더



*이 글은 고전이나 어떤 고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디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재밌길 바라고 썼는데 재미없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큰 생각 없이 썼습니다. 부디 읽어주시는 분들도 아무 생각 않고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기로 마음 먹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4장. 황자님의 징징윙윙




 

“잘했어! 수고했다.”

“아으. 이 답답한 궐도 이제 끝이다. 지겨워 죽는 줄 알었소.”

“우리는 역시 역마가 답이야. 다음엔 아예 멀리 가자. 남쪽으로 갈까 북쪽으로 갈까.”

 

 

처소로 돌아온 이들이 기분 좋은 피곤함을 느끼며 옷을 정돈하고 있었다. 마루에는 눈에 한 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서 누구랄 것 없이 서둘러 상에 둘러앉았다.

 

 

“그래도 이 밥만큼은 그리워지겠어.”

“그건 그래. 이만큼 잘 챙겨먹은 적은 없으니.”

“꼭 나랑 있을 땐 굶었던 것처럼 얘기한다. 너희.”

“아이 꼭두 그런 의미 아닌 거 알잖어. 먹읍시다.”

 


호석이 웃으며 윤기의 입에다 떡을 하나 물렸다. 닥치라는 거냐고 뭐라 하고 싶었지만 입안 가득 들어차 달라붙은 떡 탓에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윤기는 호석을 슬쩍 흘겨본 후에 지민을 쳐다봤다. 무대가 만족스러웠는지 기쁜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을 보며 뭐라 다독여 줄 생각이다. 이 옘병할 떡만 다 씹고 나면.

 

 

“잘했다. 우리 막내. 재주넘은 거 진짜 최고였어.”

“조금 흔들린 거 같아서 아쉬워요.”

“흔들리긴 뭐가. 엄청 잘했다. 아유 우리 지민이 이제 진짜 사당패 다 됐네.”

“원래도 사당패였어요!”

 

 

머리를 헝클이는 석진의 손을 치우며 지민이 얄궂게 웃었다. 그에 다들 호탕하게 웃으며 각자 음식들을 집었다. 입안에 풍기는 맛스러운 음식에 감격하려는 찰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민 사당패는 당장 나와 무릎을 꿇으라!”

 

“아니 왜 또!”

“우리 오늘은 임금 욕 안 했다고!”

“청나라 욕도 슬쩍 바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왜 무릎을 꿇으래!”

“다들 움직이지 마. 걍 먹어라.”

“그래도….”

“뭘 그래도야. 먹어 얼른. 식는다.”

 

 

밖에서 들리는 호령과 꼭두의 묵직한 엉덩이에 일원들만 어째야 할지 모르고 궁둥이만 들썩였다. 이대로 밥을 먹었다간 딱 체할 늧이었다.

 

 

“이놈들이! 당장 나오지 않고 무얼!”


“비켜라.”

 

 

군관의 호령에 윤기를 제외한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남준은 무릎으로 윤기의 몸을 툭툭 쳤지만 자리에 돌처럼 굳은 꼭두는 떡이나 더 집어먹을 뿐이었다. 그때 군사들을 가르고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엇, 저 사람.”

“청나라 사람 아니여? 아까 본 거 같은디.”

“뭐지 어떡해야 해.”

 

 

이대로 절을 올려야 하나,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 하다못해 인사라도 올려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였다.

 

 

“나도 할 것이다.”

 

 

갑자기 들린 황자의 목소리에 다들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선만 집중시켰다. 세상에서 제일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을 한 황자 태형은 그들 가까이 다가서며 다시 말했다.

 

 

“나도 놀이패에 끼워주거라!”

 

 

황자의 말에 그 성미를 아는 사신들은 머리를 짚으며 신음했고 영문을 모르는 조선의 관료들은 고개만 갸웃하며 당황할 뿐이었다. 사실 더 당황한 것은 황자가 조선말을 썩 잘 한다는 것이었다. 사신단을 보필하며 종종 조선어로 욕을 지껄이던 관리는 등줄기에서 궁둥이까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황자마마.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사흘 뒤에 본국으로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싫다! 나는 청국에 안 갈 것이다! 나도 끼워주거라 응? 나도 놀이패 할 것이다!”

 

 

옆에서 슬쩍 말을 걸어오는 청나라 사신을 옆으로 슬쩍 밀어낸 태형은 보란듯이 놀이패 가까이 다가갔다. 그 적극성에 놀란 일원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혼자 멍하니 굳어있는 지민만 빼고.

 

 

“나도 너처럼 훌륭한 공중제비를 넘고 싶다.”

 

 

가장 앞에 가만히 서 있던 지민의 손을 붙잡으며 말을 하자마자 동시에 작은 몸이 뒤로 밀려났다. 다름이 아니고 남준과 호석, 그리고 석진이 작고 귀한 막내의 몸을 자신들 쪽으로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태형은 개의치 않고 더욱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들에게 향했다.

 

 

“같이 하자! 나도 너희 놀이패에 끼워주거라! 가면 쓰고 놀이하는 것도 가락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다 할 것이다!”

 

 

제 발로 걸어 다니지도 않으면서 제법 당당하게 말하는 뽄새에 몇 관리들은 작게 비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곧바로 날아오는 호위무사 정국의 서늘한 칼날에 표정을 굳히며 마른 침만 꼴딱 삼켜냈다.

 

태형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일순 변했다. 어벙벙하게 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놀이패를 보며 짐짓 거절의 기운을 느꼈다. 그에 입술이 밑으로 축 처지더니 눈꼬리도 제법 아련하게 내려갔다. 그 모습에 뒷 일이 눈에 훤한 사신들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아 끼워주거라! 조선에 눌러 살 것이다! 나는 놀이패가 하고 싶다아아! 시켜 주거라아! 청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다아.”

“화, 황자마마.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이 무슨 추태란 말입니까.”

“이거 놓아라! 늙고 못생긴 너희랑 안 놀 것이다. 저렇게 어리고 잘생긴 쟤들이랑 놀 거란 말이야!”

 

 

황자의 막말에 상처를 받은 사신단 중 하나가 가슴팍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멍하니 서 있는 채 황자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민사당패 일원들은 사태 파악에 머리가 아팠다.

 

 

“저 분이 대체 왜 저러신담….”

 

 

충격과 공포에 빠져버린 지민이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사당패 일원 모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의 표시였다.

 

 

“…뭐야. 저 병신은.”

 

 

여전히 상 앞에 앉아 떡을 씹던 윤기의 말에는 모두가 사색을 띄었다. 황자가 조선말을 아예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 앞에서 욕지기라니.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큰 소리로 떼를 쓰고 있는 태형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했다. 그 주위의 사신단과 관료들도 청나라 황자를 어르고 달래느라 바빴다.

 

 

“놓아라! 안 갈 것이다! 이거 놓아라아!”

“황자마마! 돌아가셔야 합니다. 제발. 뭔 힘이 이렇게 세.”

“나 안 갈래애. 나도 사당패를 할 것이다아!”

 

 

“시끄러운데 그냥 하라 그래.”

 

 

소란스러운 마당에 내던져진 낮은 목소리에 일순 고요가 찾아왔다. 산적 꼬치를 집어 들고 하나하나 뜯어먹으며 마당은 보지도 않고 있는 윤기를 마당의 모든 이가 쳐다봤다.

 

 

“거 시키세요. 애들 밥도 못 먹고 이게 뭡니까.”

 

 

그 말에 진연 담당자는 기가 찬 듯 한숨을 내 쉬었다. 전에는 자기 사당패 막내의 무슨 잔치를 망쳤다고 못 한다더니 이번엔 밥상머리 앞에서 싸운다고 황자를 자기들 사당패로 들이겠다니. 본격적으로 밥이 제일 중요한 남사당패의 꼭두쇠다웠다.

 

 

“그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

“정말? 나 시켜줄 거야?”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사신단의 만류는 태형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들의 동료가 되라는(아님) 놀이패 대장의 말에만 정신이 쏠려있었다. 내용물을 다 먹고 꼬치의 나무 막대기를 상 위에 던져놓은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형은 신이 난 강아지처럼 몸을 방방 띄우며 윤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하나. 우리 패거리의 중요한 규칙은 가장 늦게 들어온 이가 막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마당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감히 청국의 황자를! 이라는 말이 마당에 가득했다. 역관의 도움으로 말을 전해들은 사신단들도 뭐라고 언성을 높이며 손가락질을 했다. 윤기를 제외한 민사당패의 일원들은 눈빛만 흔들 뿐이었다. 사당패의 꼭두만이 태연자약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둘. 우리 패거리에선 막내한테 존대 안 해.”

“저 놈을 당장 잡아다 목을 쳐…!”

“좋다! 또 규칙이 있느냐?”

“셋. 그쪽은 우리 막내, 였던 박지민이 직속 선배가 되어 가르칠 거야. 사수를 대하는 규칙이 몇 개 있는데. 딱 두 개만 지켜.”

“그게 무엇이냐! 어서 말해보아라!”

“하나. 사수의 말을 무조건 잘 따른다. 둘. 손대지 않는다.”

“좋아! 난 김태형이다! 올해로 열일곱이 되었다!”

 

 

태형의 끄덕임이 있자 윤기는 나머지 애들을 데리고 상에 하나씩 앉혔다. 마지막으로 가장 앞줄에서 멍하니 서 있는 지민의 팔목을 붙들고 자리로 데려갔다. 어깨를 눌러 앉히려는 그때 지민이 제 손을 붙잡더니 속삭였다.

 

 

“꼭두. 저는 열여섯인데….”

“그게 뭐. 내가 김석진한테 하듯이 해.”

“청나라 황자님께요?”

“청나라 황자님 아니고 김태형이라잖아. 새로 온 막내, 잘 가르쳐라.”

 

 

마른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떠나버린 야속한 꼭두 민윤기를 바라본 지민이 울상을 지었다. 그런 지민의 얼굴 바로 앞으로 해맑은 얼굴이 튀어나왔다. 저도 모르게 악을 지르려고 한 걸 옆에 앉아있던 남준이 빠르게 입을 틀어막아준 덕에 비명소리는 막을 수 있었다.

 

 

“잘 가르쳐주거라. 나는 네가 좋다.”

 

 

얼굴에서 남준의 손을 슬쩍 치운 지민이 해맑은 황자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태형은 자연스레 상의 제일 끝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었다. 지민은 차마 그 숟가락이 내 숟가락이라고 말을 못한 채 청나라 황자가 맛있게 밥을 먹는 것만 지켜봤다.

 

 

그러니까 내가 저 분을 어떻게 가르치냐구요…. 울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한 지민을 바라보며 나머지 패거리가 작게 웃었다. 절대 권력과 미친 판단력의 민윤기가 내린 결정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물론 손이 파르르 떨리는 탓에 국물 떠먹는 것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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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외국인 일원(멤버) 합류한 조선우상꾼 민사당패!

자기보다 나이 많고 지위 높은 외국인 막내를 다룰 사수 박지민의 앞날에 축복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