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짐총] 나는야 내일의 조선 우상꾼

 



W.래더



*이 글은 고전이나 어떤 고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디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재밌길 바라고 썼는데 재미없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큰 생각 없이 썼습니다. 부디 읽어주시는 분들도 아무 생각 않고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기로 마음 먹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3장. 진연





진연은 순조롭게 준비되었다. 며칠 전에는 청나라의 황자와 사신단도 도착했다. 극진한 것보다 더 극진히 모시라는 임금의 말을 따르고 있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못 걷겠다.”

“예, 예?”

“걷지 못하겠어. 다리가 너무 아프단 말이다. 아프다고!”

 

 

방에서 나와 복도에 발을 디디자마자 청나라 황자가 내지른 소리에 청국어를 할 줄 모르는 궁인들은 그저 놀라 파르르 떨 뿐이었고, 통역을 맡은 역관은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벙벙하게 있으니 황자 곁을 지키던 호위 하나가 조선어로 말을 꺼냈다.

 

 

“가마를 대령하시오.”

“가마, 가마 말씀이십니까?”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가마를 가져 와.”

 

 

이 자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인데 두 번째만에 뒷꽁무니가 짤린 말을 들었다. 사신단 담당 관리는 당황하였지만 조선어가 서툴러 그럴 것이라 판단했다. 눈을 치켜뜨며 살짝 빼든 칼 때문이 아니었다.

 

 

“소, 송구하오나 가마가 여기까지 들어오기엔 많이 좁사옵니다.”

“땅덩어리가 작으니 그럴밖에.”

 

 

태형이 고개를 저으며 옆에 서있던 제 호위 정국을 툭툭 쳤고, 그에 정국이 한숨을 내쉬며 황자 앞에 몸을 숙였다. 자연스레 그 등에 업힌 채 처소 밖으로 향했다. 황자와 사신단이 저 멀리 아득해져서야 관리는 욕을 내뱉었다.

 

 

“저 옘병할 놈의 새끼. 새파랗게 어린 게. 어휴. 저놈 새끼 제 나라에서도 두 다리로 걸어다닌 걸 본 사람이 없다더니. 알만하네.”

“말조심하십시오. 듣는 귀가 많습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조선어도 할 줄 아는 자들이 많은지라.”

“청나라 칼잡이도 조선말을 할 줄은 몰랐네.”

“듣기론 조선 출신이라 합니다.”

“그래?”

 

 

그랬구먼,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관리는 문득 고갯짓을 멈췄다. 뭐야. 그럼 저 새끼 조선말 할 줄 알면서 나한테 반말한 거야? 저, 저!

 

 

“옘병할 칼잽이 놈 같으니!”

 

 

 

***

황자의 비위 맞추랴, 사신단 모시랴, 와중에 완벽한 진연을 준비하랴 조선의 조정은 말 그대로 난리통이었다. 한 시진에 한 번 꼴로 황자가 청나라로 돌아가겠다며 떼를 쓰는 탓에 진연일도 하루 당겼다.

 

느닷없이 당겨진 진연일에 무대를 준비하던 재주꾼들 모두 정신이 없었다. 정비가 안 된 옷들과 악기, 그리고 춤과 가락을 손보느라 전날까지 밤을 꼴딱 새워야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다냐.”

“그래도 여기 있으면서 굶지는 않았잖아. 궐밥 맛 좋더만.”

“그게 다 어디서 나온 건데. 아무튼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이 궐을 오만가지 방법으로 씹어줄 거니까.”

“윤기 사형. 벌써 구상 다 했지? 어? 끝났지?”

 

 

민사당패도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애초에 민사당패가 인기가 좋았던 이유는 조선의 현실을 제대로 꼬집어 신랄한 풍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조정 신료들과 놀고먹는 양반들에 비해 악착같이 일해도 쌀밥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든 평민들에 대한 현실직시가 극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거기다 외교적으로 청나라에 꼼짝 못하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정책도 민사당패 극의 주요 소재였다.

 

그런 그들이 사신단 앞에서 본래 하던 식으로 공연할 수는 없었다. 하여 궐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극을 전면 개조하고 안무와 대사, 가락을 수정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대사 담당이던 석진과 안무 담당이던 호석, 그리고 가락을 도맡던 남준은 윤기의 진두지휘 하에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코피가 날 정도로 강도 높은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

 

 

 

“지민이 괜찮냐?”

“예? 예.”

“살판 서자마자 본판에 들어섰으니 얼마나 긴장되게냐잉.”

“우리 막내 실수해도 괜찮아. 형들이 다 책임져줄게.”

 

 

와중에 지민에게만 할당된 일이 없었다. 형들더러 자신은 무엇을 하면 되냐고 물어도 오늘 종일 고생했으니 쉬라는 말뿐이었다. 실상 맡은 바가 없어 이부자리나 정리하고 마당이나 쓸고 짐을 정리하는 잡일만 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자신만 너무 아이 취급하는 거 같아 서운하기도 했고, 또 형들만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지민은 안무나 가락이 새로 짜여지자마자 밤새도록 연습했다. 형들이 말려 억지로 침상에 눕혀도 몰래 일어나 마당에서 연습하기 일쑤였다.

 

 

“나 실수 안 해요.”

 

 

그런 그에게 실수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무대에 딱 한 번 서봤다. 지민의 두 번째 무대는 무려 궐이었다. 자신에게 온 이 귀중한 무대에서 손짓 한 번 틀리고 싶지 않았다. 지민의 번뜩이는 눈을 보며 형들 모두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우리 막내는 잘 할 거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내려와. 후회 없이. 이런 무대는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윤기가 탈과 의상을 점검해주며 하는 말에 지민이 침을 꼴딱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주위를 아우르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사당패 중 가장 마지막 순서였고, 바로 지금 올라갈 차례였다.

 

 

“가자.”

 

 

*

진연장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조선의 대소 신료들과 왕실은 줄곧 좌불안석의 상태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황자가 내내 하품을 하고 꾸벅꾸벅 졸며 진연에 흥미가 없음을 온몸으로 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끌벅적한 사당패의 놀이에는 인상마저 찌푸린 탓에 진연 담당자는 제 옷을 땀으로 세척해야만 했다. 하여 마지막 사당패의 놀이를 취소시켜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다 날려버렸다. 그 사이 민사당패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망했다. 진연 담당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 마지막 순서이옵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도 황자는 감은 눈을 뜰 생각을 못했다. 본디 태형은 연회를 좋아했다. 청나라 제 궐에서는 연회가 잦았고 때마다 신이 나서 참석했다. 조선에서도 진연을 벌인다하여 기대했건만 그 규모가 너무 작았다.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이 작은 무대에서 꼼지락대는 꼴이 우스웠다. 곡조들도 웅장한 맛이 없었다. 당장 청나라로 돌아가 모든 악공들과 무희들을 불러다 놓고 재주를 부리게 하고 싶었다.

 

 

오히려 눈을 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게 편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반갑기도 했고, 아직 무엇이 더 남았다는 게 지루하기도 했다. 고개를 내 저으며 이번엔 어떤 다른 생각을 해볼까 하던 차였다. 고요했던 진연장을 울리는 커다란 징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떠버렸다.

 

 

“시끄럽, 구….”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조용히 하라.”

 

 

징 소리가 거슬린다며 짜증을 내려던 찰나 제 눈앞에 펼쳐진 공연에 입을 닫아버렸다. 다섯의 사내들이 모여서 장단을 맞추고 춤을 추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중간 중간 조선말로 무어라 했지만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황홀했다. 들어본 적 없는 곡조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안무였다. 개개인이 안무를 추는데 꼭 한 몸처럼 잘 맞았다.

 

 

“안무가 소름끼치게 잘 맞는구나.”

“예. 그러하옵니다.”

“날이 잘 선 검을 보는 거 같아.”

 

 

처음으로 황자가 삐딱하게 기대놓은 몸을 바로 세웠다. 왕실과 조정 신료들이 곁눈질로 그를 보느라 바빴다. 태형은 아예 몸을 앞으로 숙여 그들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그래. 저리 잘 맞는 군무는 내 평생 처음이구나.”

“저도 그렇사옵니다.”

“저것을 칼군무라 부르면 좋겠구나.”

“칼군무라.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렇게 황자 왈 칼군무라 일컬어지는 것을 추던 다섯 명 중 넷이 탈을 벗어던지며 양 옆으로 갈라져 섰다. 그 사이에 작은 체구의 소년이 가만히 서 있었다. 뒤이어 쓰고 있던 탈을 벗더니 요망스럽게도 황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가벼운 돋움 닫기 후 곧장 공중제비를 선보였다. 바닥에 손도 짚지 않고 돌았다. 그 몸짓을 본 태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자마마. 어디 불편하신 겝니까.”

 

 

곧이어 무대를 끝낸 민사당패는 서둘러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황자의 알 수 없는 반응에 행여 불똥이라도 튈까 담당자가 서둘러 그들을 끌어내린 탓이다. 황자의 표정이 미묘했다. 우물쭈물하며 겁을 먹은 신하들 중 하나에게 태형이 말을 꺼냈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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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우상꾼의 칼군무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 지민이는 하고 싶은 거 다 했는데 황자님은 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 참고로 태형 황자님은 조선말 청국말 다 잘 합니다. 앞으론 극에서 따로 조선말이니 청국말이니 구분짓지 않을 예정입니다. 우리는 전부 조선말로 읽읍시다.

한글 만세 한국어 만만세!

(절대 제가 중국어의 지읒자도 몰라서 이러는 것은 맞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