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짐총] 나는야 내일의 조선 우상꾼

 



W.래더



*이 글은 고전이나 어떤 고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디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재밌길 바라고 썼는데 재미없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세요.

*큰 생각 없이 썼습니다. 부디 읽어주시는 분들도 아무 생각 않고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기로 마음 먹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1장. 네? 뭐라구요?

 

 

고귀하게 빛나는 청나라의 궐 안에 있는 누각에서 황제와 그가 귀애하는 황자가 식사중이었다. 황제가 어찌나 아끼는지 벌써 그의 후계라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황자였다. 인물 좋고 신체 건강하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 을 것만 같지만.

 

 

“싫습니다.”

“황제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냐!”

“황상의 말씀은 귀담아 들을 것이나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 빠지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대쪽 같은 성미라 하겠다.

 

 

“…야. 김태형. 진짜 싫어?”

“예.”

“이 애비가 사약이라도 내렸냐? 어?”

“소자에게는 그 말씀이 사약과 진배없습니다.”

“…시금치가?”

 

 

다른 말로는 고집이라고 하고. 좀 더 세속적인 말을 쓰자면 떼쟁이라 하겠다.

 

 

“싫어! 안 먹어! 내가 안 먹는다고 했잖아!”

“이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 반말이.”

“으악! 황제가 사람 친다!”

“내 자식 내가 패는 건 공자도 뭐라 안 할 거다.”

“할 걸요?”

“야! 아오 저놈 새끼 저거.”

 

 

청나라의 후계 1순위 황자 김태형.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천자문, 소학쯤은 재미삼아 익히고 이어 대학, 중용, 논어 등등 온갖 서적도 독파한 영재라 하겠다. 미적인 감각도 뛰어나 유명한 화백들과 곧잘 어울렸고 서로의 그림을 교류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연회를 좋아하였고 체력도 좋아 유능한 무사와 무술 겨루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토록 완벽하기에 아주 어릴 적의 나이에 황제가 후계로 선언하였다. 문제가 있다면 이 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너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황상. 어찌 저잣거리에서나 하는 속된 말을 입에 담으십니까.”

“너한테 하려고 궁인들한테 배웠다. 시금치 좀 먹으라는 게 그렇게 문제냐? 어?”

“싫습니다!”

“왜!”

“맛이 없습니다!”

“야!”

 

 

황자로 인해 많은 시간 기뻤지만, 또 황자로 인해 수차례 뒷목을 잡고 쓰러져야 했던 황제는 벌써 육천오백마흔여덟번 째의 뒷목을 잡으며 이대로는 안 될 거 같다고 판단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침까지 잘하던 것도 해가 떨어지면 하기 싫다고 떼를 쓰고, 죽어도 안 한다고 하던 걸 갑자기 하겠다고 바닥에 드러눕기가 일상인 저 찡찡이 황자를 개조시켜야만 했다.

 

 

“야.”

“예. 황제 폐하.”

“너 조선 가.”

“네? 엥? 어?”

“조선 가라고. 이번에 조선에 사신단 보낼 건데 너 거기 가.”

 

 

그의 결단은 태형을 조선 사신단에 합류시키는 거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황자는 궐에서만 지냈다. 사냥이라도 하려면 청국 황실 소유의 산으로 향했고 물놀이는 황궐 안에 있는 곳에서 했다. 그래 견문이 좁으니 아직 철이 덜 든 게야. 황제는 뒷목을 잡은 채로 태형을 노려봤다.

 

 

“황제 폐, 아니 아빠. 나 어디 가라고?”

“조선.”

“왜?”

“꼴 보기 싫어서.”

 

“황제 폐하.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태형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주변 궁인들은 벌써 바닥에 나자빠진 귀하디귀한 황자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저마다 황자보다 낮은 자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리기 시작했다.

 

꽉 뭉친 뒷목부터 시작해서 머리와 등골까지 뻣뻣하게 아파왔다. 다른 건 다 분명한 황제의 재목인데 흠이 너무 크다. 커도 너무 컸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매번 옷만 보내서 절 받는 것도 민망하다. 너도 곧 황제가 될 사람이니 네가 통치할 작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아바마마.”

“그러니까. 잔말 말고. 썩. 꺼지거라.”

 

 

 

****

 

조선의 궐은 한창 바빴다. 청나라 사신들이 오기로 한 날이 고작 두 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석 달의 시간은 사신단을 맞이하기 위한 진연을 준비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 궐 내의 모두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뭐, 뭐라? 확실한 게냐!”

“방금 청나라에서 새 기별이 왔습니다. 청 황자가 온답니다.”

“이, 이 무슨. 황자라니. 느닷없이 황자라니!”

“게다가 그 황자가 현재 청 황제가 공표한 유일한 후계랍니다.”

 

 

관리 하나가 전해온 말에 진연 담당자는 진땀을 쫙 빼야 했다. 그동안엔 옷 뭉치와 사신단만을 보내왔고, 사신단도 늘 오던 사람만 와서 준비하기엔 수월했다. 사신단의 취향만 잘 맞춰주면 청국으로 돌아가서도 좋은 말만 전해주곤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황자가 온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차기 황제가. 금빛 용포를 휘두르고 올 황자를 떠올리자마자 다리의 힘이 풀렸다.

 

 

“영감. 괜찮으십니까.”

“당장, 당장 황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오거라.”

“이미 전해 왔습니다. 황자가 예술에 조예가 깊다 합니다.”

“예술?”

“예. 음악과 춤, 그림까지 다 좋아한답니다.”

“우, 우리 무희들은. 무희들은 어찌 준비되었느냐.”

“거야 늘 사신단 맞춤 기녀들로 준비해놨죠.”

“황자님의 취향은? 응?”

“그, 그런 말은 없었는데.”

 

 

날벼락 중의 날벼락이었다. 황자가 궁중무희를 좋아하는지, 저잣거리의 소탈한 춤꾼들을 좋아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고작 두 달 남짓한 시간 안에 황자의 취향을 되묻고 그에 맞춰서 연회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진연 담당자가 이마에 흐른 땀을 관복의 소매로 닦아내고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득하게 감겨져있던 그의 눈이 번뜩이며 빛났다.

 

 

“조선 팔도에 유랑하는 사당패들을 전부 끌어다 오거라. 당장!”

“예.”

 

 

 

***

 

“아이고 우리 지민이 드디어 살판났네잉. 많이 먹어.”

“다리는 호석 형이 먹어요. 나는 이거면 돼.”

“원래 처음 살판 선 날은 닭다리 먹어도 돼. 군말 말고 그냥 먹어.”

“와. 이 사람 좀 보게. 이봐 민꼭두. 자네 대장이라고 너무 멋대로 규칙 정하는 거 아냐?”

“시끄러워. 밥 앞에 두고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나 살판 섰을 땐! 살판 서게 해준 거 고마운 줄 알라면서 닭다리 네가 먹었잖아! 나한텐 닭대가리 줬으면서! 그건 대체 어디서 구해 온 거야! 아직도 의문이야!”

“석, 석진 형. 진정해요.”

 

 

한양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이제 막 놀이를 끝낸 사당패 하나가 잔치를 열고 있었다. 보통 놀이판이 끝나면 마을에서 주는 밥을 얻어먹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돈을 내고 잔치를 벌였다. 다름 아닌 놀이판의 막내 지민이 처음으로 판에 선 날이었기 때문이다.

 

살판에 선다는 건 본무대 전에 흥을 돋우기 위한 깜짝 무대일 뿐이었지만 지민에게는 그 의미가 컸다. 내내 놀이판에서 무대 한 번 못 서보고 늘 돈이나 걷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놀이패의 형님들이 제가 미워서 판에 한 번도 안 내보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 혹시 다칠까, 아플까 아끼고 아낀 탓이었다.

 

 

“다들 그만해. 지민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또 그렇게 싸울 거야?”

“남준이 말이 맞다. 그만해.”

“석진 형. 다리 형이 먹어요. 난 괜찮아.”

“아냐. 우리 막둥이 먹어. 형 닭다리 먹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지금도 그랬다. 우두머리인 윤기에게 눈을 부릅뜨고 목청을 드높이던 석진이 어느새 부드러운 눈을 하고 지민의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은 손에 들린 닭다리를 그의 말랑한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형, 형님!”

“먹어. 우리 지민이 다 먹어.”

“그래 어여 먹자. 다 식겠다.”

 

 

통통한 볼을 몇 번 두들기며 웃은 석진은 다시 자리에 앉아 윤기를 노려봤다. 앞에 높인 산적을 씹으며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튼 저 꼭두쇠 놈 진짜 의심스러워. 지민이 여장 못 본다고 판에 안 세울 때는 언제고! 뒤늦게야 세워놓고는 잔치를 벌이네. 이것도 소 한 마리 잡겠다는 거 내가 말리고 말려서 이렇게 된 거 아냐. 아니 소에서 내려오면 돼지는 돼야지 뭔 놈의 닭이야 닭이.”

“다 들리거든?”

“들리라고 한 거니까 당연히 들리겠지 저거는 저렇게 바보면서 어떻게 꼭두쇠가 된 거야? 우리가 아무도 네놈이 왜 꼭두쇠냐! 하고 묻질 않으니까 그냥 자기가 꼭두 행세 하는 거네.”

“김석진.”

“뭐. 뭐! 저 호칭도 그래. 분명 내가 쟤보다 몇 해는 더 빨리 태어난 걸로 아는데 꼭 저렇게 이름만 부른단 말이야. 형 소리 한 번 하면 뭐 쓰러지기라도 하나 봐. 전에 지민이 치마 냄새 맡다가 쓰러졌던 것, 헉.”

 

 

신기할 정도로 말과 음식 먹기를 함께하던 석진이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졌다. 옆에 있던 남준과 호석은 목에 음식이 걸려 쓰러졌나 싶어 급히 그를 확인했다. 쓰러진 그의 옆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목침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석진 형 죽었어요?”

“아니다. 밥 먹자 지민아.”

“그래 막둥이가 신경 쓸 거 아니야. 좋은 것만 보자.”

“네에.”

 

 

고개를 끄덕인 지민은 다시 고기를 입에 넣었다. 석진이 중얼중얼 불평한 이유를 모를 정도로 정말 맛있는 고기였다. 토종닭의 쫀득하고 단단한 식감이 좋았다. 턱이 아릴 정도로 음식을 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다른 다리 한 쪽마저 남준이 뜯어 저에게 내미는 걸 쭈뼛거리다 받았을 때였다.

 

 

“꼭두쇠 민윤기를 필두로 한 사당패는 당장 나오거라!”

 

 

잔칫방 밖에서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에 다들 행동을 멈췄다. 자신들이 들은 소리가 무엇인지 눈짓만 교환해가며 파악할 때였다. 다시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당장 나와 왈, 아니 오럴, 아니 오랄. 아니! 오라랄라. 에이씨.”

 

"네? 뭐라구여?"

“밖에서 뭐라는겨?”

“그러게. 뭐라는 거냐.”

 

 

가만히 문을 응시하던 윤기가 몸을 일으켰다. 겁이 많은 호석은 지민을 감싸 안고 문으로 향하는 윤기를 눈으로만 쫓았다. 쓸쓸한 꼭두의 뒤를 남준이 따라 일어서서 채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네놈이 민윤기의 사당패냐.”

“그렇습니다.”

“네 일당들은 당장 나와 오라를 받으라!”

 

 

말을 버벅거리며 씹던 관군이 드디어 정확한 문장을 뱉었다. 그 언사에 사당패 일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관군은 기어코 말을 성공시킨 데에 대해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소인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러십니까.”

“잔말 말고 어서 저놈들을 묶거라! 시간이 없다.”

“예!”

 

 

관군들이 우르르 몰려와 윤기와 남준을 포승줄로 묶었고 이어 잔칫방 안까지 들어와 호석과 지민까지 끌고 나왔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석진은 덩치 좋은 관군 하나가 업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알고 끌려가야 할 것 아닙니까.”

“시끄럽다. 한시도 지체하지 말거라!”

“지민아. 괜찮지? 응?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다냐.”

“막내야. 힘들면 얘기해. 꼭. 응? 참지 말고.”

 

 

투박하고 거친 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내내 모두의 관심은 지민에게 있었다. 처음으로 판에 선, 사당패에서만큼은 기념적인 날이었는데 이렇게 엉망으로 끝맺음 되어버렸다. 지민이 놀라진 않았을까, 속이 상하진 않았을까, 무서워하진 않을까 다들 걱정 투성이었다. 소란 속에서 고요를 지킨 건 윤기뿐이었다.

 

남준은 그런 윤기가 조금 두려웠다. 차라리 말을 하면서 냉담하게 말을 하면 그 편이 나았다. 말을 하지 않고 저렇게 눈에 살의를 띄면 머지않아 무슨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나곤 했다. 남준은 다시금 뒤를 돌아봤다. 윤기처럼 말이 없는 지민도 걱정스러웠다. 작고 귀한 지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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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과 웃김 그 사이에 있는 고전입니다.

물론 웃기길 바라고 썼지만 고전형 인간인 저란 사람...

고전물에 진지한 모습 덜어내면 죽는 병에 걸렸나봅니다.


어쨌든 웃음이 조금이나마 섞여있길 바랍니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려 약간 뻘줌하네요. 즐겁게 읽어주세요!



※ 참고로 조선시대 사당패는 실제 무대에 서기 전 연습생의 개념으로 '삐리'라는 존재가 있었다고 합니다. '삐리'들은 암동모로도 일컬어지며 그 이름 탓에 여장을 했다고 해요. 정식 데뷔한 '가열'이 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지민이는 여장 연습생 '삐리'를 거쳐 정식 데뷔한 '가열'의 상태라는 것이지요!


※ 꼭두(쇠)는 남사당패의 대장, 즉 리더를 말합니다. 그 외에도 2인자인 뜬쇠와 장소 섭외를 담당하는 곰뱅이쇠 그리고 주로 짐을 들고 나르는 덩치 좋은 등짐꾼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각각 뜬쇠 호석, 곰뱅이쇠 석진, 등짐꾼 남준으로 정해놓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다들 소중한 사당패의 일원들이니까요.


(이걸 글에 넣으려고 했더니 너무 진지하고 재미없는 대서사시가 되어버려서...제 능력으로는 자꾸 설명충이 되더라구요. 이처럼 글 속에는 차마 못 넣은 생략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설명충 등판하여 달아놓을게요. 심심하시면 읽어주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