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아 육아물 보고 싶다

 

 

W.래더

 

 

[슈짐]

 

 

*아육보는 글의 특성상 시간적 배경이 왔다 갔다 합니다. 애들이 어렸다가 자랐다가 하니 부디 이 점 이해해주세요.(ㅠㅠ)

 

 

 

♥민아빠와 민지율

 

 

 

“지민아아.”

“어. 나 여기 있어.”

 

 

자다 깨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형은 어제 새벽까지 밤샘작업을 하는 거 같았다. 피곤했던 내가 버티고 버티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쯤 옆자리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잠시 깼었다. 그때 본 시간도 꽤 늦은 새벽이었다. 그래도 할 일을 다 마무리한 건지 오늘은 늦게까지 잠을 잤다. 점심때가 다 된 지금에서야 깬 걸 보니 자도 푹 잔 거 같았다.

 

 

“응? 거기서 뭐해?”

“아 지율이도 방금 깨서. 서율이랑 지율이 보고 있었지.”

 

 

형이 머리에는 까치집을 하고서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하품을 하면서 걸어오는 윤기 형을 보다가 웃었다. 피곤하긴 피곤한가 보네. 그리고는 곧 침대에 누워있는 지율이를 봤다.

 

지율이는 태명인 짹짹이와 어울리지 않게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밥 먹을 때나 뭔가 불편할 때 말고는 잘 울지 않았고 대체로 잠을 많이 잤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자다 깬 지율이가 하품을 했다. 몽롱한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쟤는 뭐 저렇게 생겼냐.”

 

 

형이 자다 깬 지율이의 얼굴을 보고 비웃었다. 그 소리에 나와 서율이가 함께 뒤를 돌아 형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지율이를 돌아봤다. 그런 후에는 서율이와 둘이 얼굴을 맞대며 웃었다. 우리 둘만 키득대며 웃자 형이 질투라도 났는지 우리 사이를 파고들며 왜 웃냐며 투정을 부렸다.

 

 

“아니. 형이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내가? 내가 저렇게 생겼다고?”

“응! 아빠 지율이랑 똑같아! 지율이처럼 생겼어!”

 

 

딸의 발랄한 확인사살에 형도 그냥 웃었다. 근데 정말로 형과 지율이는 똑같이 생겼다. 마치 형을 어릴 때로 돌려서 다시 키우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닮았다. 형의 어머님도 윤기 어릴 때 보는 거 같다며 신기해하실 정도였으니까.

 

 

“지율이 좀 오랜만에 깼네.”

“응. 형이랑 엄청 닮았어. 잠도 많고 조용하고.”

 

 

그래 분명 이때까지는 민지율이 아빠 닮아서 조용했다. 정말로.

 

 

 

**

 

“지율아.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봐.”

“아냐아!”

“아니야. 지율이는 할 수 있어.”

 

“아이고 또 시작이네.”

 

 

지율이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집안이 고요했다. 신생아가 태어난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고요했는데. 지율이가 말을 트고 집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집이 시끌시끌해졌다. 그 소란에 가장 일조한 건 민윤기의 저 애걸복걸하는 목소리였다.

 

 

“지율아. 지율아!”

“형. 또?”

“…응.”

 

 

형의 작업실에 있다가 아빠가 귀찮았는지 오도도 걸어 나온 지율이 뒤로 형이 따라 나왔다. 지율이는 아빠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고, 고개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누나 방으로 향했다. 서율이와 지율이는 사이가 좋았다. 특히 서율이가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가끔 윤기 형이 지율이를 너무 괴롭히는 거 같으면 지율이 앞에 서서 허리에 손을 딱 얹은 채 형을 혼내곤 했다. 좀 더 자란 민서율의 말발을 민윤기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 아들은 너무한 거 같아.”

“쟤가 뭘 안다고 자꾸 그래. 지율이는 귀찮을 수 있지.”

“지민이도 너무해!”

“아이고. 우리 민윤기 씨. 서운했어요?”

 

 

힝, 하는 소리를 낸 채 내 곁으로 온 형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런 형을 다독이면서 웃었다. 형이 이러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민지율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서율이와 지율이 모두 꽤나 영특하게 태어났다. 서율이는 공부에 재능이 뛰어났고 지율이는 음악에 재능이 뛰어났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영특함과 그를 넘어선 천재성을 키워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서율이는 벌써부터 영재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제 겨우 말을 뗀 지율이는 아빠의 곁에서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지율이 비트…. 너무 좋단 말이야.”

“나는 잘 모르겠던데. 그냥 형 아들이라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지민아. 이건 정말이야. 나는 음악에 있어서 그렇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야.”

 

 

대뜸 내 어깨를 붙잡고 말한 형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단호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넘어갈 뻔했는데 순간 형의 과거 행적들이 떠올랐다. 민서율이 노래 한마디만 불러도 천재가 따로 없다며 양팔을 흔들고 열혈팬을 자처하던 민윤기의 모습. 딱히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인 거 같지는 않은데.

 

 

“너 안 믿지?”

“에? 아니야. 내가 형 말을 왜 안 믿어.”

“표정 보면 다 알아. 같이 산 지가 몇 년인데.”

“티 났어?”

“넌 옛날부터 다 티 났어.”

 

 

다시금 몸을 끌어안으며 하는 말에 그저 웃어버렸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게 그거 같지만 형의 말을 빌자면 지율이가 기계 앞에서 아무거나 두드리는 그 비트가 아주 엄청나다고 한다.

 

처음 지율이의 천재성을 알게 된 건 형의 지인이 선물해준 유아용 드럼 때문이었다. 음악 하는 친구의 선물답다고 생각하며 그저 집에 두고 애들이 쓰고 싶을 때 쓰도록 했다. 그런데 그 앞에 조용히 앉은 지율이가 제멋대로 뚱땅거리는 그 소리를 듣고 형이 눈을 엄청 크게 떴었다. 요리하던 중이었는데 하던 것도 멈추고 뒤집개를 든 채 드럼 앞으로 향했었다.

 

지율이는 그저 신이 난 채 드럼을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고 형은 그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가만히 리듬을 탔다. 곧 그 음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낸 형은 기계의 도움을 받은 비트를 다시 들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지율이는 정말 대단한 애야.”

“그렇다고 자꾸 애 괴롭히면 나중에는 아예 드럼 앞에 안 앉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까. 하, 이건 정말 너무 큰 딜레마야.”

“천천히 해요. 천천히. 지율이 아직 어리고 자라면서 많이 배우면 더 나아질 텐데. 왜 그렇게 조급해.”

“다 아까워서 그래. 주옥같고, 진짜 최곤데.”

 

 

형이 괴로운 듯 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런 형을 마저 다독이고 있는데 그 뒤로 서율이의 손을 잡은 지율이가 지나갔다. 다시 형의 작업실로 향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품에 안겨있는 윤기 형의 등을 툭툭 쳤다.

 

 

“형, 형. 지금 애들 작업실 들어간다.”

“…그래?”

 

 

잔뜩 풀이 죽어있던 형이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혹시 자기가 듣고 있는 걸 들키면 다시 나갈까 봐 몰래 문 앞으로 가서 핸드폰만 들었다. 아무래도 녹음을 하는 거 같았다.

 

 

머지않아 방에서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형은 입을 틀어막은 채 그 감격스러운 비트를 핸드폰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서율이와 지율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끝나자마자 형은 핸드폰 녹음을 끝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민서율 민지율 진짜 최고다!”

 

 

___

 

그 뒤로 형은 비트가 안 써져서 힘겨울 때, 잘 안 풀릴 때마다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 지율이를 슬쩍 안아다 드럼 위에 앉히곤 했다. 다른 거 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지율이를 살살 어르고 달래다 잘 안 될 때면 다시 들어서 옮겼다. 그래놓고 가는 곳은 드럼 옆에 있는 형의 음향기기 앞이었다.

 

 

“어휴. 저 형이 정말.”

 

 

나는 그 모습을 퍽 한심하게 봤지만 형은 진지했다. 지율이도 새 음향기기 앞에서는 눈을 반짝였고 손바닥으로 이것저것 눌렀다. 기어코 지율이의 비트를 받아낸 형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근데 저거 지율이한테 저작권료 좀 줘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지율아 좀 더 쳐볼까?”

“아아 저거!”

“지율아. 아빠가 그 비트가 필요해. 쳐주면 안 될까?”

“에휴. 아라써.”

 

 

형은 늘 그런 식으로 지율이에게 비트를 얻어냈다. 말도 잘 못 하는 지율이는 아빠의 회유에 넘어가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며 비트를 몇 개 더 찍어주곤 했다.

 

 

물론 지율이가 좀 더 자라서 돈의 개념을 알게 됐을 때는 고작 고래모양 젤리와 비트를 맞바꿨다는 데에 충격을 받고 아빠를 고소하겠다며 누나와 법전을 찾아보긴 했다.

 

 

 

♥ 결혼 말고 연애

 

 

 

“아이고 옆집 아니여?”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그럼. 애들은 잘 크고?”

“그럼요. 건강하시죠?”

“늙은이 건강이야 뭐. 맨날 똑같지.”

 

 

온 가족이 나가 서율이의 등교를 함께했다. 서율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지율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형과 동네를 좀 걷고 있었다. 크게 한 바퀴를 돌던 중에 옆집 사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우리보다 늦게 이사 오신 분이었는데 워낙 살가우시고 말을 잘 붙이시는 분이라 금세 안면을 텄다.

 

오늘도 반갑게 우리에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네는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유모차에서 곤히 잠든 지율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시더니 우리도 가만히 쳐다봤다.

 

 

“애가 둘이던가?”

“네.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요.”

“딱 좋네. 애들이 너무 예뻐.”

“감사해요.”

“근데 애가 둘이나 되는데 부부 사이가 참 좋아 보여.”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우리를 바라보시는 아주머니를 향해 우리도 웃어 보였다. 잠시 가만히 우리와 지율이를 번갈아 보시더니 뒤이어 말을 꺼냈다.

 

 

“너무 보기 좋은데. 어떻게 하나 더 낳을 생각은 없어?”

 

 

대뜸 나온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뜬 눈을 깜빡거리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말을 어물거리는데 함께 유모차를 끌던 형이 손을 뻗어 내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아주머니께 답했다.

 

 

“아. 우리 지민이 힘들어서 셋째는 안 돼요.”

 

 

형이 꽤 정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아주머니께서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팔꿈치로 형의 옆구리만 쿡쿡 찔렀다.

 

 

“아휴 늙은이가 주책을 다 떨었네.”

“아니에요.”

“그냥 보기 좋아서 한 소리야.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그렇게 웃으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아주머니가 우리 뒤쪽으로 가셨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에도 부끄러움은 여전했다. 내 어깨 위에 얹어진 형의 손의 느낌도 괜히 설렜다. 아주머니 말처럼 벌써 애가 둘인데 이런 거에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우리 지민이 왜 그래?”

“아 좀! 그러지 말아요오.”

“부끄러워서 그래? 우리 지민이?”

“우리 지민이라고 좀!”

“그럼 우리 애기라고 할까?”

“아 혀엉!”

 

 

벌써 애가 둘인, 함께 산 지 꽤 오래된 형과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투탁거리며 사랑싸움을 했다. 아주 나중에서야 잠에서 깬 지율이가 우리의 사랑싸움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는 걸 알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

다음 편 금세 올린다고 했는데 늦어버렸나요?ㅠㅠㅠ

죄송합니다. 마음처럼 일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번 슈짐은 좀 짧은 거 같네요..ㅠㅠ


지난 [뷔민]편에서는 붙이는 말을 주절주절 썼었어요.

호옥시 궁금하시다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육보의 향후 방향에 대해 적어봤는데 잘 지켜질까 벌써 걱정이 되네요.


아육보....가 좀 늦어지고 그러더라도 여전히 절 응원해주실 건가요!

(ㅋㅋㅋㅋㅋ) 괜한 말을 붙여봤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읽어주시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리즈 > 아 육아물 보고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뷔민 <부부싸움은 칼로 널 베기(?)/ DNA>  (2) 2018.05.03
국민  (4) 2018.03.01
뷔민  (12) 2018.02.22
국민  (8) 2018.01.19
슈짐  (2) 2018.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