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슈짐] Take me to the sky

 

 

W.새벽의덕후

 

 

 

번외.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예전엔 나란히 누워있는 걸 꽤 부끄러워하던 지민은 이제 이런 자세에 익숙해진 듯 더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움직였다. 윤기는 자기 팔을 뻗어 지민의 목 뒤에 놨다. 그 팔 위에서 머리를 조금 부빈 지민이 마음에 드는 자세를 찾았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두 사람이 묶는 숙소 너머로 너른 하늘이 보였다. 아무래도 어떤 종류든 하늘을 보기만 하면 두 사람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아저씨가 하늘에서 물은 적 있었지? 여기가 어디냐고.”

“응. 그랬지. 어딘 거 같냐고 네가 되물었잖아.”

“아저씬 천국이라고 대답했고. 난 그런 거겠지, 하고 넘겼었잖아.”

“응. 근데 그건 왜?”

“그때 그렇게 대답했던 거. 사실 진짜 천국 같아서 그랬던 거거든.”

“응?”

“아저씨가 와 줘서. 아저씨를 봐서. 거긴 나한테 천국이 되어 있었어.”

 

 

윤기는 고개만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제 옆에 누워있는 지민의 얼굴이 어스름한 빛을 받고 있었다. 윤기는 지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젠 상처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지민은 잠시 그 손길을 느낀 후에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기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고. 아저씨는. 나에게 아저씬 천국이었어.”

 

 

 

번외. 열아홉, 스물아홉

 

 

“이거 놔아! 내꺼야!”

“거짓말! 넌 나쁜 애야!”

“내가 더 형이니까 이리 줘!”

 

 

골목 안이 시끄러웠다. 답답한 집에서 좀 벗어나고자 이곳저곳 걷던 윤기는 꽤 먼 동네까지 닿아 있었다. 언제 여기까지 왔지. 윤기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렀다. 윤기네 동네와는 판이하게 다른, 깡촌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윤기는 그대로 고개를 빼서 골목 안을 쳐다봤다. 저 안쪽에 어린 애들 몇 명이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하도 어린 애들이라 험악해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한 명을 단체로 못살게 구는 거 같았다.

 

윤기는 잠시 고민했다. 귀찮은데 그냥 지나칠까, 했다. 사실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골목 안으로 던져놨던 시선이 꼬마 애와 맞닿았다. 꼬깃한 종이 같은 걸 뺏기지 않으려고 손 가득 쥐고 있는 게 영 안쓰러웠다. 뭐, 덩치 비슷한 십 대도 아니고 학교도 못 간 꼬맹이들 같은데. 윤기는 머리를 대충 헝클이면서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섰다.

 

 

“야. 너네.”

 

 

확실히 꼬맹이들은 꼬맹이들이었다. 꽤 낮은 윤기의 목소리가 들리자 히익, 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못된 것만 배워서. 왜 친구 괴롭혀.”

“친구 아니거든!”

“친구 아니면 괴롭혀도 돼? 나도 네 친구 아닌데 괴롭혀줄까?”

“아저씨는 어른이잖아!”

“아저씨…. 야, 아저씨는 아니거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꼬맹이들 입에서 나온 아저씨, 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해버렸다. 저 요망한 꼬맹이들을 꼭 혼내주겠노라고. 윤기는 팔까지 걷어붙이고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더 걸었다. 꼬맹이들이 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윤기를 보며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걸음도 몇 걸음 뒤로 물렸지만 작은 꼬맹이가 쥐고 있는 종이를 놓을 생각을 안 했다.

 

 

“그게 뭐야. 이 나쁜 자식들. 나이가 몇 갠데 벌써부터 삥을 뜯어?”

“얘는 거지야! 이거 얘 거 아니라고!”

“네 거 아니야? 꼬맹이. 네가 말해 봐.”

 

 

윤기의 말에 화들짝 놀란 종이를 쥔 꼬마가 축 처진 눈을 하고 윤기를 쳐다봤다. 끔뻑끔뻑 눈을 깜박이니 그 눈에서 눈물이 툭툭 쏟아졌다. 삐죽대는 입술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내 꺼야.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얘 거라는데?”

“거짓말이야!”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가 쟤는 거지랬어! 엄마도 없댔어!”

“확. 혼난다. 진짜. 엄마 없으면 뭐. 엄마 없으면 돈도 없어야 해? 안 가? 경찰 아저씨 부른다!”

 

 

암튼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생각하며 윤기가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발까지 구르며 인상을 쓰자 애들이 으엥, 하며 골목을 뛰쳐나갔다. 부모가 애들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골목을 빠져나가던 애들이 윤기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갑자기 뒤를 돌았다.

 

 

“야! 박지민! 너 두고 봐!”

“맞아! 가만 안 둬!”

“내가 가만 안 둔다. 너네 얘 괴롭히면 진짜 경찰 아저씨 부른다!”

“아저씨 나빠!”

 

 

저것들이 끝까지 아저씨래. 윤기는 한 번 더 울컥하는 마음에 골목을 뛰어가는 망아지 같은 꼬마들을 노려봤다. 이 골목이 익숙한 꼬마들은 요리조리 골목을 쏘다니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꼬마들 목소리까지 안 들리고 나서야 윤기는 고개를 돌려 꼬마를 쳐다봤다. 때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꼬질꼬질한 게 영 관리를 못 받은 거 같았다.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 윤기는 꼬마를 잠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제 할 일은 다 한 거라 생각했다.

 

 

“저기.”

 

 

그때 등을 보인 윤기를 작은 목소리가 붙잡았다. 평소에 귀가 밝지도 않으면서 저 작은 꼬맹이가 하는 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오늘 착한 일 하라고 어디 신이 도와주고 있나. 윤기는 괜히 엄한 하늘만 쳐다봤다. 웬수 같은 하늘. 윤기는 하늘을 쳐다보고 인상을 찌푸린 뒤 그 채로 꼬마를 내려다봤다.

 

 

“고맙습니다.”

 

 

작은 몸뚱이를 꼬물거리며 꼬맹이가 머리를 숙였다. 아직 머리가 몸통만 해서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꼬질꼬질한 손에 들린 천 원짜리 하나가 자꾸 눈에 보였다. 저 천원이 뭐라고. 몸싸움을 하다가 손톱에 긁혔는지 볼엔 할퀴어진 자국도 남아 있었다.

 

 

“괜찮냐.”

 

 

윤기의 말에 꼬마는 대꾸가 없었다. 대신 고개만 두어 번 끄덕거렸다. 자꾸 미련처럼 달라붙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냈다.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져서 얼른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 윤기를 다시금 붙잡아 세운 건 꼬마의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꼬르륵. 꼬마의 목소리보다도 크게 골목을 울리는 소리에 윤기가 작게 한탄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꼬마를 돌아봤다.

 

 

“…여기 있을래, 따라 올래.”

 

 

윤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잠깐 생각하던 꼬마는 골목 뒤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윤기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그 짧은 다리를 몇 번 움직여 윤기 뒤에 가까이 붙어 섰다. 그 작은 움직임이 퍽 귀엽기도 해서 윤기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뒤에 붙은 꼬마를 흘깃대면서 윤기는 가까이 있는 슈퍼로 향했다.

 

 

“뭐 좋아해. 초코빵?”

 

 

윤기의 말에 꼬마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윤기는 눈에 보이는 초코빵과 다른 빵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걸 계산대에 올려두고 잠시만요, 하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다시금 꼬마에게 손짓을 했다. 꼬마는 윤기의 말을 퍽 잘 들었다. 쫄쫄거리며 윤기의 뒤를 바짝 따라왔다. 음료수가 가득한 냉장고 앞에 가만히 섰다.

 

 

“우유 먹어?”

 

 

도리도리.

 

 

“우유 안 먹으니까 키가 안 크는 거야. 형아 봐. 키 엄청 크지?”

 

 

끄덕끄덕.

 

 

“형처럼 키 크려면 우유 먹어야 해. 아, 아니다. 우유 먹으면 배 아프냐?”

 

 

끄덕끄덕.

 

 

“그럼 우유 먹지 말고. 어, 일단 물이랑. 또 뭐 좋아해.”

 

 

윤기의 말에 가만히 냉장고를 쳐다보던 꼬마가 손가락을 쭉 뻗었다. 노란 오렌지 주스가 담긴 병을 고르는 거 같았다. 윤기가 냉장고를 열어 이거? 하며 묻자 꼬마가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보다 좀 더 센 고갯짓이었다. 좋아하나 보네. 윤기는 먹기 좋은 작은 병 하나와 많이 담겨있는 큰 병 하나를 꺼냈다. 그러다 꼬마의 몸짓을 다시 쳐다보고 큰 병을 넣어두고 작은 병 세 개를 꺼냈다.

 

계산대 위에 음료수까지 돈을 건넨 윤기는 거스름돈과 검은 봉지를 손에 받았다. 꼬마는 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윤기를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윤기는 슈퍼 앞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꼬마도 윤기를 곧잘 따라 했다. 엉덩이를 꼬물대며 평상 위에 올라앉는 걸 본 윤기는 웃으며 봉지에서 빵과 물을 꺼내줬다.

 

 

“지금은 이거 먹어. 배고프면 나중에 이것들도 먹고. 알겠어?”

 

 

끄덕끄덕.

 

 

“그럴 땐 소리 내서 대답하는 거야. 대답.”

“…네.”

“목소리 예쁘네.”

 

 

윤기의 말에 빵을 씹으며 땅을 쳐다보던 꼬마가 다시 윤기를 쳐다봤다. 깜빡깜빡. 저 눈빛 때문이었다. 지금 이 평상 위에 앉아서 빵 봉다리를 들고 있는 게. 윤기는 제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쳐다보다가 꼬마를 쳐다봤다. 빵을 먹으면서도 천 원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천 원은 왜.”

 

 

우물거리며 빵을 잘만 먹던 녀석이 입에서 빵을 떼어냈다. 행여 목이 마른가 싶어 윤기는 곧장 물을 따서 꼬마에게 내밀었다. 꼬마는 도리질을 했다. 뚜껑을 세지 않게 닫은 윤기는 음료수가 담긴 봉지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봉지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 뚜껑을 하나하나 땄다. 아무래도 꼬마 혼자선 못 열 거 같았다. 꼴을 보아하니 집에서 이런 뚜껑 하나 따줄 사람이 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 마지막 한 병이 잘 따지지 않아 애쓰고 있는데 꼬마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또. 저 개미 똥구멍만 한 목소리가 귀에 우렁차게 들렸다.

 

 

“…엄마. 찾으러 갈 거예요.”

“엄마?”

“네.”

“혼자서?”

 

 

끄덕끄덕.

 

 

“어디로 가야 하는데.”

 

 

윤기의 말에 꼬마가 대꾸 없이 윤기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엄마를 찾아 나선 거 같았다. 천 원은 어디서 난 걸까. 괜한 게 다 궁금해졌다.

 

 

“엄마 찾으려면 조금 더 큰 다음에 가. 돈도 좀 더 모으고.”

 

 

그렇게 말하며 꼬마를 돌아보니 어느새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괜히 애를 울린 거 같아 뜨끔해진 윤기가 평상 뒤로 기대놨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 소매로 뚝뚝 흘리는 눈물을 닦아줬다. 하얀 맨투맨 티에 때가 묻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진 않았다.

 

 

“야아. 미안해.”

“엄마 못 찾아요? 이거, 이거 아낀 건데….”

 

 

손에 쥔 꼬깃한 천원을 다시금 꼼지락대며 입술을 비죽였다. 암만 닦아줘도 눈물이 쉽게 멎을 거 같지 않았다. 윤기는 아예 꼬마의 얼굴을 붙잡고 눈물을 닦아줬다. 꼬마는 코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못 찾는 게 아니라. 아직은 어려서 그래.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어른 되면 그때 가.”

“몇 살에요?”

“너 지금 몇 살인데.”

“이거.”

 

 

꼬마가 윤기 앞으로 손바닥을 쫙 펴 보였다. 다섯 살? 그렇게 묻자 꼬마가 끄덕거리다가 곧장 네, 하고 대답했다. 똑똑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형아 나이 되면. 그때 가.”

“형아 몇 살인데?”

“이게 바로 말 놓네. 뭐, 암튼. 형아는 열아홉.”

“어?”

“열아홉. 열아홉이라는 숫자가 있어. 뭐, 딱히 어른은 아닌데. 엄마 찾아갈 정도는 돼.”

 

 

꼬마는 제 손을 쭉 펴며 저 나름대로 열아홉을 계산하는 거 같았다. 그 꼬물거리는 손이 귀여워 흘깃 보며 웃은 뒤에 윤기는 다시 평상 위로 팔을 받쳐두고 편히 기댔다. 열아홉, 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귀여웠다. 저렇게 열심히 외워봤자 금세 기억도 못 하겠지만.

 

 

“그리고 아까 걔들이 다시 달려들면 당당하게 소리쳐.”

“에?”

“싫어! 하지 마! 나는 싫어! 이렇게 해.”

“그치만….”

“말이라도 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

 

 

괜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은 윤기는 꼬마를 슬쩍 쳐다봤다. 작은 머리통으로 이것저것 집어넣느라 바빠 보였다. 윤기는 다시금 그 머리에 제 손을 얹어 쓰다듬은 뒤에 몸을 일으켰다. 윤기는 꼬마의 집 근처까지 검은 봉지를 배달해 준 다음에야 제집으로 돌아갔다. 꼬마는 제집 문 앞에서 윤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윤기도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다가 꼬마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잘 커라. 건강하게. 그런 기원을 하며 오래 비워둔 제 집으로 향했다.

 

 

 

**

드디어 조종사가 됐다며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조종사가 된 지는 오래였지만 조종사가 되고 나서 친구들을 만난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뒤늦은 축하 파티가 열렸다. 조종사 따위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며 윤기는 술자리를 거부했지만, 친구들이 억지로 끌어다 앉혔다. 제 꿈을 이룬 게 아니라 영 찝찝했던 윤기는 그저, 어쨌든 꿈을 이루긴 했으니 그 부분만 축하해주기로 했다. 친구들이 하도 축하주를 먹이는 탓에 금세 취한 윤기가 바람이나 좀 쐬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친구가 한 대 피워보라며 권했던 담배를 그냥 받아 둘걸, 하며 후회하던 찰나였다.

 

 

“싫어! 싫다고!”

“하, 이 새끼 봐라. 야. 봐주니까 만만해? 우리가 이제 만만하지?”

“싫다고 했잖아. 하지 마!”

“야. 니네 형이 너 따먹는다는 소리가 동네에 파다해. 모를 줄 아냐? 천재 소리 듣던 너네 형, 대학 떨어졌다며.”

“하지 말랬어.”

“대학 떨어진 천재 형이 따먹은 박지민, 나도 좀 따먹어 보자. 어? 지민아. 뒤 좀 대봐.”

 

 

술을 깨려고 나왔다고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순식간에 술이 깰 줄은 몰랐다. 건물 뒤쪽에서 나는 소리가 영 거슬렸다.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지만 술이 좀 들어가 용기는 어느 정도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리가 정말 저급했다. 에씨, 윤기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박지민. 뭘 꼴아. 꼴에 자존심만 존나 세서. 너 진짜 뒤지고 싶,”

“후장 따이고 싶냐.”

“뭐야.”

“뭐긴 뭐야. 어디서 따먹네 마네 소리를 쉽게 해. 새끼들이.”

“아저씨 뭔데.”

“뭐겠냐. 지나가던 아저씨지.”

 

 

다행히 건물 뒤쪽엔 중학생 세 명밖에 없었다. 사실 뒤쪽으로 걸어오면서도 패거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술집에 있는 친구 번호를 휴대폰에 찍어놓은 상태였다. 여차하면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를 생각이었다. 윤기가 그쪽으로 다가가자 담배를 물고 있던 녀석 하나가 꽤 폼을 잡으며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가만히 그 행동을 지켜보다가 중딩 하나랑 눈이 마주쳤다. 따먹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제일 많이 한 녀석이었다.

 

 

“아저씨 뭔데. 지나가시는 길이시면 그냥 계속 가세요.”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서.”

“뭐가.”

“너네 요 앞에 있는 중학교네? 거기 학주가 여기서 술 마시는데.”

“뭔 소리야.”

“이 아저씨 친구가 너네 학교 학주라고 새끼들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 중 하나가 그 학교 선생인 건 맞았다. 물론 학주는 아니었다. 학주라고 거짓말한 건 그래야 저 녀석들이 겁을 좀 먹을 거 같아서였다. 암만 가오를 잡는다고 해도 중딩은 중딩이었다. 스물아홉이나 먹은 늙은이의 뻔뻔한 뻥에 보기 좋게 넘어가고 있었다.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는 게 보였다.

 

 

“내가 지금 핸드폰에 걔 번호 띄워놨거든? 누를까?”

“아, 시발!”

“얻다 대고 욕질이야. 내가 너희 얼굴 다 봤거든? 당장 내일 학교 찾아가서 얼굴 하나하나 짚어 낼까?”

“아 진짜! 아저씨 뭔데! 뭐 정의의 사도라도 돼?”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새끼야. 지금 당장 꺼질래, 아님 바로 학주 부를까.”

“씨발. 박지민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야, 가자.”

“새끼가 끝까지 아가리를 털어. 얼른 썩 꺼져.”

 

 

윤기의 학주 구라에 제대로 넘어간 녀석들이 그나마 마지막 남은 허세를 부리겠다고 바닥에 가래침을 탁탁 뱉으며 다른 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윤기는 그 녀석들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구석에 서 있는 다른 남자애에게 다가갔다. 몇 대 맞았는지 얼굴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괜찮냐.”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윤기를 빤히 보더니 녀석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녀석이 하도 어두운 구석에 있어서 윤기는 그 얼굴을 잘 보진 못했다. 다시 한 번 괜찮냐고 묻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네, 하고 대답했다.

 

 

“괜찮으면 됐다. 그래도 용감하네. 싫다고 분명하게 말도 하고.”

“…말해야. 아니까요.”

“똑똑하네. 잘했어.”

 

 

윤기가 조금 더 녀석에게로 다가가려고 할 때, 저쪽에서 뭐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거 되게 안 들리네. 저쪽의 소음엔 신경 끄고 눈앞의 녀석에게 뭐라 말하려고 할 때, 다시 소음이 들렸다. 이번엔 꽤 가까웠다.

 

 

“야, 민윤기! 이 새끼 어디로 튀었어. 야! 계산 다 했어! 나와 새끼야! 민윤기!”

“어어, 나 여깄어!”

 

 

윤기의 외침을 듣고 친구 몇이 건물 뒤쪽으로 왔다. 얼큰하게 취한 친구들은 줄곧 민윤기 새끼 졸라 약았다며 욕을 해대고 있었다.

 

 

“와, 이 새끼 비행기 타고 하늘로 나른 줄 알았네.”

“나도. 구름 속 뒤질 뻔했다. 암튼 민윤기 존나 약았어.”

“근데 너 왜 여기 있냐.”

“빨리도 묻는다. 니네 학교 애들 관리 좀 잘해. 암튼 학교 폭력 그렇게 말이 많은데 선생 새끼들이 관심은 하나도 없지.”

 

 

느닷없는 윤기의 핀잔에 이제 막 교사 딱지를 단 친구 하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윤기 옆에 있는 자기 학교 교복을 발견했지만, 꽤 취한 탓에 자꾸 인상만 썼다. 윤기는 인상을 쓰며 학생 가까이 달라붙는 녀석의 이마를 밀쳐냈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뭉친 이들을 에둘렀다. 윤기의 친구 놈이 그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집에 얼른얼른 들어가! 임마. 내가 낼 찾기 전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기는 친구의 뒤통수를 세게 쳤다. 억울함 가득한 표정으로 윤기를 쳐다봤지만, 윤기는 떠나는 학생을 보느라 친구에겐 관심이 없었다. 가만히 잠시 걸음을 멈춘 학생을 보다가 제 친구가 했던 것처럼 소리쳤다.

 

 

“집 안 가도 돼. 너 가고 싶은 데로 가. 집이 대수냐. 안전하기만 하면 돼. 다치지 마라. 그 새끼들 또 나대지 못하게 내가 학교에 얘기해 놓을게. 조심히 가라.”

 

 

윤기의 말에 대충 몸을 틀어서 고개를 숙인 녀석이 재빠르게 건물 밖으로 나섰다. 저렇게 빠르면 도망이라도 가지, 했다가 말았다. 어차피 도망가도 다음날 학교에서 마주칠 거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괜히 더 열 받아 그 학교 초임 교사인 친구 놈을 한 대 더 팼다.

 

 

“왜!”

“잘하라고 새끼야.”

“아, 민윤기. 진짜.”

 

 

윤기는 그 친구를 내버려 둔 채 건물 앞으로 나왔다. 어느 길로 사라졌는지 그 꼬마는 보이지 않았다. 잘 갔겠지. 괜히 주위를 더 둘러보는데 취한 친구 놈 몇이 윤기 옆에 서더니 윤기를 잡아끌었다. 2차를 가자는 거였다. 어차피 내일 윤기는 휴가였다. 될 대로 되라며 친구들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몇 번 주위를 둘러보긴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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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이 났네요. 지금까지 Take me to the sky 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를 통해서 알려드리고 싶었던 건, '왜 지민은 단 한 번도 윤기의 이름을 묻지 않았나?'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물론 궁금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ㅎ 늘 궁금한 게 많던 지민이 제 이름을 알려줘 놓고도 윤기의 이름은 묻질 않았죠.

제 나름 서툴게 깔아놨던 인연에 대한 복선이었는데. 잘 와닿았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참 직설적이고 에둘러 표현하지 못했던 Take me to the sky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다른 글들도 편히 쓸 수 있겠어요!

못 푼 떡밥도 있는 거 같고,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칭찬해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하늘을 나는 듯 자유로운 삶을 사시길 바라요!


조만간 다른 글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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