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슈짐] Take me to the sky

 

 

W.새벽의덕후

 

 

4.

 

깜깜하고 숨 막히는 땅 밑에 한껏 웅크리고 있는 씨앗들은 언젠가 반드시 저 어느 곳을 향해 고개를 들고 싹을 틔운다고 한다. 나도 그럴까. 늘 깜깜하고 숨 막히는 땅 밑에 살며 한껏 몸을 웅크리고 살고 있는 나도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잔뜩 웅크린 몸을 하고 나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웅크린 채 예쁘게 피워내길 바라며 내가 바라봤던 내 몸뚱이에는 채 닦이지 못한 핏망울이 맺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도 나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우스운 고민을 했었다.

 

나는, 씨앗이긴 했을까. 어두운 땅 밑에서 지내다 보니 나는 나 스스로를 꽃 피우는 씨앗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땅 밑에 처박힌, 썩지도 않는 쓰레기일 뿐이었는데. 내 몸에 매달린 핏망울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전에 전부 터져버리는 걸 보면서도 나는 늘 싹 틔우고 꽃을 피우기를, 멍청하게 바라기만 했었다. 하긴 만일 내가 씨앗이라 하더라도 나는 싹을 틔우지 못했을 거다. 내가 뚫고 나가야 할 저 위는 시멘트로 만든, 오래된 콘크리트였는데. 나에겐 그 벽을 뚫고 나갈 힘이 없는데.

 

 

 

_

 

“야! 씨발 박지민!”

 

 

형은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똑똑했고, 달동네에 살면서도 늘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예전엔 신문인지, 뉴스인지 하는 곳에서 형을 인터뷰하러 오기까지 했다. 형은 밖에선 언제나 반듯한 천재 행세를 했지만, 집 안에서는 달랐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을 얼굴에 그려놓고 이 좁아터진, 땅 밑으로 파인 집이 싫다고 욕을 했다. 뱉은 말과 어울리게 형은 집에 잘 붙어있지 않았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런 형이 집에서 공부하게 되는 날이면 나는 꼭 밖으로 나갔다. 나가지 않으면 형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다 낡아 많이 찢어진 만화책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아도 마른 침만 삼켰지 냉장고 쪽으로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형은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시끄럽다며 날 향해 손을 올렸다. 아주 어릴 땐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형이 그랬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냥 형은 기분이 나빴을 뿐이었다. 몇 번 맞고 나서야 나는 형을 피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법을 배웠다.

 

 

“존나 이 씨발. 이 시궁창 같은 집. 존나 시궁창 같아서 못 살아 먹겠네. 아, 씨발. 진짜.”

 

 

형의 입버릇은 시궁창 같아, 라는 말이었다. 매일 시궁창 같다는 소리를 내뱉는 형에게선 정말 시궁창 냄새가 났다. 매일 시궁창이란 단어를 말해서 그런 거라고 나는 짐짓 짐작만 했다. 난 형에게서만 시궁창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매일같이 듣던 나에게도 어느새 시궁창 냄새가 배어있었다. 냄새나는 몸뚱이를 달고 있는 내 주위론 언제나 사람이 없었다.

 

 

 

 

“야야, 정했어?”

“아니 아직. 그냥 남들 다 가는 데로 가야지 뭐.”

“그치? 집에서 가까운 데가 낫겠지?”

“병신들. 다 거기서 거기야 멍청이들아.”

“뭐래, 이 병신이.”

“새끼야 너는 존나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데 걸려라.”

“이 망할 새끼가.”

 

 

고등학교 지망을 앞두고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너는 어느 곳으로 갈 거니, 우린 어디로 가게 될까, 하는 말을 떠들어댈 때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삼이나 오가 될 수 없었다. 삐죽 튀어나온 모난 송곳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도 나를 끼워주지 않았고, 죄다 날 피해 다녔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틈으로 끼어들 수 없었다. 내가 얹을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의무교육이 아니었기에 돈을 내야만 배울 수 있는 고등교육 같은 건 탐낼 수 없었다. 남들은 다 얼마의 돈을 내고 배우는 그것을 나는 배울 수 없었다.

 

나란 애가 원래 그랬다. 남들 다 하는 건 할 수 없었다. 난, 남다른 아이였으니까. 남다르다는 말이 이렇게 쓰이는 거라면, 나는 좀 더 평범한 아이이기를 진작부터 꿈꿨을지도 모른다.

 

 

 

 

“지민아.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네.”

 

 

남다르긴 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랬던 내가 선생님의 눈에 띄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다. 늘 어둑한 색의 옷을 입고 다니던 내가 조금 밝은 색의 옷을 입고 다녔을 때였다.

 

어둑한 색을 입고 다녔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때가 타도 티가 작게 난다는 거였다. 하얀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내가 스스로 빨래의 필요성을 깨닫고 빨래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내 옷을 빨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다녔던 언젠가, 사람들이 내 주위를 지나다닐 때마다 코를 쥐고 막는 걸 보면서도 나에게서 냄새난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쟤 냄새나!”

“쟤는 어제도 저랬는데!”

“옛날에도 그랬어!”

 

 

내 주위에서 어떤 아이가 손가락질을 했고, 유행처럼 번지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제야 내가 냄새난다는 걸 깨달았다. 옷을 빨지 못해서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스쳤던 단어가 시궁창이었다. 아, 나에게도 형과 같은 시궁창 냄새가 나는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줄곧 웅크리고 다녔다. 혹시나 냄새가 덜 날까 싶어서.

 

 

어둑한 색의 옷을 입었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그건 피 때문이었다. 형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때렸다. 맨손으로 때리기도 했고, 도구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형이 나를 때리고 나면 꼭 흔적이 남았다. 밝은 옷에 남은 핏자국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티가 너무 잘 났던 거다. 티가 나서는 안 됐다. 형은 이 가난한 달동네의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 문제가 있는 집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됐다. 아빠는 내가 형에게 맞고 난 다음이면 늘 당부했다.

 

 

“이건 형이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그렇지?”

 

 

그때의 나는 아빠의 눈빛이 무서웠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다.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말할 때면 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티를 내지 않고 살던 중, 미처 세탁하지 못한 옷의 핏자국과 목덜미의 상처를 담임선생님이 발견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지민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혹시 문제가 있는 거면 선생님한테 말해줘. 응?”

“아니에요. 선생님. 저 가봐야 해요.”

 

 

나름 영리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음 날 학교엔 아빠가 와 있었다. 선생님이 아빠를 부른 것이었다. 선생님의 부름에 온화한 표정을 한 아빠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때도 나는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저. 아버님. 아이 몸에 상처도 그렇고. 옷에는 피도 묻어 있어서요. 혹시 가정에 무슨 문제라도.”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이 녀석이 워낙 칠칠치 못해서 여기저기 잘 뛰어다니고 그러다 넘어지고 그래요. 그래도 다치면서 크는 게 건강한 거라고. 크게 아프거나 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버님. 그래도 아이가.”

“괜찮습니다. 선생님. 괜찮아요.”

 

 

난 한 번도 괜찮다고 한 적이 없는데 아빠는 줄곧 괜찮다고 했다. 아빠는 늘 그랬다. 형이 다 쓰러져가는 집안을 일으켜줄 거라며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그래서 형이 내 목에 낡은 선풍기 줄을 감고 목을 조를 때도 모른 척 등을 돌렸다. 아빠를 향해 손을 뻗어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졸린 목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빠는 분명 형이 내 목을 조르는 걸 봤으면서 등을 보였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등을 보이고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온 아빠의 손에는 형을 위한 간식이 들려 있었다. 쌀통에 쌀이 채워져 있어 본 적이 없던 우리 집에서 형은 늘 모든 끼니와 간식까지 챙겨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사 들고 온 간식을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집안을 일으켜 줄 형만을 위한 것이었다.

 

 

 

_

 

“씨발. 니가 대학 나왔으면 다야? 니가 하는 게 뭔데. 할 줄 아는 게 뭔데! 이 씨발. 아는 게 있긴 하냐? 생각을 하면서 살긴 해?”

“미안해. 미안해 아들. 아빠가 다시, 다시 꼭 구해볼게. 들어가서 공부해. 어?”

“공부, 공부! 씨발. 내가 공부 안 했어? 못 했냐고! 존나 너까지 왜 공부하라고 지랄인데, 지랄이!”

“지훈아. 아빠가 미안해. 다 미안해.”

“좆같아. 능력도 없고 씨발.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좀 벌던가!”

“그럴게. 지훈아 아빠가 그렇게 할게. 미안해.”

 

 

그때 알았다. 아빠는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다. 대학까지 나온 아빠는 전자사전을 구하지 못해서 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종종 그랬다. 형이 바라는 것을 구해오지 못하면 아빠는 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음엔 ‘아빠’라는 말까진 하던 형은 어느 날부터 그 말을 까먹은 거 같았다.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해서, 또 꼬부라진 말을 공부하느라 알고 있는 단어를 까먹었나보다고 생각했다. 형은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아빠를 보다가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나를 발로 걷어차고는 밖으로 나갔다. 형에게 걷어차인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빠는 형의 뒤를 따라 나갔다. 나는 그때도 아빠의 등을 봤다.

 

형은 저렇게 화가 난 채로 늘 공부하러 갔다. 형도 아빠처럼 이 찢어질 듯한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걸까.

 

 

 

-

“다 좆같아. 씨발! 아 존나 좆같다고! 이 씨발! 이 시궁창 같은, 씨발 시궁창 같은 집구석! 존나 여기서 사니까 내 인생이 시궁창 같은 거야. 아, 박지민. 죽자. 어? 죽자고.”

“형. 형 왜 그래. 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지민아. 박지민아아. 넌 네가 잘못해서 맞는 줄 알지? 존나 입버릇이야. 사내새끼가. 뭐 맨날 잘못했대. 아, 잘못했지. 이 집구석에서 태어난 거.”

“미안해. 미안해 형. 잘못했어. 태어나서 미안해. 미안해.”

 

 

형은 다리미를 손에 들고 있었다. 늘 아빠가 형의 옷을 다리는데 썼던 다리미는 종종 형이 나를 때릴 때 쓰이곤 했다. 다리미로 맞으면 아팠다. 전에는 아빠가 형의 옷을 다리고 난 후 식지 않은 다리미로 맞은 적도 있었다. 그때 잔뜩 일그러진 살은 다리미로 펼 수 없었다. 형의 손에 들린 다리미가 무서워서 나는 손을 모아 빌었다. 몸이 달달 떨려서 손을 비비지 않아도 비비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빌었다. 열심히 빌었다. 형의 눈빛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래. 왜 태어났어. 왜 그랬어 지민아. 돈도 없는 이 씨발 같은 집구석에 왜 태어났어. 엄마는 도망을 가, 아빠는 돈을 못 벌어. 씨이발. 대학에 합격하면 뭐해. 입학할 돈이 없대. 내라는 돈을 씨발 한 푼도. 단 한 푼도 못 내! 입학 취소? 씨발. 내가 어떻게 들어간 학굔데! 어떻게! 내가! 죽자. 죽자고. 응? 살아서 뭐할래. 지민아. 죽자. 이런 세상 살아서 뭐할 건데!”

 

 

살아서 무엇을 할지 계속 물으면서도 형은 내 대답을 듣진 않았다. 나를 집어던지기도 했고, 나에게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형이 다리미를 집어 들기 전에는 책을 집어 들었다. 형이 칼로 벅벅 긁어서 좁은 바닥에 뿌려놓은 것들 중 덜 찢긴 책이었다. 그걸 나에게 집어 던졌고 정확히 머리에 부딪혔다. 형에게 한참 맞느라 땀이 많이 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빨간 걸 보고 나서야 내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조금 맞으면 끝나던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형이 몸을 숙였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칼을 쥐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등이 서늘해졌다. 저걸로는 맞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형이 몸을 돌린 순간 나는 문을 향해 뛰었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시야를 가렸지만 그래도 달렸다. 집을 나오면서 바닥에 깨진 유리를 밟는 바람에 발바닥이 아팠지만 그래도 달렸다. 뒤에서 형이 쫓아오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슬쩍 돌아볼 때마다 형이 가까워져 있는 거 같았다. 두려웠다. 어느새 계단의 끝이 보였다. 다시 뒤를 돌아봤다. 형의 손엔 여전히 칼이 들려 있었다. 그런 형을 돌아본 채로 달렸다. 그러다 순식간에 몸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은 둥그러니 뭉쳐져 있는 게 예뻤다. 조금 더 위로 떠오르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몸은 바닥에 달라 붙어있는 시궁창에 더 어울리는 듯 잽싸게 밑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

 

“그땐 내 아들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천재네, 천재네 하는 말이 듣기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죠. 아이가 워낙 똑똑하긴 했어요. 천재는 아니어도 영재 정도는 되었을 거예요.”

 

 

윤기는 병실 앞 의자에 앉아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윤기의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지민은 만나보지 못한, 그의 어머니였다.

 

 

 

_

 

깨어나자마자 쇼크를 일으킨 윤기는 몇 시간이 흘러서야 깼다. 행여 자신이 본 게 꿈일까 봐 윤기는 눈을 뜨고 곧장 옆 침대를 쳐다봤다. 그곳엔 역시나 지민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본 지민은 한눈에 알아봤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검은색 머리에 통통하긴커녕 많이 말라 날렵한 볼, 그리고 손과 발에 가득 차 있는 상처들. 구름 위에서 했던 지민의 말이 영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부 다르게 만들었다는 말. 구름 위의 지민은 자기 자신마저 바라는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윤기야. 왜 그래. 응?”

“지민아. 지민아. 지민아….”

“네가 이 애를 어떻게. 윤기야. 정신 좀 차려 봐. 응?”

 

 

병원의 연락을 받고 근처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던 윤기의 어머니는 곧장 병실로 돌아왔다. 진정제를 투약 받아 잠시 잠들었다는 윤기가 또다시 깨지 않을까 걱정스레 바라봤다. 그런데 이번엔 깨자마자 다른 이름을 중얼거리는 제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늘 말을 잘 듣고, 부모의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던 아들이었다. 부모의 말을 거스른 적도 없었다. 그랬던 아들이 석 달 전, 죽기 직전의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다. 비행기 사고라고 했다. 타국의 영역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사고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남은 사람이 몇 없었다. 대부분이 즉사했다. 윤기와 같이 운이 좋은 몇 사람들만 시체가 아닌 상태로 입국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한 달 동안 기다렸던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고 했다. 부러지고, 멍들고, 찢긴 상처를 보면서 부모는 울었다. 아들이 더 이상 비행기 조종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선고를 들었다.

 

 

“지민아. 네가 왜…. 네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어….”

“윤기야. 윤기.”

“…무슨 일이시죠?”

 

 

피멍이 빠지지 않은 지민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그런 아들을 쳐다보며 그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마음 아파했다. 언제나 멀쩡했던 제 아들이 몇 달을 혼수상태로 있더니 정신을 그만 놓아버린 거 같았다. 대체 옆 침대 환자는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깨자마자 그 애를 붙잡고 서럽게도 울었다. 엄마인 자신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부러진 팔로 옆 환자 위에 엎어져서 울었다. 그러고 있을 때 그 환자의 보호자가 왔다. 그쪽도 환자의 어머니였다.

 

 

“저희 아이에게 왜?”

 

 

그때 윤기는 지민이 얼굴도 모른다고 했던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지민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_

 

그 날 이후 윤기는 지민의 어머니와 줄곧 이야기를 나눴다. 지민과의 사이는 그저 지민이 사고 나기 전 본 적이 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이혼한 지 오래라는 그의 어머니는 이미 새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곧장 병원에 찾아왔고 지민의 상태를 보고 기함했다고 한다.

 

 

“난. 그래도 믿었어요. 내가 나가면 되겠지. 그 애, 지훈이가 사납게 변해서 누군가를 해치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젖먹이이던 지민이를 떼 놓은 건. 그래, 핑계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전 남편이 그래 달라고 했어요. 똑똑한 지훈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크면 좋을 거라고. 잘 키우겠다고.”

 

 

지민이를 닮은 얼굴이 울었다. 윤기는 닦을 게 없나 둘러봤지만 환자복에 들어있는 건 없었다. 지민의 어머니는 상관없는 듯 조금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울면서도 종종 웃는 얼굴이 지민과 정말 많이 닮았었다. 나이 든 얼굴을 보면서 자꾸 지민의 생각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내 이기심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때 난 고작, 스물 대여섯 살이었으니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거였을 수도 있어요. 네 살 난 아들이 무서워서 도망치고, 갓난쟁이 아들을 두고 떠났던 건 분명 이기심 때문이었겠죠.”

 

 

윤기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번엔 지민의 어머니도 말이 없었다. 옛 생각이 났는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얼굴이 일그러졌고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입을 틀어막으며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윤기는 병실 앞 의자에 기대듯이 몸을 뉘었다. 윤기의 눈가도 촉촉했다. 지민의 과거를 들었다.

 

형의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지민의 형은 서울대에 집착했다고 한다. 수 차례의 낙방 끝에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 대학에 넣을 입학금이 없어서 합격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 길로 폭주한 그의 형은 흉기를 들고 지민을 쫓았고, 그걸 피하다가 지민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윤기가 비행기 사고가 났던 그 날.

 

 

“지민아.”

 

 

버릇처럼 지민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불렀다.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눈을 감아버렸다. 지민의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주식 중독이었다고 했다. 대학까지 나온 수재였지만 귀가 얇고 자기주장이 별로 없는 탓에 주변 사람들의 입김에 잘 휘둘렸다고 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도,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다니며 벌어둔 돈도 주식과 투자로 전부 날렸다고 했다. 일확천금의 기회만을 노리던 사람이었고, 그의 마지막 투자처는 자신의 큰아들이었다.

 

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마냥 제 큰아들을 대했고, 모든 것을 용인했다고 한다. 학대에 눈감고 자신이 만들어낸 가난에서 자신을 구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구원을 바라면서 지민이 바라는 구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윤기는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링거를 꽂아 둔 팔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속으로 대고 있었다.

 

사고 직후 큰아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며칠 뒤 근처 개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민의 아버지는 지민의 병실보다 큰아들의 영안실에 먼저 닿았다. 그 사실을 안 지민의 어머니가 병실을 찾은 그의 전남편에게 다시는 발길조차 얼씬하지 말라고 악을 쓰고 쫓아냈다고 한다.

 

윤기는 링거를 꽂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온몸이 하얗게 빛나던 지민이었는데. 현실에서의 지민의 몸은 멍투성이였다. 까끌한 입술을 혀로 축인 다음 문을 밀었다. 눈에 죄다 찢긴 지민의 발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이래서, 지민이는 오고 싶지 않아 했구나.

 

 

“저렇게 오래 누워있을 게 아니랬는데.”

“아. 어머님.”

“의사 말로는 그래요. 다행히 부딪친 머리는 수술도 잘 끝났고, 경과도 좋다고. 깨어나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고.”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걸음을 옮기더니 지민의 이불을 정리해주었다. 덥수룩한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보조 의자에 앉는 모습을 윤기가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돌려 지민을 쳐다봤다. 많이 아물긴 했지만 여전히 흉터가 남아있는 얼굴의 상처들에 다시 마음이 미어졌다.

 

윤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링거를 걸어둔 거치대의 바퀴가 시끄럽게 끌렸다. 혹시나 이 소리를 들으면 시끄럽다고 깨어나 주지 않을까, 그 위에서처럼 ‘아저씨!’ 하고 타박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금 눈앞이 흐려졌다. 전엔 지민을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는데, 이젠 지민을 보고 있지 않아도 눈물이 찼다.

 

 

 

*

 

깨어난 윤기는 꽤 빠른 속도로 회복했고 퇴원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을 나서면서도 윤기는 줄곧 지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병실을 찾았다.

 

 

“왜 또 오셨어요.”

“제가 지민이한테 빚진 게 많아서요. 이 녀석 꼭 깨야 하는데.”

“기다려주는 사람이 또 생겼으니, 깨어나겠죠. 우리 지민이. 저, 근데.”

“네?”

“혹시, 우리 애 병원비.”

“아.”

 

 

약간 손을 뻗어가며 윤기의 시선을 끈 지민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한참이나 지민을 바라보던 윤기가 몸을 일으켜 그의 어머니를 마주했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눈을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실 밖에서 지민의 어머니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현재 남편에게 하는 통화 같았다. 현 남편은 그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돈을 좀 더 줄 수 없냐는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거절당한 거 같았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가 꽤 컸다.

 

퇴원하면서 윤기는 지민이 밀린 병원비까지 모조리 내버렸다. 윤기의 집안은 두 사람의 병원비를 모두 내고도 가난해지지 않았다. 윤기도 조종사로 일하면서 벌어놓은 돈이 많았다. 통장에 제법 액수가 되는 돈이 들어있다는 걸, 윤기는 깨어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쨌든, 윤기가 병원비를 냈다는 걸 이제 안 모양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 녀석에게 빚진 게 정말 많습니다. 앞으로도 병원비는 제 쪽에서 부담할게요.”

“아니, 안 그러셔도.”

“이래도 저는 다 못 갚아요. 지민이한테.”

 

 

지민을 빤히 보고 있는 윤기를 쳐다보다가 그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기는 보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거친 손을 붙잡았다.

 

 

“돌아와. 지민아.”

 

 

두 손으로 꼭 붙잡아 올린 손을 이마에 댔다가, 입술에 대었다. 닿은 얼굴이 다 따가운 느낌이었다. 닿은 사람도 이렇게 따가운데, 이 상처가 나던 순간의 너는 어땠을까. 윤기는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지민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렇게 잘 뛰어다니던 넌데, 뛰어다닐 때마다 신나서 활짝 웃던 네가, 왜 이러고 있어.

 

 

두 부모가 생생히 살아있어 끊임없이 강요받던 나의 삶과, 하나라고 있는 아버지도 죽은 것과 같아 방조 당하던 너의 삶 중 무엇이 더 서러운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을까. 양극단의 끝을 달리는 듯 다른 우리는 같은 바닥에 있었고, 그랬으면서 제멋대로 하늘을 꿈꿨다. 하늘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하늘을 꿈꿨던 나는 하늘에서 추락했고, 말간 하늘을 동경하던 너는 하늘에 갇혀버렸다. 하늘을 꿈꾸기엔 우리가 부족해서 벌을 받은 것일까.

 

갇힌 하늘 위에서 그렇게나 새하얗던 너의 발은 이 땅 위에선 이렇게나 처참할 수가 없다. 다시 깨어난 네가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행여 다시 걷지 못한다 해도 나는 네가 깨어나길 바란다. 그래도 나는, 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니까. 네 두 발이 오롯이 땅에 닿아있지 않아도 그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함께 할 생각이다.

 

그러니 제발, 지민아. 너는 깨어나기만 해줘. 하늘에서 추락해놓고 다시 하늘을 떠올리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어서 네가 만든 그 하늘 감옥에서 나와. 그리고 나와 함께 진짜 하늘을 날아보자. 지민아. 눈앞에 두고도 나는 매일 너를 그리워해. 보고 싶어. 지민아. 이 땅 위의 널 보고 싶어.

 

 

 

**

 

오랫동안 매일 붙잡고 있던 손이 꿈질거렸다. 침대 위에 팔을 괴어놓고 붙잡은 손 위에 이마를 기대 두었던 윤기가 눈을 번쩍 떴다. 제 손 위에 지민의 손을 올려두고 가만히 쳐다봤다. 다시 한 번 통, 하고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번엔 지민의 얼굴을 쳐다봤다. 평소와 다름 없이 얌전히 감겨있던 눈이 움직였다. 눈꺼풀이 들썩였다. 잠깐 미간을 찌푸린 지민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갑자기 목 안이 뻑뻑하게 말랐다.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탓에 목울대가 자꾸 흔들렸다. 윤기는 제 손 위에 놓인 지민의 손을 세게 붙잡고 있었다. 느리게 깜박이던 지민의 눈이 가만히 떠졌고,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마주쳤다.

 

 

“지민, 지민아.”

 

 

행여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자신을 모조리 잊었어도 괜찮다. 윤기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싫다며 쫓아내도 상관없었다. 지민이 어딘가에 살아있기만 한다면, 괜찮다. 다신 형의 학대를 받지 못할 것이었고 방조하는 아버지와 살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자꾸 조여 오는 긴장감에 마른 혀를 밖으로 뺐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지민의 시선이 윤기에게 오래도록 닿아 있었다. 윤기가 처음 깼을 때처럼 많이 말라 다 터버린 입술이 움직였다. 생각처럼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지 인상을 조금 찌푸렸던 지민이 윤기가 그랬던 것처럼 제 입술을 축였다.

 

 

“아저씨.”

 

 

자신을 가둬놨던 그 하늘에서 지민이 나왔다.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짐] Take me to the sky - 6(完)  (2) 2017.03.14
[슈짐] Take me to the sky - 5  (0) 2017.03.14
[슈짐] Take me to the sky - 3  (0) 2017.03.06
[슈짐] Take me to the sky - 2  (4) 2017.03.01
[슈짐] Take me to the sky - 1  (4) 2017.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