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슈짐] Take me to the sky

 

 

W.새벽의덕후

 

 

 

2.

 

윤기가 몸을 세워 앉았다.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영 민망했다. 눈에 가득 담기는 분홍색 하늘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자꾸 예전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뱉은 말이 자꾸 민망함을 만들어냈다. 계속되는 민망함에 윤기는 제 목덜미를 긁었는데 앞에 있는 지민은 방금의 대화를 잊은 거 같았다. 윤기는 보지도 않은 채 윤기에게서 받은 배지를 매만지며 신경을 쏟고 있었다. 저 낡은 게 뭐가 그렇게 좋을까. 윤기는 지민의 작은 손가락이 꼬물거리며 매만지는 그 배지를 바라봤다. 늘 제 가슴팍에 달려 있었지만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던 건데. 주인만 잘 만나면 저렇게 관심받을 수 있던 거구나, 하며 실없이 웃었다. 애꿎은 구름만 손가락으로 만졌다. 모래성 쌓듯 모아 올리니 구름이 제법 모양을 내며 쌓여 올라갔다. 그게 신기해 윤기는 몸을 돌려 구름을 이리저리 모아 단단하게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몸을 기대앉았다. 편하네.

 

 

“아저씬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하고 싶은 거?”

“응.”

“글쎄. 죽었는데 뭘 하고 싶어.”

“그럼 예전엔 뭐 하고 싶었는데?”

“음. 뭘 하고 싶었던 게 너무 옛날 일이라. 너는?”

“나? 음, 나는 밥!”

“어? 밥? 밥하고 싶다고?”

“아니. 아저씨 바보야? 난 음식을 막 이-이만큼 깔아두고 먹어보는 거. 그거 해보고 싶었다고.”

 

 

제 치아도 죄다 보여주고 팔도 쭉 뻗어가며 열심히 말한 지민이 말을 마치자마자 구름 꽃을 피워내듯 예쁘게 웃음을 피웠다. 그 얼굴을 보면서 그게 뭐야, 라고 하며 실없이 웃었다. 하고 싶은 게 있냐는 지민의 질문이 닿자마자 이상한 긴장감이 돌았다. 저 혼자는 그 질문을 퍽 무겁게 받아들였고 아득한 과거까지 뒤져가며 무엇을 하고 싶었었나, 궁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저렇게 실없는 말이나 하며 헤죽이고 있었다. 히히, 하며 내뱉는 그 웃음소리가 맑았다.

 

 

“웃기는. 그게 뭐야.”

“뭐긴. 내가 하고 싶은 거라니까! 하고 싶은 게 뭐 별건가. 나는 맛있는 밥 많이 먹고, 양껏 먹고, 종류별로 이것저것 다 집어먹고 싶은 걸 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

“하면 되지.”

“아저씨 지금 나랑 장난해? 죽어서 여기 와놓고 뭘 하면 된대. 여기선 배도 안 고프구만.”

“아, 그러네. 진짜 배 안 고프네.”

“당연하지. 의식도 없는 세상에서 그런 의식주에 기반한 욕구가 있을 거 같아?”

“오, 좀 똑똑한 거 같다.”

“바보는 아니거든.”

 

 

어느새 턱을 내밀고 당당한 표정을 짓는 녀석이 귀여웠다. 그 표정을 가만히 보다가 또 웃어버리고 말았다. 못생겼는데 귀엽네. 윤기의 웃음을 보자 녀석이 제 표정을 풀고 저도 따라 웃었다.

 

 

“아무튼 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닐 수도 있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싶은 거. 아니면 티비에서 본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거. 음, 것도 아니면 슈퍼 가서 좋아하는 컵라면 사 오는 거?”

“단순하다. 단순해.”

“아니 질문 자체가 단순했잖아.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진짜 별거 없는 질문에 대답이 뭐 별거여야 해?”

 

 

아예 팔짱까지 끼고 콧김을 푹푹 내뱉는 지민을 가만히 바라봤다. 잠깐의 시간 동안 같이 있었을 뿐인데 여러모로 뻔뻔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당차고 뻔뻔한 말투로 윤기가 간과하고 있는 곳곳들을 정확히 짚어내는 거 같았다. 앞에 앉은 지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윤기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간 윤기가 살아왔던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면 그 뒤로는 퍽 거창한 말들을 늘어놔야 했다. 돈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모아서 어느 여행지로 여행을 간다든가, 어느 대학 어느 과에 들어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보겠다든가, 실없는 소리마냥 들릴 수 있어도 건물주가 되어 세만 받아먹고 살겠다는 대단한 것들이 줄줄 따라 나와야 했다.

 

윤기가 살아왔던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기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기 어렵다고 느꼈었다.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에는 지민이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윤기는 다시 생각했다. 뭘 해보고 싶었지. 단순하게 다시 생각했다.

 

 

“나는 그냥, 하루만 쉬어보고 싶었어.”

“하루?”

“응.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거든.”

“왜?”

“그야.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돈 많이 벌었다며.”

“응.”

“근데 왜 먹고살 걱정을 해? 돈이 많은데?”

“내 돈이 아니니까.”

 

 

응, 그렇구나. 하는 소리를 뱉으며 이번엔 지민이 뒤로 발라당 누웠다. 지민이 누우며 일으킨 바람 때문에 지민 옆으로 구름 조각들이 작게 피어올랐다. 몽실몽실. 꼭 지민의 웃음을 닮은 그 조각들이 위로 피어오르다가 사라졌다. 저렇게 보면 수증기가 맞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쪽으로 몸을 굴린 지민이 다시 이쪽으로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윤기의 앞으로 다가왔다. 구름 위를 구른 탓에 녀석의 몸엔 구름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어 툴툴 털어내자 지민의 몸에 붙어 있던 것들이 사르르 녹았다. 가부좌를 틀어 놓은 듯 앉아있던 윤기의 양 무릎에 지민의 몸통이 닿았다. 지민은 제 고개만 들어서 윤기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파일럿을 하고 싶어서 한 거야?”

 

 

지민의 깨끗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윤기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느꼈다. 이 수많은 구름들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시계가 째깍이며 거꾸로 잘도 흐르는 것 같았다. 윤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열심히 거꾸로 흐르던 시간이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 윤기의 눈앞에는 그다지 그립지는 않은,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옆으로 윤기가 언제나 싫어했던, 미안한 표정을 한 어머니가 함께 나타났다.

 

 

 

 

‘윤기야. 부탁한다.’

‘그래. 아빠의 오랜 꿈이었잖아. 응?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처량한 목소리에 어린 윤기가 고개를 숙였다. 후드티의 앞주머니에 접어놓은, 사진학과로 유명한 대학의 홍보 포스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가만히 다리 위에 얹어 놓았던 손 하나가 슬쩍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빳빳한 재질이 손가락에 닿았다. 윤기는 방문을 열고 나온, 제 부모님 뒤를 지나가는 형을 쳐다봤다. 교통사고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반창고도 붙어 있었다. 윤기와 꽤 닮은 형의 얼굴엔 어색한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그 꿈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꿈은 아버지가 소년시절부터 꾸어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었고, 살던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꿈을 한켠에 묻어둔 채 악착같이 살아낸 아버지는 집안을 일으켰고, 큰 성공을 이루었다. 성공한 후에도 아버지의 오래된 꿈은 가슴 안에 문신보다도 짙게 새겨져 있었다.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제 아들의 모든 것을 파일럿과 관련한 것으로 꾸몄다. 침대도, 책상 앞 액자도, 옷도. 온갖 것에 비행기와 하늘 모양이 붙어 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손에 처음 들려 온 인형도 비행이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인생을 강요당한 형은 자연스럽게 조종사를 꿈꿨다. 항공 관련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도 공군에 입대했다. 순조롭게 조종사의 절차를 밟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조종사 자격이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조종사만 할 수 없을 뿐이지 배운 지식과 쌓은 경력으로 비행기 관련 회사든, 항공사든, 공항이든 취직자리에 걱정은 없었다는 거였다. 아무튼 그 사고 이후로 아버지의 꿈은 자연스럽게 다음 아들에게 넘어갔다. 그 아들은, 조종사를 위한 코스를 차분히 밟아가던 형 덕분에 아버지의 관심을 덜 받았고 그래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형. 나중에 조종하면 나 조종석에 태워준다고 했다.’

‘여객기는 안 되고, 아무튼 꼭 태워는 줄게.’

‘그때 되면 내가 그 자리에서 사진, 기가 막히게 찍어서 형한테 선물해줄게.’

‘제대로 된 장비도 없으면서 말은.’

 

 

형과는 꽤 친했다. 나란히 누워서 조잘대며 형이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면 꼭 그 옆자리에 앉아 하늘의 전경을 찍어보겠다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나름대로 알바를 해가며 번 돈으로 낡은 중고 장비를 사서 찍은 사진을 처음 찍었을 때 가장 먼저 형에게 보여줬었다. 형은 다정한 사람이었고 제 동생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날의 사진은 구리다며 타박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늘 제 동생의 꿈을 응원했다.

 

그랬던 형이 다친 몸뚱이로 동생의 꿈을 밀어내고 있었다. 윤기는 어색하게 서 있는 형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꿈을 통보받는 일이었다. 윤기는 조종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 미안한 얼굴들이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윤기의 시계 속 시간이 다시 흘렀고 눈앞에는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지민이 보였다.

 

 

 

“응? 하고 싶던 거야?”

 

 

다시금 물어오는 질문에 윤기가 씁쓸하게 웃었다. 하고 싶었냐는, 하늘을 날고 싶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입가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채로 대답하기엔 조금 미안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기는 언제고 자신을 향해 누군가 저렇게 물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오면 꼭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아니.”

 

 

윤기는 언제나 하늘이 싫었다. 하늘을 그렇게 싫어해 놓고 이런 얘길 하려니 영 민망했다. 맨발에 자꾸 간지럽게 닿는 구름이 윤기에게 항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괜히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그렇지만 입에선 늘 목에 걸려있던 말이 자꾸 나왔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

 

 

그 말에 윤기를 올려다보며 누워있던 지민이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는 몸을 따라 시선을 준 윤기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지민은 그저 존재했을 뿐인데, 그리고 귀찮은 질문이나 해댔을 뿐인데 함께 있으면, 대꾸를 하면 속이 시원했다. 무언가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십수 년, 아니 수십 년 동안 인생 언저리에 걸려있던 걸 뽑아낸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얌전히 앉아있는 지민을 보며 웃었다. 지민의 머리칼은 여전히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맑고 빛나는 얼굴을 계속 지켜보기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저 뒤의 하늘은 이제 분홍색이 아니었다. 다시금 푸르른 색을 띄고 있었다. 하늘만 보다가 문득, 그런 소리를 뱉었다.

 

 

“여긴 해가 안 지나봐?”

 

 

그 말을 하면서 다시 지민을 쳐다봤다. 온화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지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해선 안 될 말을 한 건가 싶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지민이 눈을 돌렸다. 그 동그란 볼에 바람을 꽉 넣어 탱탱하게 만들었다. 꼭 찔러보고 싶다고 느낄 때쯤 푸우, 하고 바람을 빼냈다. 그러면서 지민은 윤기를 쳐다봤다.

 

 

“깜깜한 건 싫어서. 왜?”

“아니 그냥. 해가 지는 듯하다가 안 지길래.”

“이상한가?”

“여기 자체가 이상한데 뭐. 그냥. 하늘 위, 구름 위에 있는데 별도 달도 못 보는 게 좀 아쉽긴 하네.”

 

 

 

그런 말을 하면서 괜히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여기선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한눈에 다 보였지만 그래도 괜히,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만 하는 세상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 하늘이 맑았고, 바라보고 있는 하늘 위로 다른 구름들도 눈에 들어왔다. 가끔 하늘이 해가 지는 것처럼 주황색이 되기도 했고, 가끔은 대책 없이 분홍색으로 물들기도 했다. 그러나 밤은 오지 않았다. 해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밤이 오길 기다리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늘 위에 있으면서 별 하나 보지 못한다는 건 좀 아쉬웠다. 배가 고프지도, 잠이 오지도 않는 공간에서 별걸 다 바라고 있었다.

 

 

“별, 보고 싶어?”

“보고 싶지.”

“아저씨 파일럿이라며. 별 많이 본 거 아니야?”

“딱히. 비행기에서 별 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왜?”

“생각보다 별빛은 약하거든. 별 보고 싶은 사람 쪽에 빛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더 흐릿해져. 창에 코 박고 얼굴 가까이 대고 보면 보이나, 싶은데 비행기 조종하면서 그걸 어떻게 하겠어. 그래서 많이 못 봤어. 별.”

 

 

 

그렇게 말하자마자 푸르렀던 하늘이 삽시간에 어두워졌고 주위에 번쩍이는 별들로 가득했다. 이런 위치에서, 이런 밝기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건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애초에 자신이 있는 곳 자체가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광경을 그저 누리기로 했다. 치켜든 얼굴에서 턱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벌어졌다. 와, 하는 어린애 같은 탄성도 입에서 나왔다. 정말 쏟아질 것 같은 별을 한껏 눈에 담고 고개를 내려 별천지를 선물해준 지민을 쳐다봤다. 여전히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어두운 곳에서 쏟아진 별들이 다 지민의 눈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예쁘다.”

“그러게. 이렇게 해놓고 보니까 밤도 예쁘네.”

 

 

탄성과 섞인 말을 뱉어내니 한껏 별을 구경하던 지민의 시선이 윤기에게 닿았다. 별에 홀린 건지, 방금의 자신이 무엇을 보고 예쁘다고 한 건지 헷갈렸다. 지민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윤기를 보고 한 번 웃어주더니 다시 제가 만들어낸 밤하늘을 둘러보았다.

 

 

“전엔 한 번도 이렇게 해 본 적이 없었어?”

“응.”

“왜?”

“그냥. 내 세상에 별로 필요 없는 거여서.”

“되게 예쁜데. 사진으로 찍어놓고 싶다.”

“사진?”

 

 

가만히 지민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일 자신에게 카메라가 한 대 있었다면 몇 번이고 담고 싶을만한 풍경이었다. 지민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고 윤기도 제 시선을 지민에게 맞췄다.

 

 

“응. 사진. 어릴 때 사진 찍는 게 꿈이었거든.”

“사진 찍는 거? 그, 포토그래퍼 그런 거?”

“응.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예쁜 거, 못생긴 거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찍어보고 싶었는데.”

“근데 왜 못했어? 꿈이었다며.”

“내 꿈보다 더 무거운 꿈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윤기는 제가 가진 제대로 된 사진기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 돈도 많은데. 아니, 많았는데. 카메라 하나 정도는 사 놓을걸. 또 죽고 나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죽은 후에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무시하고 살았는데. 죽고 나서 이렇게 열심히 후회만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지민의 말처럼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도 윤기는 제 오래된 꿈 대신 아버지의 꿈을 짊어지고 살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면, 그러고 만다면 윤기 자신도 제 꿈을 아이에게 짊어지게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헛웃음이 따라 흘렀다. 다 죽어서 무슨.

 

 

“힘들었어?”

 

 

하늘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 너머의 과거를 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데 문득 저를 향한 지민의 물음이 들렸다. 그 질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입을 굳게 다물고 뻣뻣한 표정으로 윤기는 지민을 바라봤다.

 

 

“누구나 힘들지. 사는 게.”

“아니. 난 아저씨에 대해 묻고 있잖아. 힘들었어?”

“그랬을걸.”

“그러면 그런 거지 그랬을걸, 은 뭐야. 힘들다는 말 하나 제대로 못 해?”

“내가 힘들다고 하면, 힘들어할 사람이 많으니까.”

 

 

지민의 꽤 매서운 말투에 주눅이라도 든 것처럼 윤기는 한숨 같은 대꾸를 작게 내뱉었다. 그 한숨이 이곳에 널린 구름처럼 피어올라 눈앞에 아득하게 그려낸 것은 다름 아닌 윤기의 가족이었다.

 

꿈을 빼앗고, 꿈을 바꾸고, 꿈을 강제한 그의 가족들. 원치 않게 떠안은 꿈이었지만 윤기는 그것을 이뤄냈고, 해냈었다. 그런 윤기가 힘들다고 해버리면 가족들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마치 본 것처럼 선했다. 그래서 윤기는 참 힘들었지만 힘들 수 없었다. 나만 힘든 건 아니니까. 그 투박한 말이 나름 저 자신에게 위로랍시고 해줬던 말이었다.

 

제 앞에 앉아있던 지민이 저를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하늘을 눈앞에 두고 윤기는 구름 가득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숨 같은 윤기의 대꾸를 듣고 지민도 함께 한숨을 내쉬웠다. 폭, 하고 쉬는 한숨이 꼭 깔고 앉은 구름 같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안 하면. 그럼 아저씨가 제일 힘들어지는 거잖아.”

 

 

열심히 모른척했는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윤기는 구름을 헤집던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하늘보다도 더 투명한 소년이었다. 그 애의 얼굴이, 안 그래도 여기저기 퉁퉁 불어있는 그 얼굴이 퉁명스럽게 부어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주면서. 왜 정작 자기 생각은 그렇게 안 해?”

“그건.”

“힘들었잖아. 그동안.”

 

 

또렷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지민이 참 단단해 보였다. 윤기보다도 더 어른 같기도 했고, 더 성숙한 것 같기도 했다. 어른이니, 성숙이니 하는 것들은 정말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았다. 지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든 건, 아니 들었던 건 자신이었을 텐데 지민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났을까.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만큼 화를 내고 있는 걸까. 강제로 뜯어내는 듯한 지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 곱씹다가 겨우 입안에서 씹히던 말을 뱉어냈다.

 

 

“응. 힘들었어.”

 

 

지민의 단호한 눈을 마주 보고서 더 이상 대답을 돌릴 수 없었다. 처음인 거 같았다. 힘들다고 소리 내서 뱉어본 일이. 지민의 시선에 떠밀리듯 뱉어낸 말이었는데 목에 거슬리게 달라 붙어있던 가래를 뽑아낸 것처럼 개운했다. 그 대답을 듣고야 만 지민의 얼굴도 조금 편안해졌다. 자신의 얼굴도 그럴까. 문득 궁금해졌다.

 

눈 안에 가득 담기는 지민의 얼굴이 참 예뻤다. 정말 천사가 있다면 꼭 이런 얼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윤기는 궂은 말을 붙이지 않고 웃었다. 윤기가 웃자마자 지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늘의 색이 변했나싶어 지민에게 붙어있던 시선을 떼어 하늘로 옮겼다. 하늘은 여전히 쏟아질 듯 박힌 별이 가득했고, 그 틈으로 가끔 별똥별이 툭툭 지나갔다. 눈앞에서 보는 별똥별은 처음이라 다시 어린애처럼 턱을 열고 와아, 하는 소리를 냈다. 예쁘다고 넋 놓고 보고만 있다가 문득 소원이라도 빌어둘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비현실적 풍경에 놓여있으면서 헛소리나 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핀잔이 속에서 들렸지만, 잠깐 든 현실적인 생각은 저리 치워놓기로 했다. 현실 같은 건 다 소용없었다. 다시 별똥별이 지나갈까 싶어 한참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내렸다. 다시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윤기는 오랜만에 가슴 가득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웃었다.

 

 

“고마워.”

“어?”

“아마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도 이런 하늘은 보지 못했을 거야. 엄청 아름다워. 이런 하늘 보여줘서 고마워. 다른 것도, 고맙고.”

 

 

감사를 전하자마자 세상이 다시 환해졌다. 갑작스레 밝아진 하늘에 윤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빛에 좀 적응하고 나서 다시금 지민을 바라봤다. 밝은 하늘 아래서 지민의 얼굴이 더 분명하게 보였다. 하얀 얼굴 위로 붉게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지민은 마주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애먼 곳을 쳐다보면서 말을 흘렸다.

 

 

“너, 너무 오랫동안 깜깜했다. 내가 인심 쓴 거야. 어. 그러면 쉬어. 하고 싶었다며.”

 

 

더듬대며 말을 한 지민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통통한 입술이 혀에 이끌려 입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는데 지민이 몸을 틀더니 아무 데로나 걸었다. 그런 지민을 굳이 붙잡지 않고 여전히 편한 미소를 걸어놓은 채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

몇 시간일지, 며칠일지, 혹은 몇 달일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잠도 오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가끔 지민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가는지는 몰랐다. 혼자 벌떡 일어서서 어딜 거닐다가 돌아왔다. 윤기는 대체로 한자리에 있었다. 이곳을 좀 둘러보긴 했지만 어딜 가도 그냥 끝없이 펼쳐진 구름평원이었기에 나중엔 둘러보기마저 포기했다. 언제나 비행기 앞 유리로 쳐다만 보던 그런 구름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만큼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된 건 여긴 천국이나 하늘 위 심판대 따위가 아니라는 거였다. 지민과 한 몇 번의 대화로 짐작하건대, 이곳은 지민이 만든 세계 같았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지민이 만들어 놓은 의식 세계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너 몇 살이야.”

“또. 또 그거 묻는다.”

“이만큼 친해졌으면 알려줄 때도 됐잖아.”

“내가 이렇게 안 알려 줬으면 그만 물을 때도 됐는데.”

“한 마디도 안 지지.”

“져야 해?”

 

 

샐쭉한 표정을 지은 지민이 곧 얼굴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온 곳에 널린 구름처럼 희고 맑은 웃음이었다. 대체로 윤기는 지민과 대화를 했다. 누워서 하기도 했고, 구름을 모아 등받이를 만들어 놓고 앉아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대론 평원을 거닐면서 얘기하기도 했다. 녀석은 꼭 나이를 안 알려주려고 했다. 윤기 나이는 금방 물어 알았으면서. 그새 지민과 많이 친해졌고, 그 탓인지 이런 것 하나에 치사함과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서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안 알려줘.”

“어디로 가도 다 알 수 있거든.”

“따라오지 마라. 혼자 있고 싶으니까.”

“사춘기야? 왜 혼자 있고 싶은데.”

“글쎄. 알려주고 싶지 않은데.”

“아 진짜.”

 

 

당해봐라 싶은 마음이었다. 유치한 건 알았지만 이런 한적한 구름평원에서 제일 재밌는 일은 지민과 노는 일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지민을 놀리는 일이었고. 작게 놀려도 얼굴을 빵빵하게 만들고 벌건 얼굴빛을 보이는 탓에 소위 말하는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윤기는 몸을 일으켜 아무 데로나 걸었다. 지민의 말처럼 어딜 가든 지민은 자신을 찾았다.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아마 짐작대로 이곳이 지민이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일 거였다. 그래도 일어났고, 그래도 걸었다. 말은 저렇게 당당하게 해놓고도 지민은 늘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곁눈질로 그 행동을 쳐다보다가 웃어버렸다. 살아있을 때는 웃는 일이 한 달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는데 여기선 대체로 웃는 얼굴이었다.

 

 

“열아홉!”

 

 

웃는 채로 걸음을 떼려던 순간 뒤쪽에서 내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고함에 놀라 어깨를 조금 들썩이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벌겋게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놀림당한 게 그렇게 분했는지 거친 숨도 몰아쉬고 있었다.

 

 

“열아홉이었어. 살아있었을 때는.”

“열아홉?”

“그래. 열아홉. 그러니까. 알려줬으니까. 가지 마.”

 

 

어느덧 얼굴빛을 정돈한 지민이 윤기 쪽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열아홉. 윤기는 그 말을 입 안에 담아놓고 중얼거렸다. 얼굴을 보고 생각했던 것보단 나이가 많았고, 함께 지내면서 느꼈던 것보다는 어렸다. 아예 몸을 돌려세운 다음 지민을 향해 걸었다. 놀림당한 게 분했는지, 서러웠는지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 도톰한 입술을 이로 꾹꾹 누르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지민이 우는 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웃는 얼굴은 사람을 한없이 편하게 만들더니, 우는 얼굴로는 사람을 한순간에 죄인으로 만들었다. 윤기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함부로 지민의 얼굴에 손을 댈 수도, 어깨를 감싸 안을 수도 없어서 그저 가까이 다가가 서 있기만 했다.

 

 

“안 가, 안 갈게. 어딜 가도 다 네 손바닥 안인데. 어딜 가도 네가 나 찾을 수 있잖아.”

“그래도. 가지 마. 등 보이면서 가지 마.”

“응. 안 갈게. 그러니까. 울지 마. 지민아.”

 

 

그 말을 보기 좋게 거절이라도 하듯 윤기가 말을 마치자마자 지민의 눈에 그렁그렁 차 있던 눈물이 툭, 하고 흘렀다. 어쩔 줄 모른 채 다리 옆에서 방황하던 손을 들어 올린 윤기가 천천히 그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손길이 무슨 신호탄이라도 되듯 눈 안에 가득했던 눈물이 전부 비집고 나왔다.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듯 지민은 윤기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대 놨다. 여전히 지민의 눈물이 묻어 마르지 않은 손을 멍청하게 들고 있던 윤기가 천천히 지민의 등을 쓸었다. 작게 다독이는 손길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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