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슈짐] Take me to the sky

 

 

W.새벽의덕후

 

 

 

6.

 

“와, 진짜 좋다. 돈 많다는 말 뻥 아니었구나.”

“내가 말했잖아.”

“그래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근데 이왕 쓸 거면 더 쓰지.”

“뭐?”

“나는 그, 일등석도 타보고 싶었는데.”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며 창밖을 내다보는 지민의 뒤통수를 보다가 웃어버렸다. 쫑알쫑알 말도 많았다. 윤기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제가 조종해서 다녔던 곳들 중 마음에 들었던 곳 몇 군데를 추렸다. 그리고 곧장 티켓을 끊었다. 당연히 두 자리를 예약했다. 창문에 둥근 코를 박아 꾹 누르고 와아, 하며 창에 입김을 뿌리는 녀석을 꼭 옆에 앉혀두고 싶었다.

 

날게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지민의 상처 가득한 손을 붙잡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은 꼭 지키고 싶었다. 아직 뜨지도 않은 비행기에서 지민은 한껏 들떠있었다. 그런 지민의 뒤통수를 쓰다듬다가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지민은 재빨리 고개를 틀더니 윤기를 흘겼다. 지민이 그 통통한 입술로 뭐라 투덜대기 전에 윤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게 일등석이야.”

 

 

윤기의 말에 눈을 흘기던 지민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입을 헤, 벌리고 주위를 빙빙 둘렀다. 한참이고 혀를 내두르다가 곧 그 혀까지 씹었다. 씹힌 혀가 놀라서 입 안으로 쏙 들어갔고 입술도 입 안으로 덩달아 말려 들어갔다. 윤기를 잔뜩 흘기느라 가로로 찢어져 있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여기가 일등석이라고?”

 

 

느닷없이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탓에 귀를 좀 기울여야 했다. 윤기 옆에 찰싹 붙어 작게 속삭이는 지민이 귀여워 윤기는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지민은 연신 헐, 대박, 대박을 외쳐댔다. 그런 지민이 예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가 무릎 위에 얹어 둔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엔 찍지 말라고 카메라를 밀쳐냈었고, 그다음엔 어색하게 포즈를 지어보던 녀석이 이젠 여유롭게 카메라 렌즈를 맞이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척척 찍히는 지민을 보면서 모델을 시켜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지민은 자신을 향한 카메라 셔터 소리보다 일등석이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지던 녀석이 다시 고개를 홱 돌려 열심히 자신을 찍고 있는 윤기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작은 손을 뻗어 카메라를 밑으로 내렸다.

 

 

“왜?”

“아니. 이렇게 일등석을 태우면 어떡해.”

“타보고 싶었다며.”

“누가 하고 싶은 걸 다 해!”

“언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며.”

“별게 아니었을 때를 말한 거지 나는! 일등석을 타고 싶다고 맨날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미쳤나 봐, 진짜. 그렇게 돈 막 쓰다가 탕진하면 어쩌려고!”

“언젠 속물 아니라며.”

“먹고 살만큼은 있어야지!”

“나 거지 되면 네가 벌어서 나 먹여 살려야지.”

“와, 진짜 대박이다. 나 낚인 거 같은데. 그냥 이거 환불해 달라고 하면 안 돼? 왕복 티켓 값이면 월세방 보증금은 나올 거 같은데.”

“안 돼. 이미 탔는데 무슨 환불이야. 이제 곧 출발하거든?”

 

 

지민이 윤기를 흘기며 몸을 복도 쪽으로 내밀었지만 창가 쪽에 앉아있는 탓에 윤기가 비켜주지 않으면 어디로 나갈 수가 없었다. 일부러 이 항공사를 택했다. 이러려고. 다른 항공사는 창가에 좌석이 달랑 한 개만 있어서 분명 창밖을 보고 싶어 할 녀석을 앉히면 자신은 다른 곳에 앉아야 했다. 일등석이라 옆 좌석과의 거리도 꽤 멀었다. 지민과 함께, 처음으로 진짜 하늘을 날아보는 순간인데. 멀리 떨어져 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 항공사의 일등석은 창가 옆으로 나란히 자리가 붙어 있었다. 몇 번 탈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지민이 윤기를 흘겼다. 윤기는 찌푸린 지민을 보다가 작은 코를 한번 톡 쳤다. 지민이 고개를 털며 여전히 잔뜩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어두려고 카메라를 다시 들어 올렸을 때였다.

 

 

“혹시, 민 부기장님?”

 

 

난데없는 목소리에 완전히 지민을 향해 틀고 있던 몸을 살짝 움직여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꼿꼿한 자세로 두 손은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살짝 굽힌, 전형적인 승무원의 자세를 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지윤 씨.”

“사고 났다는 얘긴 들었는데.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윤기에게 인사를 건넨 이는 몇 번 함께 비행을 하기도 했던 승무원이었다. 아마 이 외국 항공사의 티켓 발권 등을 도와주려고 비행기에 오른 모양이었다. 윤기가 알기론 사고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영아 씨와 꽤 친한 사이였을 거였다. 그래서 그런가, 앞에 선 이의 표정이 마냥 밝지 않았다. 윤기도 굳이 말을 붙이진 않았다. 한참 잊고 있었지만 그를 보니 영아 씨가 떠올랐다. 영아 씨는 그 날 그 사고로 즉사했다고 들었다. 애초에 살아남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행, 하시나 봐요. 동생분이신가.”

 

 

지윤 씨가 애써 말을 돌려보고자 했다. 분위기가 탁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들어온 앳된 얼굴의 남자를 화젯거리로 삼았다. 지민은 저에게 닿은 관심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눈앞의 승무원은 아름다웠고, 우아했다. 아마 윤기처럼 돈도 꽤 벌 거였다. 아무것도 없이 윤기에게 얹혀서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자신과는 달랐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동생이라니. 동생이라고 단번에 정의 내려지는 게 싫었다. 그렇다고 윤기와 자신의 관계를 무어라 말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괜한 초조함에 입술을 뜯었다. 윤기가 고개를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이 한껏 물어뜯고 있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다정하게 빼냈다. 통통한 입술을 한 번 툭, 쳤다. 그 행동에 지민이 이 좌석이 일등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큰 눈을 하고 윤기를 쳐다봤다. 윤기는 웃으며 다시 지윤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생 아니고. 되게 아끼는 사람이에요.”

“네?”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 죄송해요. 그러신 줄 모르고.”

“아니에요. 비행 잘 부탁해요.”

 

 

윤기의 말에 지윤 씨도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시야가 비자 곧장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의 표정이 묘했다.

 

 

“왜?”

“그래도 돼?”

“뭐가?”

“아니이. 그. 그렇게 말하면 게이라고 소문 쫙 나는 거 아닌가 해서.”

 

 

게이, 라는 말을 하면서부터 목소리를 작게 내더니 뒷말은 죄다 웅얼거리면서 했다. 어느새 고개도 푹 숙이고 있었다. 작은 손가락끼리 맞대며 꼼지락거렸다. 그 손을 가만히 보던 윤기는 제 손으로 덮어두고, 작은 머리통 위에도 손을 올렸다.

 

 

“상관없어. 멋대로 말하라 하지 뭐.”

“그러면 안 되지. 난,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고. 저렇게 예쁘지도 않고.”

“예쁜데. 너.”

“으에? 아저씨 지금 미쳤어? 조용, 좀 조용히 해.”

 

 

윤기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지민은 붙잡혔던 제 두 손을 들어 윤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찌나 꽉 틀어막았는지 지민의 손에 부딪힌 앞니가 꽤 아렸다. 그래도 그마저 좋았던 윤기는 웃으며 그 손을 붙잡았다. 입에서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하도 매섭게 노려보며 지민이 입을 더 틀어막는 탓에 무력으로 손을 떼어내는 건 포기했다. 대신 제 손으로 지민의 팔을 쓸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철옹성마냥 윤기의 입을 지키고 있던 손이 풀어졌다.

 

 

“변태야? 왜 그래!”

“변태 맞는데. 이따가는 아예 문도 닫아 놓고 너랑 같이 누울 건데.”

“미쳤어! 말, 말 좀!”

 

다시 입을 막아오려는 손을 이번엔 윤기가 먼저 막았다. 날아오는 공을 잡듯 지민의 손을 잡아챈 윤기가 지민을 보며 씩, 하고 웃었다. 계속 호들갑을 떨어대는 지민을 가만히 지켜봤다. 지민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윤기의 빤한 시선을 느끼고 제가 하던 짓을 관뒀다.

 

 

“왜, 왜!”

“지민아.”

“왜, 부르는데.”

“너보다 내가 더 불안해. 너는 이렇게 어리고, 예쁘고. 나처럼 확실하게 성 정체성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특별한 경험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아니면 한참 어른인 내 말에 휘둘려서. 그래서 나랑 같이 있는 걸까 봐 겁이 나. 그때의 경험이 아득해져 버리면. 구름 위의 기억들이 잊히면 나 두고 갈까 봐. 내가 더 불안해.”

“아저씨.”

“불안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 넌 안 그래도 돼. 그리고 걱정하지 마. 아직 돈 많으니까.”

 

 

윤기가 가볍게 미소 짓자 지민도 제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그 어색한 웃음마저 예뻐서 이번엔 활짝 웃었다. 지민은 윤기가 붙잡고 있던 손을 꼬물거리며 움직였고, 곧 윤기의 손을 더 편하게 잡았다. 윤기는 의자에 기댄 채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해.”

“응?”

“사랑해요.”

“지민아.”

“아저씬 언제나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고. 그런 아저씨와 함께한 모든 일은 언제나 특별한 것들이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작은 손으로 윤기의 큰 손을 잘도 쓰다듬던 지민이 눈을 돌려 윤기를 쳐다봤다. 지민의 고백이 닿은 그때부터 윤기는 지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민은 큰 손을 쓰다듬던 제 손을 윤기의 볼에 가져다 댔다. 볼을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서 윤기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러니까. 아저씨도 불안해하지 마. 응?”

 

 

지민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눈 안에 예전에 지민이 만들어줬던 별천지 밤하늘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이런 눈을 갖고 있어서, 그런 하늘을 만들 수 있었구나. 형이 학교와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까만 밤을 싫어했지만, 까만 눈동자를 가졌고 그 안엔 수많은 별을 박아 놓고 있었다.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을 테니까 자기 눈이 얼마나 예쁜지, 그 안에 얼마나 광활한 우주를 담고 있는지 몰랐을 거다. 그러나 지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알았을 거다. 다 터지고 상처 가득한 얼굴이라고 해도, 그 안에 참 아름다운 우주를 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우주에 있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지민의 눈을 빤히 보고 있던 윤기는 지민에게로 향했다. 아주 잠깐,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러나 가까이 붙은 얼굴은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저,”

“비행기 뜨면. 더 길게 하자. 아무도 우리 방해 못 하게.”

“…변태.”

“싫어?”

 

 

여전히 가까이 닿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윤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지민이 입술을 비죽거렸다. 웃을락 말락 하는 그 입술이 옹알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매력인 거 같아. 변태인 게.”

 

 

“그렇게 말하면서 제가 먼저 입술을 쪽, 하고 댔다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뭐였나, 싶은데 녀석은 뻔뻔하게 몸을 떨어트리더니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아까처럼 몸을 동동 구르며 와아, 하는 소리를 냈는데 그러고 있는 지민의 귀가 빨갰다. 그 귀를 보면서 윤기는 지민에게 제 몸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뻘건 귀에다 속삭였다.

 

 

“너 귀 되게 빨개. 가려줄까.”

“으씨!”

 

 

그 말에 지민이 먼저 제 귀를 턱, 하고 막았다. 그 모든 게 사랑스러워 지민의 둥근 뒤통수를 손으로 헤집어놓고 편히 기대앉았다. 비행기는 여전히 뜨지 않았는데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은 어디론가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

“우와아. 저거, 저거 뭐야?”

“와. 우리 운 좋다. 오로라. 저게 오로라야. 여기 온 날 바로 봤네.”

“오로라?”

“응. 예쁘지. 네가 만들어줬던 하늘보단 안 예쁜데. 저것도 나름대로 예쁘네.”

“밤하늘에 저런 게 있구나.”

 

 

추워서 더 빨개진 입을 벌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지민을 가만히 보다가 윤기는 다시 장비를 만졌다. 지민과 다양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지민에게 다양한 하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밤에도, 낮에도 그 어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지민에게 이런 하늘도, 저런 하늘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지민이 윤기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하늘을 선물해줬던 것처럼, 윤기도 지민에게 수많은 하늘을 선물하고 싶었다.

 

카메라 한 대는 캠 모드로 설정해 고정시켜 두고, 다른 카메라로 하늘을 몇 번 찍어본 후에 그 하늘을 배경 삼아 지민을 담았다. 이젠 오로라보다 더 다양한 색을 띠는 지민의 모습을 수차례 담고 있는데 지민이 윤기 쪽을 보며 손짓을 했다. 그 모습도 웃으며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으니 아예 지민이 윤기 쪽으로 다가와서 사진 찍는 팔을 잡아끌었다.

 

 

“방금 거 되게 못생기게 나왔어.”

“언제는 뭘 해도 예쁘다면서.”

“맞아. 못생긴 것도 예뻐.”

“그게 뭐야.”

 

 

지민이 눈을 약간 흘겼지만, 자신을 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윤기의 얼굴에 결국 흘기던 눈을 풀고 저도 웃어버렸다. 여전히 붙잡고 있던 윤기의 손을 잡고 오로라가 좀 더 잘 보이는 자리로 걸었다. 어디서 보나 잘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 더 오로라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추위에 찔찔 나오려는 코에 몇 번 힘을 주는 지민을 가만히 바라보며 윤기는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에 다시금 웃음을 덧댔다. 벌게진 코와 볼 때문에 지민의 피부가 더 하얗게 보였다. 그 얼굴을 붙잡고 빨간 곳, 하얀 곳 가리지 않고 입을 맞추니 지민이 눈을 감고 인상을 잔뜩 쓴 다음 장갑 낀 손을 허우적거렸다. 떨어지지 않는 윤기를 밀어낸 다음 눈을 흘겼다.

 

 

“왜. 예뻐서 그런 건데.”

“아 진짜. 집중하라고!”

“너한테 완전 집중했는데?”

“원래 이랬어?”

“아니. 너 만나고 변했어.”

“아이, 진짜.”

 

 

눈은 여전히 윤기를 흘기고 있었지만 그 입이 자꾸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게 윤기의 말이 마냥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윤기가 지민의 통통한 볼을 콕 찌른 다음, 제 앞에 돌려 세웠다. 눈에 들어온 오로라를 보자마자 지민이 다시 넋을 놓고 와아, 하는 소리를 냈다. 윤기는 그런 지민의 뒤에 서서 지민을 끌어안았다. 지민의 어깨 위에 제 고개를 올려놓고 함께 오로라를 쳐다봤다. 눈에 넘치게 들어오는 오로라 때문인지, 지민에게서 나는 향이 꼭 오로라 향인 거 같았다. 뒤에서 제 향을 맡는 윤기를 슬쩍 쳐다본 지민이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왜애, 하며 말끝을 늘이는 윤기의 말엔 대꾸하지 않은 채 지민은 다른 말을 꺼냈다.

 

 

“밤하늘에 이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그때 아저씨한테 더 근사한 밤하늘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그러고 있잖아.”

“응?”

“혼자 봤으면, 이렇게 근사하지 않았을걸. 네가 나랑 있어 줘서, 그래서 이 밤하늘이 너무 근사해. 네가 선물해준 거야. 고마워.”

 

 

보통 이런 말을 꺼내면 아저씨 같아, 라고 하면서 저 멀리 달아나는 시늉을 하거나 눈을 흘기던 지민이었는데, 이번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조금 빼서 지민을 쳐다봤다. 윤기의 시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 얼굴을 온전히 볼 수는 없었지만 위로 솟아오른 볼이 지민의 표정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짐작만 한 얼굴도 너무 예뻐서 윤기는 지민을 전보다 더 세게 안았다.

 

 

“숨 막혀 죽겠다.”

“지민아.”

“왜.”

“사랑해.”

 

 

다시 지민이 대꾸하지 않았다. 유독 윤기가 해주는 사랑한다는 말에 약한 지민이었기에 이런 반응은 얼추 예상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지민을 꽉 끌어안고 말을 꺼냈다.

 

 

“사랑해. 지민아.”

 

 

아까처럼 대꾸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뱉은 말이었는데, 지민이 갑자기 몸을 돌려 섰다. 느닷없이 눈에 들어온 지민의 얼굴에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저 뒤의 펼쳐져 있는 오로라보다 지민이 더 예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예쁘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뜸 지민이 윤기의 얼굴을 붙들더니 제 입을 맞췄다. 입술에 도장을 찍듯 꾹 누르는 폼이 엉성한 만큼 귀여웠다. 눈을 질끈 감은 얼굴을 잠깐 보다가 윤기도 웃으며 눈을 감았다. 입술을 맞댄 상태로 얼어붙은 듯했던 지민이 제 입술을 떼어냈다. 하도 찰싹 붙어있던 탓에 입술이 떨어질 때 쪽, 하는 소리가 났다. 지민의 얼굴에 붉은 곳이 늘어나 있었다.

 

 

“이거 뭔데에?”

“그, 그냥 뭐. 선물이야. 아저씨가 저런 거 보여줬으니까. 나도 그냥 뭐, 보답으로.”

 

 

꾸물꾸물 움직이는 지민의 붉은 입술이 예뻐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윤기는 지민의 허리를 붙들어 당긴 후 곧장 입술을 감았다. 중얼거리고 있던 탓에 벌어져 있던 지민의 입술 사이를 부드럽게 파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움에 놀라 윤기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지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늘 위로 펼쳐져 있는 오로라가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았다. 작은 빛도 들어가지 않게 가까이 붙어선 채로, 그렇게 새로운 하늘을 느꼈다.

 

 

 

**

 

“변태 아저씨.”

“내가?”

“나 깨어나자마자 입술부터 들이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러게. 그러지 그랬어. 지금은 너무 늦었어. 다른 데 못 가.”

 

 

또다시 불어터진 얼굴을 하고 있는 지민을 보면서 웃었다. 이 나라에 체류한 지 좀 됐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경치 좋은 나라에서 찰싹 붙어 있다 보니 자꾸 눈이 맞았고, 자꾸 눈이 맞다 보니 다른 곳도 여기저기 맞닿았다. 윤기는 윤기대로 천천히 진도를 밟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지민은 아니었나보다. 어젯밤 큰일까지 치르고 나서 아침나절 내내 불어터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기는 좀 억울했다. 밤엔 좋아했으면서. 민망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퉁퉁 불어터진 얼굴에 붉게 홍조가 올라 있었다. 밤에 봤을 때도 예뻤는데. 낮에 봐도 예뻤다.

 

 

“망했어. 난 망했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바 형식의 테이블에 앉아서 나란히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 나라 음식이 물리거나 딱히 당기지 않을 때 가장 찾기 좋은 식당은 맥도날드였다. 지민이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고 하는 바람에 손을 붙들고 이곳으로 왔다. 안 먹는다고 입술을 쭉 내밀 땐 언제고 지금은 그 입술로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열심히 입을 움직이던 지민이 윤기를 째려봤다. 무서워라. 윤기는 지민의 표정에 놀란 척하며 장단을 맞춰줬다. 근데 그 행동이 지민의 심기를 더 거슬리게 한 거 같았다. 볼 가득 음식을 넣어두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왜애.”

“책임져.”

“응?”

“책임져! 으씨. 전부 아저씨가 처음이란 말이야. 다 처음이야. 난 망했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나 책임져야 해!”

 

 

대뜸 나온 말에 윤기가 웃음을 터뜨렸다. 윤기가 웃건 말건 제 할 말만 털어놓은 지민이 다시 햄버거를 물었다. 그런 지민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시킬 건지, 어떤 말로 납득시킬 건지에 대한 물음이 속에서 새어 나왔다. 지민을 보고 있으면 마냥 즐겁다가도, 이 애의 존재를,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속이 잠시 막막해졌다. 부모님께는 여행을 떠난다는 말만 남겨 놓고 이곳까지 왔다. 언젠가는 사진사가 되겠다고 통보했던 것처럼, 지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텐데.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렇게 막막하던 차에 지민과 시선이 닿았다. 자신을 쳐다보며 깜박이는 눈동자에 윤기는 저 혼자 굳게 결심했다. 어른이 되어보겠다고. 부모님을 위해, 부모님의 감정을 위해 살았던 시간들은 이제 멈춰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나의 감정을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좋은 것은 선택하고 싫은 것은 버려두는 그런 삶을 살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봐?”

“입에 뭐 묻었다.”

“어디? 묻었으면 그렇게 보지만 말고 좀 닦아 주,”

 

 

투정하느라 바쁜 입술을 쳐다보다가 작은 턱을 붙잡고 그대로 입을 맞춰버렸다. 자신만의 하늘을 만들어 두고 구름 위에서 배짱 좋게 뛰어다니던 녀석이 맞는지, 윤기가 입을 떼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쳤어?”

“닦아달라며.”

 

 

태연하게 어깨를 들썩이는 윤기를 잠시 흘기더니 지민은 새침하게 몸을 돌렸다. 흥, 하는 소리가 온몸에서 나는 거 같았다. 손에 쥔 햄버거 종이를 좀 더 정리하더니 다시 입을 벌려 햄버거를 먹었다. 입 안에 햄버거를 넣고 나서도 웅얼웅얼,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그 통통한 입술이 바빴다.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 해달랄 땐 평생 안 해줄 것처럼 굴더니. 이젠 아무 데서나 막 쪽쪽 대. 부끄러움도 없나 봐. 부끄러운 줄 모르면 늙은 거라던데. 진짜 늙긴 늙었네.”

 

 

음식을 씹으면서도 잘 쫑알대는 그 입술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입꼬리에 묻은 소스를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쫑알거리며 햄버거를 먹던 지민이 제 옆의 움직임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엄지를 입에서 빼내며 쪽, 하는 소리를 내는 윤기를 경악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이씨,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내가 뭐?”

“아니 아저씨. 진짜 왜 그래? 배고프면 햄버거를 먹어. 자기 건 먹지도 않고.”

“이거 너 먹어. 나 햄버거 별로 안 좋아해.”

“근데 이거 먹으러 왜 왔어?”

“너 좋아하니까.”

 

 

윤기의 마지막 말이 꼭 고백처럼 들리는 탓에 지민의 귀가 벌게졌다. 갑자기 목을 콱하고 막아오는 햄버거에 캑캑대며 제 가슴을 두드리자 윤기가 곧장 콜라를 지민의 입에 가져다 댔다. 입술을 쭉 내밀고 빨대를 무는 걸 흐뭇하게 보면서 그 입술을 또 만지작댔다. 콜라를 빨아들이던 지민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윤기의 손을 탁, 쳐냈다.

 

 

“진짜, 자꾸!”

 

 

그렇게 인상을 써놓고 윽박을 지르면서도 윤기가 먹지 않은 새 햄버거에 손을 뻗는 걸 보면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먹성이 좋기는 또 엄청 좋았다. 새 햄버거를 까며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지민을 아예 감상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인님 노래 잘하네. 가수를 시켜야 하나.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키득거렸다. 햄버거를 문 지민이 저 혼자 웃고 있는 윤기를 흘긋 봤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더 틀었다.

 

방금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 다짐이 쉽게 이뤄질 거 같진 않았다. 어린애가 되는 거 같았다. 지민과 함께하면 자꾸 유치해졌다. 동그란 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 귀를 만지작댔다. 햄버거를 먹던 지민이 놀란 고양이처럼 숙여둔 고개를 번쩍 들었고 행동을 멈췄다. 곧 윤기가 만지작댄 귀가 붉어졌다. 지민이 윤기를 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휘휘 저었다. 그 작은 손을 보고 있으니 귀여움에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윤기는 지민 몰래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유치한 어른이 되지 뭐. 그렇게 생가하며 제 얼굴을 지민의 어깨 위로 가져갔다. 지민의 귀 쪽으로 고개를 틀어놓고 작게 속삭였다. 목소리엔 유치한 웃음이 잔뜩 묻어 나왔다.

 

 

“다 먹고 어디 갈까? 우리 아기 돼지?”

“와. 돼지래. 이젠 돼지래. 나중엔 뭐 멧돼지도 나오고 코끼리도 나오겠다? 으씨. 저리 안 떨어질래? 구름 위에선 나 두고 잘만 떠나더니! 여기선 왜 자꾸 달라붙는 거야!”

“여긴 땅 위니까. 싫어?”

“누, 누가 싫대? 그냥 좀 떨어지라는 거지. 이, 이것 좀 먹자!”

 

 

제 어깨에 턱을 받쳐두고 귓가에 나른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흠칫한 지민이 다시 햄버거에 집중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붉어진 귀의 색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윤기는 그쯤에서 놀리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행여 이러다 체할까, 그제야 좀 걱정이 됐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 턱을 괴어놓고 지민을 바라만 봤다. 이 애를 보고 있기만 했는데도 벅차올랐다. 아마 앞으로 지민과 함께 있으면 줄곧 이런 기분일 거였다. 땅 위를 딛고 다니면서도 하도 들떠서 둥둥 떠다니는 그런 기분을 매일 느낄 거였다.

 

볼이 터져라 햄버거를 욱여넣는 지민을 보다가 그 꽉 찬 볼을 한 번 툭, 쳤다. 지민이 힘겹게 햄버거를 씹으며 윤기를 쳐다봤다. 꼭 비상식량을 비축해 놓은 다람쥐 같았다. 그 빵빵한 얼굴이 귀여워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는 채로 윤기는 제 몫의 콜라를 지민 가까이 놔줬다. 그 볼을 다시금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어디든, 얼마가 걸리든 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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