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뷔민] 지민의 역사

 

 

W.새벽의덕후

 

 

 

<Ep. 너와 나의 현대사 上>

 

 

 

따사로운 햇살이 눈을 비추는 바람에 잠시 잠에서 깼다가 다시 얕은 잠에 빠졌다. 깨고 싶지 않았다. 행복한 주말이었다. 게다가 내일 일요일. 죽기 전까지 잘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잠에 빠질 때였다.

 

 

“으아아! 전정구우욱!”

 

 

시발 뭐야. 귀를 관통하는 존나 갑작스러운 외침에 눈이 번쩍 뜨였다. 뭐야, 뭐였는데 방금. 설마 내가 제대로 들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귀를 기울여도 아까 들렸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꿈을 꾼 건가, 아니면 기상의 요정이 일어나라고 수를 쓴 건가. 잠결에, 꿈결에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잠에 빠지려고 할 때였다.

 

 

“이 개 같은! 전정구우욱!”

 

 

감기던 눈이 또 한 번 번쩍 뜨였고, 몸도 절로 벌떡 일으켜졌다. 뭐야. 도대체 뭔데 시발. 왜 평온한 주말에 잘 자고 있던 내가 전 남친 이름으로 된 소리에 발작하며 깨야 하는데. 왜. 시발 어떤 새끼야. 김태형 새끼겠지 뭐.

 

열린 방문으로 자꾸 전정국, 전정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왜 다정한 나의 집에서 전 남친 이름이 되풀이되는 거냐고. 돌겠네, 진짜.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열린 문을 잠시 보고 있다가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침대 밖으로 나왔다.

 

얼마 전 김태형이 방 구조를 바꾸면서 침대를 나란히 붙여놓는 바람에 안쪽에서 자는 나는 늘 이따위 방식으로 침대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졸음이 가득한 눈을 하고 거실로 나가니 머리가 전부 헝클어진 채로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 손을 달달 떨고 있던 김태형은 나를 쳐다보더니 그 큰 눈에 원망을 그득그득 매달고 있었다.

 

 

“뭔데.”

“너. 너 진짜로.”

“뭐가 진짜로야. 아침부터.”

“씨, 지금 점심이거든!”

 

 

왜 저래. 어쩐지 상태가 좀 이상한 김태형을 흘기면서 소파 쪽으로 향했다. 내가 그쪽으로 움직이니 김태형도 몸을 벌떡 일으켜 나한테 다가왔다. 뭐야. 존나 좆같네, 벌떡벌떡 잘 일어서는 게. 너 혹시 네 주니어의 조종을 받는 중이냐!

 

혼자 뻘 생각을 하며 멍청하게 서 있으니 김태형이 쿵쿵거리며 걸어왔다. 이 새끼야, 그렇게 걸으면 밑에서 올라온, 아 우리 밑에 집 없지. 혼자 생각해놓고 또 혼자 멋쩍어진 탓에 코만 한 번 훌쩍이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다리가 긴 김태형은 성큼성큼 잘 걷더니 금세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김태형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 얘가 내 얼굴을 향해 팔을 뻗더니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솔직히 처음엔 주먹이라도 날리는 줄 알았다. 이 새끼 내가 아무라 널 개새끼 시발새끼라고 불러도 진짜 그렇게 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살짝 감았는데 얼굴을 때리는 감촉 같은 건 없었다. 흐릿한 시야로 잘 쳐다보니 김태형은 그냥 내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눈을 번쩍 떠서 눈앞의 핸드폰을 보는데 너무 가까이 들이댄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걸음을 조금 뒤로 물리는데 이 멍청한 김태형 새끼가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 그래서 날 향해 쭉 뻗어있는 팔을 붙잡고 김태형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얘가 보여주려고 기를 쓰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쳐다봤다. 그래서 이게 뭔데.

 

 

“야. 화면 꺼졌거든?”

“어? 뭐야.”

 

 

시커먼 화면을 들이 밀어놓고 뭘 어쩌라는 건지. 꺼진 화면에는 졸라 잘생긴 23세 박지민만 보이던데 뭐. 까만 액정에 비친, 세수도 하지 않고 막 자다 깬 내 얼굴이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서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한껏 만족감을 느끼며 수염이 조금 올라온 턱을 쓸었고, 그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거실 벽에 붙은 거울이랑 눈이 마주쳤다. 아 시발. 거울 안 본 눈 하나 삽니다. 와, 방금 뭐였냐. 험한 꼴을 마주하고만 안쓰러운 눈을 끔벅거렸다. 뭐야 시발. 김태형은 존나 자다 깨서 부은 저따위 얼굴도 존나 존잘인데, 왜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코끝이 시큰해져서 다시금 훌쩍거렸다. 그때 핸드폰 잠금 화면을 푼 김태형이 다시 내 바로 앞에다 핸드폰을 디밀었다. 시각으로 먼저 마주한 화면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인식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대체 김태형이 왜 아침, 아니 점심부터 나의 전 애인 이름을 외쳐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피하조직 밑으로 숨겨두고 멀쩡한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봤다. 얘는 계속 잔뜩 뿔이 난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술도 삐죽삐하는 꼬락서니가 마치 터닝메카드를 안 사준 부모를 쳐다보는 얼라와 같았다.

 

 

“뭐.”

“뭐어?”

“그래 뭐.”

“뭐냐는 말이 나와? 지민아. 이거 뭔데. 해명해.”

“뭘 해명해. 눈 없냐? 사진이잖아. 그냥 사진.”

“그냥 사지인? 박, 아니 지민아.”

 

 

박 아니 지민이는 누군데. 저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삐죽였다가 어깨도 들썩들썩하니까, 오 이거 되게 리드미컬한데.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내가 그런 식으로 모르쇠로 일관하자 김태형이 날 향해 쭉 빼놓은 자기 팔을 탈탈탈 흔들었다.

 

 

“대체 전정국이랑 왜 이러고 있는데? 대체 뭐 하는 장면인데 이거!”

“백허그.”

“허. 빽허그으?”

“처럼 보이는, 그냥 앞뒤로 나란히 있는 사진이잖아.”

“바, 으아아 지미이인!”

 

 

김태형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시켜 줄 행동심리학 박사님 찾습니다. 사례는 저 새끼 얼굴을 보여드리는 걸로 하죠. 만족 보장.

 

김태형은 작년에 나랑 대판 싸운 후로 박지민을 박지민이라 부르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그래서 지금도 저렇게 나를 박지민이라 부르고 싶은 걸 꾸역꾸역 참으며 ‘찌미이인’ 하는 절규를 내뱉고 있는 거다. 그런 김태형을 보다가 슬쩍 비웃음을 날려줬다. 그리고는 절규 소리를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배고파. 뭐 먹을 거 없나. 어느새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문지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와, 진짜 이렇게나 아무것도 없을 수가. 텅 빈 냉장고를 허망하게 보고 있을 때 김태형이 날 쪼르르 쫓아와 내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뭐, 어쩌라고. 물론 부엌에서 붕가붕가하는 건 내 로망이고 취향이긴 하지만 여긴 모모님과 함께 사는 가정집이야. 자제하자 태형아.

 

 

“이게 어떻게 그냥 나란히 있는 사진인데? 나란히 붙어! 붙어 있는 사진이잖아!”

“그게 뭐가 붙은 거야. 그렇게 보이는 거야. 착시. 착시라고 알지?”

“뭐? 착시? 지민아. 다시 봐봐. 붙어 있잖아! 이 사이로 종잇장도 안 들어가거든?”

“잘 넣으면 들어갈걸?”

 

 

아까처럼 핸드폰을 탈탈 흔들어대는 김태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무시해버렸다. 아오 시끄러워. 김태형의 성량 좋고 음정 좋은 목소리를 내내 듣고 있으니 귀가 댕댕, 하고 울렸다.

 

김태형이 점심나절부터 저렇게 정신 나간 놈처럼 구는 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개강 엠티 때 찍힌 사진. 난 이번 학기에 복학했고, 정국이는 해외 유학생 버프로 우리 학교, 나와 같은 과에 입학했다. 인생 존나 쉽게 사는 새끼. 내가 이 대학을 어떻게 왔, 기는. 전정국이랑 연애하고 떡 치면서도 잘만 온 대학이지. 그래. 정국이 덕에 온 학교였구나. 그럼 뭐, 정국이도 올 수 있지.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다니게 됐고, 신입생들 오라고 만든 개강 엠티 자리에 복학생인 나도 기꺼이 참석했다. 김태형은 자기가 죽더라도 전정국이 있는 그 엠티엔 절대 보낼 수 없다며 현관 앞에 드러누웠지만, 그런 김태형 배를 사뿐히 즈려 밟고 엠티를 떠났다. 그 엠티에서 동기 하나가 날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그때 내 뒤를 지나가던 정국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정국이가 인스타에 올렸고, 김태형이 그걸 본 거였다.

 

근데 얜 전정국 인스타를 어떻게 알지?

 

 

“너 전정국 염탐해?”

“뭐? 뭘. 뭘 염탐해 내가.”

“정국이 인스타. 염탐하니?”

 

 

내 말에 김태형이 여태까지 날 향해 뻗고 있던 팔을 급하게 내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리곤 핸드폰을 들고 있었던 손으로 코를 몇 번 긁으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와, 눈이 저런 식으로 크면 눈알 굴러가는 게 저렇게 선명하게 보일 수가 있구나.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던 김태형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일련의 동작들을 멈췄다. 그러더니 뭐랄까, 똥은 지가 싸놓고 이상하게 당당한 표정을 한 개새끼의 얼굴로 날 빤히 바라봤다. 나는 재차 김태형한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염탐하냐고.”

“아닌데.”

“맞는데.”

“아닐 텐데.”

“맞을 텐데.”

“아니야!”

“그럼 아까 그 사진은 뭔데. 어떻게 봤는데.”

“그건.”

“맞네, 염탐.”

 

 

멍청한 김태형. 주머니에 꽂은 핸드폰을 손으로 가린다고 네가 나한테 보여준 게 아닌 게 된다니?

 

 

“씨. 말 돌리지 마. 너. 아 진짜! 전정국 그 새끼는 왜 너랑 같은 과에 간 건데!”

“그러게 누가 그 과 지원하래?”

“난 너 연영 지원한 줄 알았다고!”

 

 

또다시 분개하는 김태형을 지나쳐서 소파로 갔다. 김태형은 여전히 내 뒤를 쪼르르 따라다녔다. 진짜 개새끼 같네. 아무튼 김태형은 연신 중얼거리며 분노하고 있었다. 내 뒤에서 저주를 퍼붓는 거 같기도 했다.

 

이 새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그동안 알아냈던 것보다 더 지독한 새끼다. 고삼 수험생 시절 내가 꼭꼭 숨기고 절대 알려주지 않은 지원 대학을 어떻게 알아내서 자기도 같은 과에 지원했다. 하, 진짜. 존나 집착병 있는 새끼.

 

 

내 인생의 역사는 줄곧 김태형과 함께였다. 김태형이 태어나기 전 두 달 반가량을 제외하고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유치원 입학과 졸업도, 그 후로 이어진 모든 교육 과정을 전부 함께했고 그래서 모든 순간에 서로가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친했다. 사춘기에는 교환 일기를 써가며 함께 흑역사를 주고받았을 만큼 둘도 없이 친했던 김태형과 유일하게 서먹하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고삼 때였다. 고삼 시절의 김태형은 나에게 ‘평생을 함께한 쌍둥이 같은 친구’가 아니라 ‘엄친아’였다. 엄마 여친 아들.

 

생긴 건 세계 서열 0위를 먹고도 남을 것처럼 생겼는데, 그 얼굴로 공부를 했다. 와 솔직히 얼굴로만 성적 매겼어도 나 저 새끼 못 이겼음. 어쨌든 당시에 김태형은 공부를 좀 했었고, 나는 그 당시에 섹스를 존나 했다. 존나 알찼는데. 그렇게 알차다고 느낄 만큼, 전정국과 눈만 마주치면 섹스를 하고 다녔던 내가 공부를 잘했을 리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김태형은 여러모로 존나 신경 쓰이는 새끼였다. 한집에 나란히 살며 모든 순간 비교가 가능한 엄친아라니.

 

 

그래서 대학 지원서 넣을 때 김태형은 절대 모르도록 존나 은밀하게 진행했다. 근데 이 새끼는 나보다 더 은밀한 새끼였다. 물론 그땐 몰랐지. 김태형은 뒤에서 은근하게 내 친구들과 접선해 내가 지원한 대학들을 캐묻고 다녔다.

 

당시 나는 내 친구들한테 ‘눈코입이 존나 조화롭게 달리고 티존의 자기주장이 무지막지하며 당황스럽게 잘생긴 구리빛의 새끼가 오거든 인사도 하지 말고 입은 본드로 붙여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라고 하며 입단속을 시켰고 그 덕에 친구들을 통해 대학이 유출되는 일은 없었다. 그랬는데. 나의 그 은밀한 지원이 무색하게, 그보다 더 은밀했던 김태형의 물색이 의미 없게도 내가 지원한 대학은 내 입을 통해 새어 나왔다.

 

 

“연영을 지원한 줄 알기는. 지가 잘못 들어놓고. 그때나 지금이나 염탐에 재주가 많으시네요. 김태형 씨.”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그때도 내가 정국이랑 통화한 거 며칠 내내 엿듣고 알아낸 거잖아. 지원 대학 모조리.”

 

 

그랬다. 같은 방을 쓰는 사이였으면서 나는 입을 함부로 놀려댔다. 당시 나는 사랑에 눈먼 사람이었고, 그래서 밤새 정국이와 통화를 해댔다. 내가 좀 허술하긴 하지만 멍청한 건 아니라 분명 김태형을 몇 번 발로 차보기도 하고 왁, 하는 소리도 질러가며 잠든 걸 확인했긴 했는데. 근데도 당했다. 이 새끼한테.

 

김태형은 한 번 잠들면 잘 깨지 않았고, 그래서 잠들고 나면 집이 무너져서 다시 구출될 때까지도 얌전히 자고 있을 만큼 잘 잤다. 분명 김태형이 잠든 걸 몇 번이나 확인하고 통화했는데. 저 새끼의 완벽한 연기력에 낚여버리고 말았다.

 

 

 

“어, 정국아. 나야.”

[형 이렇게 전화해도 괜찮아요? 그 형은요?]

“걔 자는 거 확인했어.”

[정말요? 아, 형 보고 싶다.]

“나도 너 보고 싶어. 내일 볼 건데도 엄청 보고 싶다.”

[그냥 우리 같이 살까요? 그게 낫겠다.]

“그러게. 같이 살자. 나 곧 졸업하니까 그때 독립해볼게. 나랑 같이 살면 되겠다.”

[형 대학 어디로 간다 그랬죠? 멀다 그랬나?]

“아니. 다 가까워. 음, 거기가 어디냐면….”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희희낙락하며 정국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뭐 대체로는 사랑 얘기였고 당시 내가 수험생이었기에 이따금 학업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곤 했다. 학업 얘기도 다 사랑 얘기에 쓰이기 위해 이용당한 거긴 했다.

 

 

[형 진짜 보고 싶어요. 키스하고 싶다.]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갑자기 해. 근데 나도. 헤헤.”

[그렇게 웃지 마요.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으니까.]

“너는 달리기 잘하니까 금방 오겠다. 나중에 진로도 그렇게 정하면 되겠다.”

[그럴까요? 근데 선수 하면 합숙 같은 거 때문에 형 자주 못 보잖아요. 그런 거 싫어요. 그리고 전 형이랑 같은 과 가고 싶어요.]

“경영? 너도 거기 지원하게?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네. 어차피 우리 집은 기독교라 제가 불교 대학이나 신부님 되겠다고 신학교 가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을 거예요.]

“그렇구나. 아,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나 그때 그거 엄청 좋았어.”

[뭐요?]

“네가 뒤에서 이렇게, 해주면서 막 손으로 엉덩이를 으아, 부끄러워.”

[뭐가 부끄러워요. 다음엔 더 오래 많이 해줄게요.]

“너는 손재주 좋아서 미술해도 되겠다.”

[형 몸에다 그림 그려도 돼요?]

 

 

뭐, 이런 식의 대화였다. 사실 그때 진짜 좋긴 했는데. 밤에 이불 쓰는 게 갑갑하긴 했어도 여름에도 그게 싫진 않았다. 밤새 통화하느라 막상 학교 가면 늘상 조는 게 일이었어도 좋았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벌을 서도 그저 웃음만 나왔다. 정말 그때의 나는 사랑에 미쳐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매일같이 통화하던 어느 날,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그래서…. 어, 잠깐만 정국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등골이 오싹오싹하고 서늘한 기분에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확 들췄다. 그리고 그때 내가 본 건.

 

 

“아아, 목이, 목이 너무 고프다아.”

“…쟤 왜 저래.”

[형 왜 그래요?]

“몰라. 김태형 몽유병 있나 봐. 막 헛소리하면서 돌아다녀.”

[위험한 거 아니에요? 형, 그 형 방 나가면 문 잠가버려요.]

“헤헤. 알겠어. 꼭 그럴게. 근데 정국아 오늘은 그만 끊어야겠다. 김태형 때문에 기분이 좀 그렇다.”

[아, 알겠어요. 그럼 내일 봐요. 내일도 형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이후로는 전화상으로 지원 대학이나 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미션 임파서블보다도 더 은밀하고 긴밀하게 대학 지원을 전부 바친 후에야 집에다 어떤 대학을 썼는지 밝혔다. 대학 지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부부님과 만났던 자리에서 김태형이 나랑 같은 대학을 썼다는 걸 알았다. 그때 존나 놀랐는데.

 

왜냐하면 한 군데가 아니라 김태형이 쓴 모든 대학이 내가 지원한 곳과 일치했다. 김태형의 실체를 알았더라면 얘가 뭔 짓을 해도 했겠구나, 의심했을 테지만 그땐 아니었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김태형은 존나 잘생기고 존나 정신상태 멀쩡하고 존나 공부 잘하고 씨발, 암튼 그런 존나 완벽한 애였기에 지원 대학이 겹치는 건 대단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존나 등신 같은 박지민.

 

어쨌든 그 엄청난 우연의 일치보다도 더 놀랐던 건, 김태형이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과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김태형은 부부님들께 자기가 지원한 과에 대해서 나불거리고 있었다.

 

 

“그럼 학과는?”

“저는 연극영화과요.”

“어? 연극영화? 너 연영 썼다고?”

“응. 왜?”

“아, 아니야. 그냥.”

 

 

그때는 삶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붙어 다녔음에도 내가 김태형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좀 신기해했던 거 같다. 공부도 썩 잘했던 김태형이라 다른 학과에 갈 줄 알았는데 지원 대학 모두 연영과로 써넣은 걸 보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정말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약간 의아함은 있었지만 김태형의 결정에 금방 순응한 건, 그렇게 생긴 얼굴을 티비에 출연 한 번 시켜보지 않고 썩힌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얘가 연기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공하면 존나 잘생긴 게이 연예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얘기할 상상에 들뜨기도 했었다. 그 열정 때문에 지원한 대학들이 성적에 비해 다 낮구나, 하고 멋대로 판단했었다. 그래도 개중 몇 개는 연영과로 유명한 학교여서 정말 과만 보고 대학을 가는 줄 알았다.

 

 

“지민이는 어디 썼니?”

“아마 지민이도 연영….”

“경영이요.”

“경영? 왜?”

“그냥 제일 무난해서요. 나중에 취업하기도 좋을 거 같고.”

“경영? 지민아. 너 경영이라고? 연영 아니라 경영?”

“어. 내가 연영을 왜 가.”

“말도 안 돼. 너 연영 간다고….”

 

 

그땐 김태형이 그렇게 구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내 코가 석 자였고, 그 시절 김태형은 나한테 썩 친근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새끼가 존잘 엄친아라서 존나 서먹했으니까.

 

내가 경영을 지원한 걸 알고 망연자실했던 김태형은 폐인이 된 채 연영과 실기시험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수시 모집에 모조리 떨어진 뒤에 정시로 다시 지원하든 재수를 하든 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놀고먹던 김태형은 심심풀이로 놀러 갔던 실기 고사장에 들어가 주어진 대본을 멋대로 읊고 나왔고 당당히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아, 세상 존나 불공평. 김태형은 합격했다는 글씨를 보고 잠시 고민했지만 며칠 뒤 내가 그 대학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붙는 걸 보고는 입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합격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고, 김태형은 그 대학 말고도 다른 대학을 무수히 붙었다. 더 좋은 대학도 있었지만 김태형은 나와 같은 대학을 단번에 골랐다. 그냥 좀 더 신중하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곳을 고른 줄 알았지만 개뿔. 그냥 나 때문에 그랬던 거였다.

 

최근에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거지만, 그때 김태형은 내 통화를 엿들으며 내가 정국이에게 ‘경영’이라고 말한 걸 ‘연영’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김태형은 다음 말도 덧붙였다.

 

 

“난 그때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단 한 가지라도 있다는 게 엄청 싫었어. 네가 지원한 대학 다 알고 싶었고, 무슨 과 다니는지도 다 알고 싶었어. 여태 모든 걸 함께 했는데,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 근데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예전처럼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전정국이랑 있을 때만 웃던 너 보면서 엄청 서운했거든. 그랬는데 너 연영 지원했다고 착각한 뒤에는 미안하더라. 연기에 꿈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마음 헤아려주지 못하고 혼자 서운해하고 속상해해서. 그래서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어. 전정국은 그런 거 다 아는데 나는 몰랐다는 게 분하기도 했고.”

 

 

그렇게 말하면서 김태형은 거듭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튼 김태형도 마냥 정상은 아니다.

 

 

 

“아, 아 진짜. 지민아. 나 전과할까? 응?”

“너 사학년이잖아. 무슨 전과야.”

“복전할 거야.”

“학점이나 채울 수 있겠냐. 게다가 예체능 계열이랑 시간표 안 맞을걸?”

“아! 전정국!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정국이가 왜 네 인생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뭐 내 인생에는 도움 좀 되긴 했지. 정국이 덕에 대학 간 거잖아, 나.”

“너. 자꾸 전정국 편들지.”

“편드는 게 아니고 팩트를 말하는 거야. 이 김태형아.”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하며 소파에 기대앉았고, 리모컨을 붙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아니 주말이면 재밌는 거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말에 사람들 집에서 모조리 쫓아낼 생각인가. 케이블 방송이며 뭐며 재밌는 거 하나도 안 하네. 그렇게 몇 번 더 채널을 돌린 후에 티비를 꺼버렸다. 김태형은 내 옆에 앉아 여전히 날 노려보고 있었다. 뭐, 어쩔 거야. 그런 김태형을 흘긋 보고서는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발로 김태형을 좀 밀어내고 두 다리까지 쭉 뻗었다.

 

솔직히 말하면, 노리긴 했다. 그래. 노린 거 맞다. 엠티가 끝나고 동기가 사진 잘 나왔다며 곧장 사진을 전송해줬다. 보자마자 김태형이 열 받을 구도라는 걸 알아차렸다. 곧장 인스타에 올리려고 했는데 막상 올리자니 나의 이 유치한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다. 그래서 망설이는데 때마침 정국이가 과대 형에게 사진을 받았다며 인스타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나로서는 매우 나이스 타이밍이었고, 땡큐하며 감사해 마지않을 일이었지만 곧장 긍정하면 티가 날까 봐 잠시 고민하는 척했고,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괜찮을 거 같아.’ 하며 얌전하게 대답해줬다.

 

 

내가 같은 과에 입학한 전 애인까지 이용해서 이따위 일을 벌인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 전부 다 김태형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새끼는, 연영과 김태형은 인스타에서 조온나 유명하시거든. 시발. 이 새끼 인스타도 내가 만드니까 따라서 만든 건데! 존나! 존나 인스타 스타야!

 

한때 내가 인스타에 미쳐있어서 매번 음식사진도 찍어 올리고, 셀카도 찍어 올리고, 손가락도 올려, 발가락도 올려, 뭐 거시기만 빼고 세상 만물을 다 찍어서 올리고 해시태그를 미친 듯이 달아댄 적이 있었다. 인스타로 맺은 지인을 최대한 다정하게 대하며 친목 도모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 날 유심히 관찰하던 김태형은 자기도 하겠다며 대뜸 인스타를 시작했었다.

 

 

‘지민이가 하는 건 뭐든 함께하고 싶어!’

 

 

라는 대사를 쳐가며 시작한 거였다. 아, 시발. 그때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내가 그렇게 인스타에 미쳐 난리를 쳤어도 인스타 팔로워는 잘 늘지 않았었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합리화하고 그랬는데. 인스타는 정말 어려운 거구나! 하고 있었는데. 근데 김태형 새끼가 모조리 망쳐버렸다. 얘는 길을 걷다가 죄다 흔들린 사진으로 셀카를 한 번 찍어도 좋아요가 우다다다 눌렸고, 팔로워가 와다다다 늘었다.

 

 

시발. 내가 수십 장의 셀카를 찍은 다음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셀렉하고 인스타 필터까지 싹 씌워서 사진을 올려도 버릇처럼 인스타에 상주하던 새끼들 몇 명만 좋아요를 눌러줬을 뿐이었는데. 근데 김태형은 그런 내 옆에서 자다 깬 얼굴을 하고 존나 이상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 올려도 수백 개의 좋아요가 찍혔다. 하 세상 존나. 상대적 박탈감 개쩔었다. 아무튼 그런 김태형이 가끔 각 잡고 셀카를 찍거나 타인이 -주로 내가, 혹은 같은 과 영상 전공이-장인 정신을 발휘해 찍어준 전신 샷을 올리는 날에는 인스타가 폭발했다. 댓글 창도 난리난리, 다이렉트도 수십 개가 왔다.

 

김태형 이 새끼는 그럴 때마다 날 놀릴 생각인지 내가 조용한 나의 인스타를 덧없이 스크롤 할 때 징징 윙윙 울리는 지 핸드폰을 들이대고 ‘헐 지민아 이거 완전 무서워. 이거 봐아’라며 칭얼거렸다. 진짜 짜증났지만 그렇게 엄청난 관심의 외적 표현을 쌩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김태형이 내민 핸드폰을 받아들고 살펴보며 대리만족하긴 했었다.

 

다렉으로 자기 제품 모델을 해달라, 옷을 협찬해 줄 테니 입고 사진을 찍어달라 등등 별 연라깅 다 와있었다. 그렇게 아주 빠른 속도로 조오온나 대단한 인스타스타…. 뭐야 발음 존나 이상해. 암튼 그렇게 대스타가 된 김태형은 팬클럽까지 생겼다. 오빠오빠♥ 라든가, 우리 태형이♥ 라든가, 혹은 혀엉♥-나는 이게 제일 좆같다. 씨발-하는 좆같은 하트부대가 생겨버리고 만 것이다. 완전 극성팬들이었다.

 

 

“앞으로 전정국이랑 사진 찍지 마.”

“내가 왜?”

“내가 왜애? 그걸 말이라고 해? 벌써부터 사람들이 댓글에 난리잖아.”

“너 댓글도 보냐?”

“어?”

“너 댓글 보는 법 모른다고 하더니. 알고 있었나 보네.”

“아닌데.”

“아니긴 개뿔이 아니다.”

 

 

그렇게 김태형을 흘기면서 내 핸드폰을 무심하게 집어 들었다. 김태형은 절대 볼 수 없는 각도로 핸드폰을 쥐고 인스타에 냉큼 접속했다. 방금 들은 댓글 얘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인스타를 확인하니 김태형의 말처럼 정국이가 올린 사진에 댓글이 꽤 많이 달려 있었다. 하트 수도 많았다. 왜 그러냐면, 이제 막 인스타 시작한 전정국의 팔로워가 당연하게도 나보다 많았거든. 하 진짜 존나 시발. 내 주위에는 시발 전 애인이건 현 애인이건 시발! 존나 존잘님들 밖에 없어서 박탈감 개 쩐다.

 

사진 몇 개에 팔로워 쭉쭉 올라가고. 같은 과 동기도, 다른 과 학생도 저 분 인스타가 무엇이나 물어물어 팔로하고. 아 정말. 서러워서 못 살겠네. 아무튼 서러운 건 서러운 거고 지금 당당은 좀 만족스러웠다. 내가 처음 받아보는 양의 관심이었다. 댓글의 내용도 내가 기대했던 대로 달렸다.

 

[헐 덩치케미 대박.] [브로맨스 완전 보기 좋아요!] [분위기가 좀...? 정국님 혹시?(농담농담)] 등등의 망붕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게 뭔 헛짓거리고 저런 걸 왜 좋아하겠냐 싶겠지만, 나는 정말 하나하나 찾아가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만큼 이런 망붕들이 반가웠다. 그 이유인 즉, 김태형 인스타에는 이런 망붕들이 조온나 많았거든. 시발.

 

 

“짐나. 사진 찍지 마라. 응? 전정국이랑 그런 자세로 있지 마.”

“시끄러워.”

 

 

고까웠다. 김태형이 인스타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김태형의 전 애인들은 득달같이 김태형의 인스타를 찾아내 팔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김태형의 팔로워 목록에 들어가 슬쩍 염탐해 본 결과 다들 존예에 존멋이었다. 진짜, 진짜 너무 많이 상당히 짜증 남. 심지어 그들도 이미 인스타에서 꽤 유명한 스타들이었다. 시발! 존나 나만 스타 아니야! 그중에 내가 제일 관종인데! 나만 인스타스타 못 해! 시발!

 

아무튼. 예쁜 김태형의 전 여친들에게는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좆같게도 존나 잘생긴, 시발 김태형의 전 남친들에게는 위기감이 뭐야, 시발 거의 압살당할 지경으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진짜로 빡쳤던 건, 김태형의 전 남친들 중 몇은 일부러 김태형과 찍은 과거 사진을 풀어대며 인스타 팔로워 다지기 및 고의적 브로맨스 조장을 해댔다는 거다. 그리고 망붕의 하트부대들은 그 사진들을 떡밥삼아 두 사람을 엮어대며 [두 분의 사랑 응원합니다!] [헐 두 분 예전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하는 댓글들을 남겨댔다.

 

시발! 내 남친이야! 존나 내 남친이라고! 썅. 나랑 김태형이랑 같이 찍은 사진 올렸을 때는 그런 말 없었잖아! 얼굴도 챡 붙이고! 몸도 찰싹 붙이고 그랬는데! 갑자기 과거 일이 몰아치듯 떠오르면서 다시금 너무 분해졌다. 정말 너무 분했고 열 받았다. 그래서 역시나 인스타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는 전정국의 도움을 조금 받기로 한 거였다.

 

 

“왜. 뭔데. 뭐였는데 지민아.”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잖아, 지금. 그치? 그래서 그러는 거잖아. 응?”

 

 

갑자기 진지하게, 꽤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김태형 때문에 좀 움찔했다. 얘는 진짜 가끔 아, 아니지. 가끔은 아니고. 아무튼 존나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까리해질 때가 있다. 지금처럼. 그 갑작스러운 존잘력에 놀라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손에서 미끄러지던 핸드폰을 잘 붙잡아 옆에 내려두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마주한 건 존나 그윽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김태형이었다. 왜 저래. 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뭐 저런 차림을 하고도 존나 잘생겼으며,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쳐다보면서 사람 기를 죽이고 그러냐. 괜스레 느껴지는 멋쩍음에 목만 큼큼거렸다.

 

 

“그런 거 없는데.”

“말해줘. 해줘야 할지. 알잖아. 나 말 안 해주면 잘 모르는 거. 응? 지민아.”

 

 

아 이 새끼. 또 다정하고 동글동글한 개새끼가 되고 지랄이야. 김태형은 아예 나한테 바짝 붙어 앉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붙들린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애꿎은 소파 위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랬더니 김태형이 이번에는 양손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대고 자기를 마주 보게 했다. 아, 시발. 예고 좀 하고 잘생기라고. 졸라 어이없네. 솔직히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김태형이 얼굴은 그 자체로 존나 설득력이 있었다. 보험이나 하라 그럴까. 얘가 보험 팔면 사람들이 상품 3천 개쯤 너끈히 가입할 거 같은데.

 

아무튼 불쌍함마저도 잘생기게 소화하는 소화력 짱 김태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꾸물대며 입을 열었다.

 

 

“너. 그…. 걔 있잖아. 인스타에서 맨날 너랑 엮이는.”

“응? 누구? 아. 아아, 걔?”

“어. 걔. 걔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너 인스타 시작한 것도 나랑 같이하겠다고 시작한 건데, 나랑 관련된 건 별로 안 올리고. 근데 걔나 네 팬들은 자꾸 둘이 관련된 거 올리고. 그리고 지들끼리 신나서 엮어대잖아. 너 애인은 난데.”

“그게 그렇게 속상했어?”

“그럼 안 속상하냐? 너는 맨날 막 좋아요도 엄청 많이 받고! 타이렉트로 연락도 많이 오고. 씨, 짜증 나.”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많이 쪽팔려서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싶었는데 김태형이 얼굴을 하도 딱 붙들고 있어서 그냥 눈알이나 요리조리 굴렸다. 그렇게 쌓아둔 말을 할 때마다 추임새를 잘 넣어가며 얘기를 들어주던 김태형이 문득 조용해졌다. 갑작스러운 그 고요가 낯설어서 눈알을 천천히 김태형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시발, 또 당황했다. 존나 왜 그렇게 그윽하고 다정하고 존나 예쁘게 웃고 있냐고! ‘지민아 나 이제부터 존나 잘생긴 내 얼굴로 존나 그윽하고 다정하고 예뻐서 심장마비 올 정도로 멋진 웃음을 지을 거니까 심장 마사지하고 쳐다봐야 해.’하는 경고는 대체 왜 안 하냐고. 이 새끼 때문에 심장에 무리 와서 단명할 것만 같았다.

 

 

“뭐. 뭐! 왜! 왜 웃어. 우습냐?”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지민이 너무 귀여워서.”

“우스운 거 맞네! 시발!”

 

 

괜히 민망해서 소리를 빽 질러버렸는데 그런 나를 김태형이 끌어안았다. 뭐야. 얘는 존나 씻지도 않아놓고 냄새가 우렁차게 좋네. 몸에서 뭐 이렇게 향긋한 냄새가 나냐. 그래 이건 분명 어제 뿌린 향수 냄새일 거야. 근데 이 새끼 향수 잘 안 뿌리는데. 몰라 시발. 맡기 좋으면 된 거지. 좋은 향기가 나는 내 남친은 나를 열심히 끌어안더니 내 어깨에 자기 얼굴을 부벼댔다. 뭐야, 왜 이래 시발. 코 푸는 거 아니야? 아님 코딱지 묻히는 중?

 

 

“지민아. 내가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진짜로. 약속해.”

 

 

다행히 코 푸는 건 아니었다. 어깨에 턱을 올린 채로 나긋나긋 말하는 김태형이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근데 시발 이 새끼 턱 존나 뾰족해서 어깨 아픔. 와, 승모근 내려갈 듯.

 

 

“뭘 어떻게 할 건데.”

“맨날맨날 지민이 사진 올리고, 지민이 태그하고. 내가 내 인스타그램 럽스타로 만들어버릴게. 아무도 다른 사람이랑 엮지 못하게.”

“이제 와서?”

“아냐. 아니야. 원래 이러려고 했어.”

“웃기네.”

“진짜야. 정말. 근데 지민아.”

“뭐.”

“내가 잘할 테니까. 앞으로는 전정국이랑 그러고 사진 찍으면 안 돼. 알았지?”

 

 

날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내 어깨에 뾰족한 턱을 박고 칭얼대는 김태형이 좀 귀여웠다. 그래서 그런 김태형을 다독여주면서 알겠어, 하고 대답해버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