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 트위터는 @Rather_0613 (舊 새벽의덕후)

[국민] 초록(初錄)

 

 

W.래더(舊 새벽의덕후)

 

 

 

3.

 

 

“뭐야. 뭔데. 무슨 일 없었냐? 어? 없었냐고!”

“야야. 지민이 귀 떨어지겠다. 좀 조용히 말해.”

“아 왜애. 형들은 안 궁금해? 우리 예쁜이가 신입한테 공개 고백을 받았고! 술자리 끝나고는 그 신입한테 업혀서 갔는데. 안 궁금하냐고!”

“안 궁금하다. 애 괴롭히지 말고 좀 조용히 해.”

“형들은 나만 미워해!”

“그러면서 지민이 품으로 뛰어들지 마라.”

 

 

남준 선배와 호석 선배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한 김태형은 오히려 보란 듯이 더 나를 끌어안았다. 그런 김태형을 본 체도 안 하고 그저 핸드폰만 만져댔다. 아침 수업에서 김태형을 만난 이후로 줄곧 얘를 ‘듣고 씹는’ 중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껄렁거리면서도 수업은 또 착실하게 다니는 아이러니의 아이콘 김태형은 강의실에 일찍 와서 근처에 앉은 새내기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문을 등지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며 서둘러 멀찍이 자리를 잡으려는데 붙잡혔다. 귀신같은 놈. 박지민 레이더라도 있는 줄.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제는 뭐 했냐, 사귀기로 했냐 등등 아무튼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이란 질문은 전부 다 물어댔다. 일일이 답하기도 귀찮고 어차피 하나를 답해주면 파생될 질문이 수천가지라 애초에 입을 닫아버렸다.

 

 

김태형을 떼놓고 어딜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그냥 동방으로 왔다. 게다가 다른 곳에 있으면 온 세상이 얘 편인데 동방에서만큼은 달랐다. 김태형의 외모도, 능글맞은 성격도, 애교도 다 안 통하는 곳이었다. 제발 아무나 있어주길 바라며 동방에 들어오니 감격스럽게도 남준 선배와 호석 선배가 있었다.

 

 

“지민아. 점심은 먹었냐?”

 

 

날 괴롭히는 김태형에게 면박을 주던 선배들도 이젠 내가 하던 ‘듣씹’에 동참했다. 김태형은 건너뛰고 나에게 묻는 호석 선배에게 한동안 닫아놨던 입을 열어 대꾸했다.

 

“아. 아뇨. 선배들은요?”

“우리도 아직. 뭐 시켜먹을까?”

“예쁜아. 왜 내 말에는 대답 안 해줘? 응? 어땠어? 전정국이랑 뭐 했어? 어? 지금도 연락해?”

 

 

그리고 역시나 잠시 쉬는 것 같았던 김태형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일으켜 나를 붙잡고 질문 연타를 시작했다. 선배들을 보고 있던 내 얼굴을 붙잡아 자기에게 맞춰두고 계속 응? 응? 하는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나는 눈알만 굴려 선배들을 쳐다봤다. 선배들도 알아서 나와 눈을 맞춰주었다.

 

 

“치킨? 피자? 아니면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형! 나 햄버거! 햄버거어!”

“저는 돈까스요.”

“어 그러면 우리 맨날 시키는 거기서 시키자 호석아. 나는 김치볶음밥에 작은 우동 추가해서.”

“왜 나만 미워해! 왜!”

 

 

햄버거로 삼시 세끼를 먹고서도 야식으로 햄버거를 시키는 미친놈에게 다시 햄버거를 물려줄 수는 없었다. 이건 우리 동아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김태형과는 절대로 햄버거를 먹어주지 말 것. 우리가 아니더라도 얘는 데이트를 하든 사교모임을 가든 아무 데서나 햄버거를 처먹고 다닐 게 분명했기에 우리라도 먹어주지 말자고 굳게 결의했다.

 

햄버거에 환장한 미친놈이 야무지게 손까지 들어 메뉴를 어필하기가 무색하게 선배들은 내가 고른 메뉴를 채택해주었다. 결국 김태형은 다시금 내 품으로 뛰어들어 잉잉대기 시작했다. 진짜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도 피곤하다.

 

 

“태형이는 햄버거가 좋은데에. 형들이 내 거 안 시켜줘 지민아. 난 너무 속상해.”

“지민인 무슨 돈까스?”

“저 맨날 먹던 거요.”

“아, 고치돈? 그래. 호석이 넌?”

 

“저도 지민이 형이랑 같은 걸로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한창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웬 목소리 하나가 대화에 섞였다. 소리가 들린 문가로 고개를 돌리니 전정국이 서 있었다. 멍한 표정의 선배들을 향해 잘생긴 얼굴로 인사를 하더니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등에 맨 가방을 풀어내며 걸어온 전정국은 나와 김태형이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우리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전정국은 문 앞에 서 있을 때부터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선배들한테 인사를 하던 그 찰나 말고는 줄곧 뚫어져라 나만 봤다. 나만을 바라본 채 예쁘게 웃었다. 진짜 짜증난다. 얘는 웃는 것도 잘생겼다. 되게 예쁘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진짜 오랜만이네. 형.”

“뭐야. 얘 뭐야? 신입이야? 너 왜 나랑 지민이 사이 갈라놔!”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튼 형. 돈까스 좋아하나 봐?”

“어? 어. 뭐 그렇지.”

“난 형 좋아하는데. 취향이 잘 맞네.”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그야말로 얼이 빠진 상태였다. 오랜만이라고 건넨 전정국의 인사에 정말 오랜만이 맞나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중이었다. 개파는 금요일에 있었고, 나는 토요일에 전정국 집에서 깼다. 토요일 정오가 다 되어서야 그 집에서 나왔고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오랜만인 건가?

 

아무튼 내가 집에 도착했을 즈음 전정국에게서 카톡이 왔다. 잘 들어갔냐는 담백한 연락이었다. 김태형이 꼬치꼬치 캐묻고 대답을 강요해서 더욱 답하기 싫게 만드는 타입이라면 전정국은 적당하게 질문하고 대화를 이끄는 애였다. 전정국이랑 연락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정보를 술술 불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는 보통의 시간엔 동방에 있다는 정보까지. 박지민 미친.

 

 

“우리 다음에 만나기로 하면 사귀기로 했던 거 같은데.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거야?”

“헉. 형들 얘 미쳤나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응? 지민이 형. 그런 거야?”

 

 

내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흔드는 전정국을 보고 있는데 온갖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짜증 나. 질문을 할 거면 얼굴을 저리 치우고 하든가.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놓고 물어보면 내가 뭘 어떻게 해.

 

곧 콧김까지도 공유하는 사이가 될 것만 같아서 몸을 조금 옆으로 뺐다. 그런 내 움직임을 가만히 보더니 전정국은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얘 진짜 뭐야. 괜히 긴장감이 돌았다. 왜 이렇게 가까워. 작은 소파에 장정 셋이 붙어있는데 꼭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좀 떨어져서 얘기하면 안 될까?”

“왜?”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게 있어. 타인에게 허락하는 공간적 범위 같은 건데. 너 지금 내 퍼스널 스페이스 넘고 있어.”

“아. 선을 넘었다, 이거지? 잘 됐네. 난 형이 무슨 선을 긋든 다 넘고 싶거든. 이왕 넘은 거 좀 더 넘어도 돼?”

 

 

전정국의 발언에 동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게 들렸다. 동방의 공기까지도 숨을 참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더 쑥 다가온 전정국 때문에, 부족해진 동방의 공기 때문에 나 역시 숨을 참아버렸고 곧 무호흡으로 사망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때였다.

 

 

“이건 또 뭐냐.”

“헉. 민윤기 언제 왔어? 닌자야 뭐야. 엄청 소리 없이 왔어.”

“민윤기…. 야. 내가 친구냐? 김태형 너는. 됐다. 말을 말자. 암튼 너 그때 그 신입 맞지? 동아리 선배 좋아서 쫓아다니는 건 상관없는데. 적당히 해. 애 숨 못 쉬어서 죽겠다.”

 

 

어디선가 나타난 윤기 선배가 전정국의 뒷덜미를 붙잡고 나로부터 떼어냈다. 거리가 멀어지자 숨통도 다시 트였다. 길게 숨을 뱉은 나를 여러 사람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들이 이렇게 많았어.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야. 남준아. 아직 밥 안 시켰지? 내 것도 좀 시켜라. 먹고 연구실 들어가야 해.”

“먹을 시간은 있어?”

“만든 거야. 그러니까 얼른 시켜.”

 

 

그렇게 동아리의 실세 민윤기의 등장으로 소란스럽던 상황은 일단락됐다. 고마운 마음에 선배를 향해 고갯짓으로 감사를 표했다. 선배는 그저 미소만 띄우며 내 머리를 살짝 헝클일 뿐이었다.

 

 

 

애매한 시간에 밥을 시켜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음식이 일찍 도착했다. 동방 바닥에 둘러 앉아 자리를 잡았다. 좁은 동방에 여섯 명이나 앉으려니 영 불편했다. 가장 불편한 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나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 전정국이었다. 물론 더불어 그런 전정국을 경계하며 내 어깨 위에 얼굴을 얹고 돈까스를 씹는 김태형도 나의 불편함에 한 몫 톡톡히 하고 있었다.

 

옆에서 진득하게 붙는 시선들에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겠는데 선배들은 그저 다른 말들이나 하고 있었다. 아까 주던 관심 지금 좀 줬으면 좋겠는데.

 

 

“아. 윤기 형. 소식 들었어? 석진 형 이번에 특진했대.”

“웜마. 그 형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냐? 근데 특진을 해?”

“그 형이 사회성이 좋잖아. 어디 내놔도 잘 컸을 형이다.”

“뭐야 이 형. 말투는 거의 아버진데.”

“안 그래도 석진 형이 입사 기념으로 우리 맛있는 거 사준다고 온대.”

 

 

도시락에 시선을 둬도 정신이 없었는데 선배들의 얘기에 내 귀도 트였다. 석진 선배의 얘기였다. 석진 선배는 윤기 선배 전에 우리 동아리의 회장을 맡았던 선배다. 되게 잘생겼는데 재미도 있고 사람이 뻣뻣하지 않아서 인기가 진짜 좋았다. 만인의 짝사랑 같은 느낌이랄까. 유들유들하게 동아리를 잘 이끌었고, 그 때 당시까지만 해도 덜 나대던 김태형도 잘 컨트롤하던 선배였다. 그 선배 진짜 멋있었는데.

 

 

“아. 지민아. 너 석진이 형 좋아하지 않았냐?”

“어 맞아. 우리 지민이 신입생 때 석진 형 보고 얼굴 붉히고 그랬던 거 같은데에.”

“니들은 뭘 또 괜한 소리를 해. 안 그래도 쟤 지금 체하겠는데.”

“재밌잖아. 지민이 그때 술 취해서 얼굴 발그레 해가지고. 히히 웃으면서 회장님 잘생겼어요오. 이랬잖아.”

“아! 선배! 언제적 얘길 하는 거예요. 대체.”

“저 얼굴이었지. 그치 호석아. 딱 저렇게 얼굴 빨개져서.”

 

결국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려놨다. 비어버린 손으로는 얼굴을 가렸다. 홧홧하게 얼굴이 타는 거 같았다. 쪽팔리기도 했다. 방금 호석 선배가 날 놀리면서 따라한 그 일은 내가 전정국처럼 빛탐의 신입이었을 때, 첫 엠티에서 생겼던 일이다. 석진 선배는 내가 살아오면서 본 사람들 중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이상형이기도 했다. 깔끔하게, 기름기 없이 딱 잘생긴.

 

 

“아 쪼옴!”

“귀여워. 우리 지민이는 이래서 자꾸 놀리고 싶어져.”

“밥 좀 먹자. 시끄러워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네.”

“윤기 형 입으로 잘 들어가고 있으니까 걱정 말어요.”

“너 이씨. 정호석.”

 

 

맞다. 그래 맞다. 나 석진 선배 좋아했다. 그래서 첫 엠티에 선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고, 과음했다. 호석 선배가 따라했던 것처럼 히히 웃으면서 석진 선배 옆에 앉았고, 잘생겼다고 얘기했다. 이 정도 일이야 그저 술 먹어서 일어난 귀여운 해프닝으로 끝났겠지만 저 선배들이 저렇게 웃으면서 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석진이 형 어디 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우와아. 잘생겼어요. 와아아. 술 마시는 거뚜 잘 생겼어. 우와아아아 석진 선배애애. 이래가지고.”

“악! 그만해요!”

 

 

결국 귀를 막았다. 맞다. 진짜 저랬다. 나보다 큰 선배를 보느라 목이 다 나가게 올려다봤고 감탄을 그만두지 못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고맙다고 하던 선배도 나중에는 조금 당황해서 나를 어떻게든 재우려고 했다. 방에 눕혀두고 나오면 어느새 기어 나와서 선배 옆에 앉아 감탄을 하고 있었다, 고 김태형이 알려줬다.

 

하다하다 선배가 화장실을 가면 따라 가서 화장실 앞에서까지 감탄을 했다, 고 역시 김태형이 전해줬다. 아무튼 그 일은 석진 선배의 잘생김을 이야기할 때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이 되었고 내가 동아리 탈퇴를 결심하는 일이었다. 뭐 결국엔 이렇게 3년 장기근속 동아리원으로 남게 되긴 했지만.

 

 

“근데 그걸 지금 저 신입이 하고 있네.”

“어? 어이고. 신입 눈빛이 좀 바뀌었는데?”

“많이 잘생기셨습니까? 그, 석진 선배라는 분.”

 

 

옛 추억을 회상하다 다시금 수치스러워지는 마음에 온몸을 구기고 있는데 옆에서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여전히 날 바라보는 전정국의 눈빛이 뭔가 달라져있었다. 뭐라 할까. 약간 도전적이라고 해야 할까. 혀로 볼까지 밀며 고개를 까딱거리는데 곧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거 같았다.

 

 

“어. 잘생겼다.”

 

 

허공에 뜬 질문에 윤기 선배가 깔끔하게 답을 해줬다. 답을 들은 전정국은 잠시 숨을 들이켜더니 길게 빼며 내쉬었다. 시선은 여전히 날 향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뜨거운 볼을 가린 채로 날 향한 눈길을 받고 있었다. 전과 다른 꽤 번뜩이는 눈에 침을 꼴딱 삼켰는데 곧 눈빛이 바뀌었다. 전처럼 온순하고 발랄했다.

 

 

“뭐. 괜찮아요. 저도 잘생겼으니까.”

“와. 쟤는 진짜 대박이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다시 돈까스를 집어 먹는 전정국을 보며 웃었다. 손 아래로 웃는 얼굴을 숨겨두긴 했지만 웃음까지 숨길 순 없었다. 귀엽기도 했다. 내 어깨에 여전히 얼굴을 올려놓은 김태형은 자기 고개를 내저었다. 자기보다도 더 심한 자기애의 소유자를 만난 거였다. 둘이 붙여놓으면 꽤 재밌는 싸움 구경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태형이 이 대화 주제에서 얌전했던 건 이미 한 이년 정도를 그 일로 놀려댔기 때문이다. 술 안 먹고 술자리 끝까지 남아있기 대장인 김태형은 그날 동아리 엠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술게임도 못하면서 벌주를 하나도 안 마셨다. 왜? 흑기사, 흑장미가 넘쳤으니까. 아무튼 그때 똑같이 신입생이던 난 흑기사나 흑장미를 쓰고 난 후 들어줘야할 소원이 버거워서 혼자 술을 다 감당했고 그런 치욕의 역사를 써버린 거였다.

 

아무튼 김태형은 이제 그 일로 날 놀리는 걸 지겨워했다. 2년 730일 중에 700일을 옆에 붙어서 놀려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못 놀린 30일은 대학생의 패기로 놀러간 유럽여행 기간이었다. 가자마자 핸드폰을 고장 낸 김태형은 딱 그 30일만 날 못 놀렸었다. 무튼 그랬던 김태형과 다르게 동아리 선배들은 꾸준히 그걸로 날 놀리고 있었다. 난 그때마다 수치스러워했다.

 

 

“애 그만 놀리고. 난 간다.”

“아 치울 때 되니까 가는 거 봐.”

“꼬우면 너도 쟤들한테 시켜. 박지민이는 신나게 놀렸으니까 너무 부려먹지 말고.”

“됐어. 같이 하면 되지. 얼른 가.”

“또 보자.”

 

 

윤기 선배가 나가고 먹은 것도 다 정리한 우리는 각자 시간표에 맞춰 흩어졌다. 알고 보니 전정국은 자기 수업도 하나 빼가며 그 자리에 남아있던 거였다. 다음 수업은 꼭 들어야 한다며 급히 뛰어가는 걸 가만히 쳐다봤다.

 

 

“쟤는 너 엄청 좋은가봐.”

“그러게. 왜지.”

“너 예뻐서 그런가보지 뭐.”

“죽는다. 진짜.”

 

 

 

계단 위에 올라서서 내 머리 위에 자기 얼굴을 올려둔 채 말하는 김태형이 킥킥대며 웃었다. 날렵한 턱이 정수리에 꽂히는 기분에 몸을 밑으로 숙여서 빠져나왔다. 전정국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가 내 손을 쳐다봤다. 아까 떠나기 전에 ‘형 나 갈게. 또 봐.’ 라며 인사한 전정국이 그 말을 하면서 손을 붙잡았었다. 은밀하게 붙잡은 거 치고는 힘이 꽤 셌다. 잠깐이었지만 그렇게 붙잡혔던 손에 아직도 느낌이 생생했다.

 

 

“진짜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신경 쓰여?”

 

 

김태형의 물음에 아니, 라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지 않았다. 뭐지. 나 지금 뭐야? 설마. 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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